낯선 사람에게 짐 봐달라고 맡기는 건, 또 봐주는 건 무슨 심리인가?
어제 해거름부터 술을 마시다가 있었던 일입니다. 막걸리를 마시다보니 소피가 자주 마렵잖아요. 그래서 주인장에게 '화장'하고 올테니 가방 좀 봐주라고 하니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손님이 가방은 당연히 봐주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는 말이 "핸드폰도 내가 봐 줄테니 신경쓰지 말고 갖다오라"고 합디다. 그는 생면부지의 같은 손님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믿고"가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고맙습니다"하고 다녀왔습니다. 갖다오니 물론 가방도, 핸드폰도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뭐 오랜 경험상 관습적으로 예상을 한 거였지만...지금까지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했는데, 극장, 터미널이나 공연장 등지에서 말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아무튼 공공장소에서 내 뒷자리나 옆자리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짐이나 소지품 등을 봐주라고 부탁하는 건 무슨 심사, 혹은 문화일까요? 다른 외국 사람들도 그렇게 할까요? 한국인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기엔... 뭔가 문화적 코드가 있는 게 분명한데 그게 뭔지 궁금해져요.
이 얘기는 작지만 예전부터 생각해온 오랜 글감인데,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또 경험하게 되니 메모를 하게 되네요. 대체 한국인들은 무얼 믿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그런 무한한(?) 신뢰를 보낼까요? 그게 인정일까요? 그러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지죠? 로마 계약법사상의 결핍? 좁은 국토에서의 이질감이 없어서? 정이 넘쳐서? 하여튼 수필 글감입니다.
2016. 6. 1. 18:10
은평구 연신내시장 안 선술집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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