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천 둑방길
꽃 다운 나이에 장기로 시집온 외숙모
시집살이 수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남 모르게 애가 탔다.
칠거지악 인식이 남아있던 그 시절
시댁식구들이 씨받이 후사를 얻으려 하자
말 없이 어린 생질 손 잡고
시댁 큰집이 있는 용전으로 가는데
서편제 소리가 허공에 흩날리고
허허벌판 장기천 둑방길엔 샛바람이 찼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고희를 눈앞에 둔
생질에게 날아든 황망한 부고 한 통
외숙모 상이 이미 치르졌다는 말에
부슬부슬 비 내리는 선창가에서 종일토록
둑방 걷던 새색시 고운 모습이 아른거리는데
구룡포항엔 겨울 보슬비가 그칠 줄 모른다.
2023. 1. 14. 05:59
보슬비가 내리는 구룡포 선모텔에서
雲静
위 시는『PEN문학』2024년 5-6월호(Vol. 179)에 발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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