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일왕 사과 촉구는 정당하다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천황발언으로 촉발된 일본의 반응을 보면 최고통수권자의 발언은 발화의 시기와 동기가 중요하고, 일본정부를 통해선 독도문제, 과거사 왜곡시정, 성노예 및 강제징용자에 대한 시인과 보상 등의 외교적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를 수없이 보여 왔다. 국가통치권자라면 진작부터 일본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알고 이에 대한 대응을 국내정치용이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해나갔어야 했다. 불과 반년도 남지 않은 임기 말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총선을 앞둔 일본정치권과 극우세력이 향후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침략사를 정당화 하는 구실로 이 대통령의 행보와 발언을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방문은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게 옳았었음에도 이 대통령은 방문을 강행했다. 또한 지지율이 치솟자 이에 고무돼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라고 호기를 부렸고, 일왕이 방한할 상황이 아닌데도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한 발 더 나아갔다.
시기, 수순과 용어선택의 부적절성 때문에 국내 일각과 일본으로부터 진정성을 의심 받고 있지만 독도방문은 국가원수로서 영토수호의지를 천명한 정당한 통치행위였다. 일왕의 사과 촉구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로는 국가원수로서 식민통치의 피해자들을 대신해 요구할 수 있는 적법한 외교행위였다.
현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침략전쟁과 식민통치를 획책한 장본인은 아니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증발된 "통석의 념(痛惜の念)"이라는 언어유희에 불과한 애매한 말로 얼버무린 선왕 히로히토(裕仁) 일왕과 전일본국민을 대신해 분명한 사죄를 해야 한다.
만세일계를 내세우는 일왕가의 전통에 따라 제125대 일왕으로 즉위한 이상 그는 사죄의무도 만세일계로 이어받아야 하고, 군국주의나 초국가주의의 도래를 막지 못했기에 전국민이 집단적으로 전쟁책임을 져야 하는 일본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일왕은 일본헌법에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명문화 돼 국정상의 기능을 갖지 않는 비정치적 존재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헌법개정권에서부터 국회소집권, 중의원해산권, 비준서 및 외교문서의 인증, 외국대사의 아그레망 접수 등에 이르기까지 "국사행위"를 행하고 있다. 일본국민들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일왕은 일본국민을 대표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베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비롯한 일본정치권은 일왕의 사과요구가 마치 용의 비늘을 건드린 역린 죄나 되는 것처럼 이 대통령이 "예의를 잃었다"고 맹비난하면서 "한일관계가 100년 정도 멀어졌다"고 겁박한다. 이 발언을 구실로 일본정부 각료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재개했는가 하면, 한일 통화스와프 재검토를 시사하는 등 반격을 가하고 있다. 예의는커녕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은 정작 과거사왜곡과 독도에 대한 억지 주장, 성노예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정부와 극우세력 측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지만 진작에 했어야 할 말이다. 이 정도 수위를 지속하지 않으면 일본은 바뀌지 않는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든 미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을 제대로 아는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
위 글은 2012년 8월 17일자『경북일보』아침시론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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