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삶의 순간들

삶의 한 순간 : 소싯적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

雲靜, 仰天 2020. 7. 20. 21:36

삶의 한 순간 : 소싯적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

 

마산에 갔다가 부산에 거주하는 소싯적 친구와 카톡으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이 친구는 성실하고 현명하게 경찰직을 37년간이나 봉직하고 정년퇴임을 한 뒤 지금은 중학교에서 지킴이 역할을 해오고 있다. 내가 그에게 먼저 나의 그림 사진을 보냈더니 그에 대한 작품평으로 아래와 같이 간단한 글을 적어 보냈다.

 

“그림 잘 봤다. 타고난 소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전에도 내가 피력했지만 그림이 최우선 기술이다. 글은 그 다음이지. 한문도 원조가 그림 아닌가! 내가 그림을 알겠나만은 세파에 찌든 너의 심정(봉우리)을 운무로 다독이고자 하는 것 같네. 구름이 본시 희거나 회색인데 붉은 색을 덧칠한 것을 보면 응어리를 조속히 해소코자 하는 뜻이 보인다. 작품 계속 보내라. 그걸 보면 널 떠올릴 수 있으니! 잘 봤다.”

 

 

내면의 깊이와 사색의 힘을 가진 친구. 친구에게 동의를 얻어 사진을 올린다. 조만간에 다시 만나면 우리는 동해안 기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긴 왜 가냐고요? 아 그건 왜 물어? 궁금하면 따라와 보든가!

 

윗글에 대해 내가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와 최고임을 나타내는 치켜세운 엄지 표시를 보냈더니 친구가 다시 아래 글을 보내왔다.

 

“어릴 때 스스로 홀로 행한 그 역량이 너가 이렇게 강하고 담대하게 된 씨앗이 된 거다. 나도 지금 혼자 살고 있지만 어차피 혼자 아닌가? 외로운 길이지만 가까이 와이프나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속을 다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을 친구 두세 명만 있으면 그 길이 아름다운 길이 되겠지.”

 

“너가 택한 그 길이 잘 꾸며줬다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보는 나도 마음의 찌꺼기가 녹아내리는 듯하다. 속세가 그리 공평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도 봄빛이 없는 곳에는 꽃이 피질 않은 법이니 너의 마음을 좀 더 추스르면 아라한의 경지는 못 되도 깊은 단계로 도달될 거다. 풍운의 세월 속에서 어찌 앞날을 점 칠 수 있겠나. 그저 오늘 잘 보내고 내일은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기를 바랄뿐!”

 

윗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답을 보냈다.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이란 좋은 생각이다. 좋은 생각이 모이면 좋은 氣가 된다. 殺氣나 삿된 기가 아닌 순정한 기! 좋은 기가 모여야 좋은 세상이 된다. 좋은 세상이 바로 淨土요, 극락일세. 그런 세상 속에서 살다가는 것도 천복이지만 그것은 소극적 과보이고,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은 새로운 업을 짓는 적극적 善業이다.”

 

이 친구 말이, 내가 아라한은 못 돼도 수다원과는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탈법과 위선과 거짓이 넘쳐나고 구린내가 진동하는 穢土에 살면서 그 단계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지......

 

2020. 6. 19. 09:52

마산 백내과 병상에 누워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