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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총리 총격사건 범행동기의 두 가지 가능성

雲靜, 仰天 2022. 7. 9. 20:53

아베 전총리 총격사건 범행동기의 두 가지 가능성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나라(奈良)시내 참의원선거 지원유세 도중에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결국 사망했다.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자는 41세의 야마가미 테쯔야(山上徹也, 본고에서는 교육부에서 정해놓은 엉터리 표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지 않고 실제 일본음에 맞게 인명과 지명을 표기함)라는 나라시 거주 남성이다.
 
야마가미가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범인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시 경찰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는데 아마 정확한 동기가 최종적으로 밝혀지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피격 직전 나라시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유세를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
범행 직후 경호원들에게 제압돼 연행되고 있는 범인 야마가미 테쯔야
아베 전 총리가 피격된 사건 현장에서 꽃다발을 놓고 두 손을 모아 망자의 명복을 비는 추모객들

 
범인은 경찰조사에서 특정 종교단체 간부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이 간부를 노릴 작정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어머니가 종교단체("통일교"로 보도된 바 있음)에 빠져들어 많은 고액 기부를 하는 등 가정이 엉망이 됐는데 그 종교단체와 아베 전 총리가 연관이 있다고 여겨 총을 쐈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각종 종교단체와 극우세력들 간에 커넥션이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가운데 통일교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가운데 야마가미는 아베가 통일교를 비호하는 인물로 보고 범행을 결심한 게 아닐까 한다.
 
한편, 야마가미가 과거 2002~2005년까지 임기제 자위관으로 일한 일본 해상자위대의 직장 관계자는 그가 “다소 조용했고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았다”며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범인이 경찰에 진술한 내용을 보면 개인적 원한이나 분노가 원인이 된 총격사건이었다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그가 해상자위대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점을 두고 일명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국 헌법 개정이 진전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결행한 것일 수 있다는 추측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만, 이 글에서는 단정을 내리지 않고 위 두 가지 범행 동기의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이에 대해 차례로 짚어보기로 한다.
 
먼저 개인적 원한이나 분노에 대한 동기에 관해서다. 이 참에 일본사회에 대한 한국인의 대체적인 오해 한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은 굉장히 민주화된 사회, 질서 있고 안정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정체는 상징권력이라는 ‘천황’ 아래에 민주주의이념과 제도가 작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줌으로써 잠시 ‘55체제가 무너진 1990년대 후반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자민당 일당이 전후 70년 이상 집권함으로써 사실상 일당독재 체제가 빚은 국민 주권의 형해화와 일본국민의 피동성, 타율성이 보편 기류가 된 이름뿐인 민주국가일 뿐이다.
 
일본국 헌법을 조금 아는 사람은 위 나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국 헌법에는 인신의 자유, 사상, 신앙, 양심, 종교 자유의 보장이 확실하고 세세히 규정(헌법 제20조, 제31~40조)돼 있기 때문이다. 맞다! 일본국 헌법에는 기본적으로 죄형법정주의, 법정수속보장, 공개 심판권리 보장, 불법 구류, 임의체포, 강제 구금, 고문 금지 등등의 조항들이 형사소송법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아주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이런 개인적 인권에 대한 보장이 헌법에 상세하게 규정돼 있는 것은 전전 일본의 경찰, 특히 特高警察이 국민들을 임의로 체포, 구금하고, 고문까지 가했던 인권침해에 대한 역사적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특고경찰에 대해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하게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이태진, 서상문 등 공저,『일제 외무성경찰의 임정·항일지사 조사기록 : 일본제국 ‘외무성경찰사’ 항일운동문건 총람』, 태학사, 2021년, 참조)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헌법상에 보장된 것일 뿐이다. 법률적으로 보장된 것과 달리 실생활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일본 국민들의 사회적 인식, 행동양식, 보이지 않는 사회적 규범에서 오는 제약 요인들은 실정법과는 상당히 다르게 광범위하게 존재하면서 전반적으로 일본국민들의 생각과 행위에 관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아직도 일본인들은 전전 천황제 국가, 또 그 보다 더 이전인 에도(江戶)시대에 형성된, 그 정도가 누룽지처럼 굳게 달라붙어 있는 구습과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내가 일본인들이 타율성에 포박돼 있다고 한 근거 중의 하나이고, 이름뿐인 천황이라지만 천황이 현존하고 있는 것도 주요 요인 중의 한 가지다. 
 
