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故 이종판 박사 추모사

雲靜, 仰天 2019. 9. 29. 22:46

故 이종판 박사 추모사

 

이종판 형님, 일어나시길 간절히 바랐는데, 끝내 다시는 오지 못할 먼 길을 가셨군요. 그렇게 갑자기 빨리 우리 곁을 떠나 가셔서 너무 안타까워 허망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까지 합니다.

 

종판 형님, 형님과 저는 인연을 맺게 된 1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요. 국방부 연구소에 같이 근무하면서 같은 연구실을 쓰면서, 또 형님이 중간에 그만두시고 영남대에서 교편을 잡은 5년 동안, 또 그 이후 퇴임하시고 난 후에도 자주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지요.

 

그때 국방부 연구소에 어떤 이의 전횡에 대해 아무도 바른 소리 직언을 못하던 그런 상황에서 형님은 진언하시고 사표를 던지신 것을 곁에서 지켜봤죠. 올곧은 그 기백과 용기에서 저는 옳지 못한 것을 보고도 눈을 감고 지내는 용속한 지식충들이 아니라 할 말을 해야 할 때 제대로 하는 선비정신의 사표를 보았죠.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형님의 이러한 선비정신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 뒤 형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저쪽 양수리 쪽으로 이사를 가시고, 저도 서울과 포항을 오가며 지내다가 올해초부터는 갑자기 해외로 파견돼 오다 보니 예전처럼 자주 뵐 수가 없었네요. 오늘 이런 변을 당하고 나니까 자주 찾아 뵙지 못한 것이 정말 한스럽네요.

 

제가 해외에 나와 있다 보니 심지어 얼마 전 둘째 아들 장가보내는 예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죠. 그래서 미안해서 형님에게 은행 구좌를 문자로 찍어주시라고 여러 번 말씀 드렸는데도 형님은 한사코 사양하셨지요. “구좌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오. 괜찮아요라면서요.

 

종판 형님은 제가 어디를 가든, 무슨 활동을 하든 늘 제게 힘이 되는 말씀과 함께 성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지난 8월 중국 호남성 모택동, 팽덕회, 유소기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는 여행 중에 형님에게 모택동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담은 漢詩를 보내드렸더니 형님은 이런 답을 보내 주셨지요.

 

詩律毛評이 대단하오. 운정은 업적을 비난하고 있네. 만약에, 장개석이 중원을 장악했더라면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과 오늘날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 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길! 정말 베스트 리서치 Tour”

 

형님의 학구적인 질의에 제가 이런 답을 보내드렸죠. “장개석이 잡았으면 역사가 많이 달라졌겠죠. 하다못해 유소기가 계속 집권을 했어도 중국은 그 뒤의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을 겁니다. 구좌!”

 

이처럼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문자를 주고받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렇게 정말 뜻밖에, 창졸간에 가시다니 너무 어이가 없고 너무 가슴이 먹먹하네요. 종판 형님, 지난 한가위 때 제게 주신 말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써놓은 졸시 한편을 보내드렸더니 그걸 보시곤 제게 따뜻한 마음과 진심을 담은 문자를 보내주셨죠?

 

나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이, 얼마 되지 않는 나이인데도 또 다시 해외에서 홀로 명절을 맞으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요. 한가위 명절, 집집마다 넉넉하고 풍성하게 잘 쇠시기 바랍니다. 졸시 한 편 올립니다.”

 

秋曉雨聲

 

曉忽聽雨聲

醒來秋在枕

思半生如夕

兩靈已變雪

 

秋繼春攝理

做事如泰山

心尙壯離業

已成老眼淚

 

 

가을 새벽 빗소리

 

문득 들려오는 새벽 빗소리

깨어보니 가을이 베개 맡에 와 있네

지난날 돌아보니 반평생이 엊저녁 같은데

귀밑머리엔 어느덧 눈이 내려앉는구려.

 

가을이 가면 봄이 오는 게 섭리지만

못다 한 할 일이 태산 같구나

마음은 아직도 젊은데 업을 두고 가려니

벌써 노안 된 눈에 눈물이 고이는구려.

