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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법칙’과 성 범죄

雲靜, 仰天 2012. 9. 7. 00:48

‘하인리히 법칙’과 성 범죄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1930년 미국에서 나온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모든 대형 사고는 그전에 이상 징후가 있으니 사전에 이를 알아차리고 예방조치를 취하라는 경고로서 그 때까지의 대형 사고들을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대형사고:경미한 유사사고:이상징후의 비율이 1:29:300이었다는 것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땐 그전에 벌써 29번의 경미한 유사 사고가 있었으며, 그 주변엔 300번의 이상 징후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감지됐었다는 의미다.

 

 

미미한 변화일지라도 위험 신호가 되풀이 될 때 이를 놓치지 않고 경각심을 갖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하인리히 법칙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삼은 패륜적인 악질 성폭행과 살인범죄는 모두 “대형사건”이고, 앞 사건은 후발 사건의 “29번” 사건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 사건 하나하나가 인명을 살상하고, 한 인간의 삶을 파괴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5년 사이만 해도 안산 조두순 사건, 화성 강호순 사건, 부산 김길태 사건, 지난 주 나주 고종석 사건 등 수 십 건이다. 한국사회의 병적 정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징후다. 그럼에도 정부는 결과적으로 “29번의 유사 사건”과 “300번의 이상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으며, 대책도 세우지 못한 셈이다.

  

이제 또 다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대책은 항구적인 것과 대증적인 것 두 가지를 병행해서 시행해야 한다. 항구적 처방으로는 무엇보다 현재의 ‘승자독식’ 사회를 정치와 법으로 개선해 승자가 베푸는 사회로 바꿔가는 게 근본적 해결방안이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비정한 경쟁사회는 평범한 사람도 범죄자가 될 가능성을 높인다. 성 범죄 발생원인에 대한 인식도 남성이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거나 술김에 저지르고, 호르몬이 과다 분비돼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성 범죄를 충동질 하는 사회적 규범의 문제라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취중 실수에 대해 관대한 것도 범죄를 키우는 문화적 숙주다. 술김에 우발적으로 그랬다는 범죄에 대해서도 일벌백계해야 한다. 언제든 로리타, 음란 포르노를 접하고, 성을 거래하는 각종 만남이 쉽게 이뤄지는 인터넷 환경과 여성을 상품화하는 광고도 수위가 조절되고 적절히 규제돼야 마땅하다. 남성과 여성 사이, 어른과 아이 사이에 조성돼 있는 양성간, 연령간의 권력 불평등이 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아동, 청소년과 여성 대상 성폭력 범죄는 이런 미시권력 관계가 억압적으로 투영된 것이다.

  

대증적 처방으로는 형벌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다. 아동 성폭행 범죄에 대해 인권보호와 사생활 침해라는 여론보다 죄 없는 "아동들의 보호가 우선"이라는 판단하에 강력히 징치하고 있는 미국사법을 참고해 한 번 성범죄를 지으면 “인생이 끝난다”는 공포감과 경각심을 느끼도록 최저 20년, 최고 감형 없는 종신형까지 언도할 수 있도록 법개정이 필요하다. 특히 다른 잠재적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미성년에 대한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에 대해선 무인도 등에 설치된 시설에 수용해 장기간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잡히지 않고 있는 성범죄자가 9,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의 범행은 시기와 대상면에서 극히 순간적이며 즉물적이다. 아동, 청소년, 장애우, 성인 등 전 여성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이 표식 없는 잠재 범죄자들에게 노출돼 있다. 범법자의 인권 운운하기에 앞서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불특정 다수 약자들의 삶이 보호받아야 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

 

위 글은 2012년 9월 7일자『경북일보』아침시론에 칼럼으로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