또 사상, 신앙, 양심, 종교 자유에 대해서도 일본국 헌법은 상세하게 규정하고 보장돼 있다. 이 역시 전전 천황제국가에서 국민들에 대한 군부와 정부의 폭압적인 간섭으로 인한 사상적, 정신적 억압, 사상 및 신앙 자유의 부재에 대한 성찰이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일본국 헌법 제20조에는 정교분리 원칙이 규정돼 있고, 이로써 구천황제 시대의 국가신도가 완전히 부정돼 있다. 그러나 최근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극우 세력들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를 지속적으로 공론화시키고 있는데,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저의는 천황제 국가의 부활 그리고 그 하부 차원의 여러 가지 형식 요건들인 기미가요(君が代)와 욱일기의 国歌 및 국기 인정, 지찐사이(地鎮祭)의 공식화를 노리는 것인데, 천황의 공식활동과 지찐사이의 막대한 비용을 전부 정부의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헌법에서 명문화한 정교분리원칙을 의도적으로 어기고 있는 것이다.
 
또 겉으로 보일 때는 일본은 질서가 잡혀 있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국민들의 자발성에 의한 안정이 아니라 강요된 안정이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주변의 눈을 의식하는 의식, 체면을 중시하는 체면 의식, 자의식 과잉 등 타자중심적, 타자의존적, 타자본위적인 성향이 강하다. 집단의식, 자기 책임의식이 소멸하게 되는 데는 그 이면의 정점에 천황이 도사리고 있다. 천황제가 존속하는 한 또 다시 과거처럼 미래에도 화근의 구심점이나 진원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대단히 위험한 국가다.
 
흔히 일본인은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아가 확립되어 있지 않고,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든지 적극적,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것은 곧 일본인의 기본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의 불확실감으로 이어진다.
 
많은 일본인들은 여기에서 생겨나는 욕구와 불만을 밖으로 표출할 수 없어 안으로만 층층이 욱여넣고 사는 것이 여전히 변하지 않은 “벤또형” 사회에서 대부분 욕구와 분노를 억누르고 살고 있다. 그로 인한 불만과 스트레스 지수가 여타 선진국들 보다 훨씬 높고, 그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도 심각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타인시선을 의식하면서 산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선 타인의 눈치를 보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규율에 제약을 받아서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지 못하고 산다. 그것의 사회적 기제는 이른바 에도시대 300년에 걸쳐 견고하게 형성된 ‘무라하찌부’(村八分)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선 나의 다른 글(수년 전에 써서 본 블로그에 올려 놓은 '일본군은 원래부터 잔인했을까?' https://m.blog.daum.net/suhbeing/177)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도 국가 차원에서 이른바 『春秋左氏傳』 昭公20年條의 내용에 기원을 두고 있는 和라는 가치가 강조되고 주입되고 있다. 공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어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화라고 했다.(喜怒哀樂之發而皆中節, 謂之和)
 