 

2017. 8. 24, 06:42

구파발 寓居에서

새벽녘 빗소리 듣고 시름에 겨워

雲靜

 

어찌 이리 누에가 명주실 날 뱉어내듯이 자연스러운고. 感想이 무너진 내게도 와 닿는구먼. 추석 잘 지내고 건강관리 단디 하여 업을 이루시길

 

위 졸시에 대해 보내주신 과찬은 제게 더 많은 노력과 더 나은 연구를 하라는 편달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편달의 힘이 되는 이 말씀에 제가 형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죠. “종판 형님 감사합니다. 부디 몸을 많이 추스리시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해서 또 자주 뵈야죠~^^”

 

화이팅입니다. 서 박사!”

 

비록 문자로였지만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게 불과 한달 전 일이었습니다. 불과, 불과 한 달 전 말입니다! 형님은 누구 보다 진솔하시고 맑은 양심을 가지신 분으로서 상상력이 뛰어난 학자적 능력과 열정을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평소에도 의기가 투합 됐던지 제게는 하시고자 하는 연구, 하시고 싶은 일, 이루고자 하신 연구주제를 자주 말씀하셨죠. 꿈들이 너무 많았는데, 열정이 활화산 같은 형님이셨는데...

 

이제 돌이켜 보니 제게 힘내라고 보내주신 한 달 전의 그 말씀은 형님께서 너무 어이없는 병고로 이루고자 하신 업을 두고 떠나시게 됨을 예감해서 해주신 것이었나요? 정말 유명을 달리 하실 줄은 꿈에도 모를 수밖에 없게 됐군요. 지난 주 금요일 날에도 제게 외국생활하면서 건강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지요. “이팔청춘도 아닌데 운정의 열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안전에 유의하시면서. 참 대단하셔. 이곳은 조국이 땜에 야단이라오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 생생히 귓전을 울립니다.

 

형님이 지난 주 금요일 제게 보내신 울 정치가 가을하늘처럼 맑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은 가슴 아프게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군요. 정말 형님이 남기신 말씀대로 우리 정치권이 가을 하늘처럼 맑아지길 염원합니다. 미력하지만 저도 형님 말씀을 따라 한국 정치 풍토가 조금이라도 맑아지도록 하는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이처럼 하실 말씀 다 하시고 사리 판단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정신이 맑고 또렸해 보여서 저는 곧 일어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창졸간에 가시다니 너무 허무합니다.

 

종판 형님, 저는 현 상황에서 형님을 위해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네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조의를 표할 뿐입니다. 종판 형님, 제가 부고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가야 마땅하지만, 지금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에 있는데다 이곳의 일정이 빽빽이 잡혀져 있어 현재로선 전혀 움직일 수가 없어 들어갈 수가 없네요.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가시는 걸음을 지켜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너무 마음이 무겁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난 세월 형님과 같이 했던 따뜻하고 즐거웠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왕생을 기도하는 일 밖에 없어 더 마음이 아픕니다. 소략하지만 화환이라도 보내 형님 영전에 받치도록 하는 것 밖에 달리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늘에서 부족한 아우를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이종판 형님, 형수님과 함께 고생하시면서 두 아들을 늠름하게 장성시켜 놓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승에서 하시고자 했던 일, , 좌절감, 회한, 원망 모두 놓아 버리고 마음 편히 영면하시소!

 

2019. 9. 29. 08:47

臺灣 中央硏究院에서

서상문 올림

 

 

이종판 박사는 생전에 자주 일본의 저명한 한국전쟁 전문가 미키(三木) 선생을 찾아가서 많은 얘기를 주고받고 와서 대화내용을 내게 자세하게 말해주곤 했다. 왼쪽이 이종판 박사, 오른쪽이 미키 선생이다. 이 분은 이종판 박사 보다 앞서 타계하셨다. 지금쯤 두 분이 다시 만나 이승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담준론을 펼치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