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칼부림’ 사건에서 읽어야 할 것들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서울 도심의 종로, 을지로, 강남 등지에서 밤 10시 이후에 택시를 타본 적이 있는가? 한마디로 전쟁이다. 특히 겨울엔 영하의 대로변에서 두세 시간을 승차거부 기사와 실랑이 벌이기를 반복하고 있으면 온 몸이 얼어붙어 시세말로 “죽는 줄 안다.” 출동한 경찰은 소관부처인 서울시에 신고하라고 만 할뿐이다. 이 경우 성자가 아니라면 누구나가 화가 날 것이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필자가 겪은 경험담인데, 짧은 지면이어서 요점만 적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싶어 여러 번 관련 기관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승차거부문제는 20여년 전에 비해 지금도 별반 개선된 게 없다.
이외에도 나는 지금까지 시청, 경찰, 검찰, 법원, 노동부, 언론기관 등 공공기관과 접하면서 공무원 혹은 공공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임무나 직분을 망각하고 늘 갑의 입장에서 안하무인으로 시민들을 대하는 직원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많은 서민들이 각종 고충과 억울함을 당하고 살아가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접해보지 않은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여 당신이 이런 경우를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당하면 짜증을 넘어 분노하지 않겠는가?
한정된 지면에 유쾌하지 않은 필자의 개인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극심한 경쟁에서 파생된 실직, 가난과 소외, 억눌림, 억울함, 분노, 적개심의 정도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으며, 그 원인이 대부분 불공정과 부정부패에서 당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말하고 싶어서다.
IMF충격과 기득권 층 위주의 국가정책이 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복지는 고사하고 최소한도의 사회안전망이 망실돼 있으며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2001년부터 급증한 각종 생계형 범죄와 자포자기형 범죄에 이어 최근 ‘묻지마 형’ 사회범죄가 분출되고 있는 배경이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병들어가고 있다는 증좌다.
인간은 내면의 욕구에 이끌리면서 바깥 세계와 상호 교응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다. 생활환경과 조건이 좋으면 인성이 너그러워지고 선량해지기 마련이다. 반대인 경우엔 날카로워지고 경우에 따라선 우발적 행위를 하거나 범죄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 비정한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이 초기엔 불만 표출, 관심 유도, 억울함의 하소연, 분노와 욕구를 토해내지만 그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될 경우 택할 수 있는 건 자포자기적 일탈, 적의를 가진 성폭력과 강도 등의 ‘묻지마 범죄’, 그리고 최후엔 자살 밖에 없다.
지난 주 의정부역과 서울 여의도에서 발생한 칼부림사건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심리적 요인들이 얽힌 범죄행위다. 수년 전 관공서에 민원을 제기한 노인이, 관공서직원이 자신의 말은 듣지 않고 상대방만 편들자 억울함을 호소코자 저지른 남대문 방화사건도 마찬가지다. 칼부림이나 고의적 방화를 잘한 일이라고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사건발생 후 치안강화가 능사가 아니라 서민들의 각종 고통과 억울함이 보내고 있는 이상신호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의 해소가 문제의 근원적 치유책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특히 국가와 정치지도자가 고심해야 문제로서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시급하다. 그 전에 우선 공익기관과 힘 있는 자들부터 공정해야 한다. 노사, 빈자와 부자, 관리와 보통 시민들 간에 이익이 상충하면 중립위치에서 누가 옳은지를 가려 일을 처리하지 않고 무조건 가진 자와 있는 자의 편에 서선 안 된다.
위 글은 2012년 8월 30일자『경북일보』아침시론에「‘묻지마 범죄’에서 읽어야 할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변경돼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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