일본의 위정자는 이 和(わ)를 일본인과 일본사회 전체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이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와"를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체화되도록 교육 받아온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대단히 고분고분하며, 친절하고 융화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일본인의 특성은 이렇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행위하고 집단 속에서 자아를 확인하고 안정감을 느끼면서 살지만, 집단에 소속돼 있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주체적인 것도 하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개인이 자신의 眞我에서 비롯되는 언행을 하게 되면 대단히 극단적이거나 폭력성을 띤 광기로 나타나곤 한다. 동시에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체 집단에 미루어버리는 성향을 보인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사례들이 실증해주고 있다. 그 작동시스템이나 행동동기 요인의 정점에도 천황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 속에 처한 일본인들이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위안처 혹은 화를 삭이거나 뿜어내는 분출구는 크게 두 가지다. 친목회, 동호회, 종교단체 등에 빠지는 것이다. 이번 야마가미가 밝힌 진술 내용대로라면 그의 모친도 종교단체에 깊이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 헌금을 과도하게 내어서 가정불화의 원인이 된 것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 탈출구는 외부와 단절한 채 혼자 생활하면서 자기만의 세계나 아성을 쌓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는 장기간 자기 집이나 방에 틀어박혀 사회활동에 전혀 참가하지 않는 상태의 사람을 뜻하는 은둔형 외톨이(引き籠もり)가 굉장히 많다. 이 형태의 긍정적, 순기능적 부류는 게임이든, 학문이든, 사업이든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 역기능적 부류는 개인적, 나아가 사회적 일탈행위나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일본인들 중에는 자기가 사는 곳에선 고분고분한 순종적 인간으로 살다가 타지에 가면 꺼릴 거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의식을 가리키는 말로 “旅の恥はかき捨て”(타비노 하지와 카끼스떼)라는 관용어가 있다. 한 마디로 여행시의 창피는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인데, 여행지에선 아는 사람도 없고 오래 머물지도 않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고 부끄러워 할 게 없다는 뜻이다. 이때 여행지는 곧 자신이 살지 않는 타지, 객지를 말한다. 즉 자기가 살고 있는 고향에서는 고분고분하게 친절하고 융화적으로 살아도 바깥 타지에 가서는 숨겨진 본성대로 살거나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산다는 것이다. 평균적 일본인들에겐 이 의식이 널리 내재돼 있다. 그것은 바로 평소 살면서 쌓이는 욕구와 불만을 해소하는 방식의 하나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일본사회의 내적 작동기제가 에도 시대 300년 동안에도 그랬었고, 그 이후 1867년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메이지, 타이쇼우(大正)와 쇼우와(昭和)시대 때도 암살사건이 빈발했으며, 전후에도 지금까지 수많은 암살 사건들이 일어난 사회적 배경이다. 이번 야마가미도 크게는 사회가, 구체적으로는 종교단체가 자기 모친과 가정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억눌린 불만과 분노가 표출되면서 저지르게 된 사건일 수 있다.
 
일본사회에는 이처럼 원한이나 분노에 의해 저질러진 살해사건이 엄청나게 많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암살사를 일별해보면 바로 실감하거나 실증이 된다. 전직 수상을 지낸 인물이 습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만 해도 이번 아베 신조가 일본에 내각제가 생겨나고 총리대신이 있게 된 20세기 초엽 이래 총 일곱 번째다. 테러나 공격을 받아 사망하진 않아도 부상당한 수상이나 정치인까지 더하면 부지기수다.
 
1909년 안중근 의사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한 일본 초대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첫 번째였다. 다음으로 1921년 토우쿄우역에서 칼을 맞고 살해된 하라 다까시(原敬) 수상과 1930년에 같은 토우쿄우역에서 총격을 당해서 그 이듬해에 사망한 하마구찌 오사오(浜口雄幸) 수상이 있다. 1932년 소위 5.15사건에서 현실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일군의 청년장교들에게 살해된 이누까이 쯔요시(犬養毅) 수상, 1936년의 2.26사건에서 역시 육군의 皇道派 청년장교들에게 척살된 다까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 수상과 사이또우 미노루(斎藤実) 수상 등이다. 이 사건들은 모두 전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고 전후에는 이런 사건이 없었다가 이번 아베의 살해사건이 처음 일어난 것이다.
 
전후 수상과 전직 각료, 정당 간부가 습격당한 사건으로는 아베 신조의 조부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수상이 1960년에 수상관저에서 우익 분자에게 칼을 맞아 중상을 입은 경우를 들 수 있다. 같은 해 아사누마 이네지로우(浅沼稲次郎) 사회당 위원장이 17세의 소년에게 척살되기도 했다.
 
수상급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피습을 당한 사건은 상당히 많다. 1992년 3월 자민당의 실력자 가네마루 신(金丸 信) 자민당 부총재가 토찌기(栃木)현에서 강연 후 권총 저격을 당했다. 가네마루는 다친 데가 없었고 저격한 우익단체 구성원은 현장에서 붙잡혔다. 또 1994년 5월 수상직에서 사임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가 토우쿄우都 내의 호텔 로비에 있는 것을 노린 우익 단체의 한 남성이 천정에 총탄 한 발을 쏜 사건도 있었다. 1990년 1월 마또시마 히또시(本島等) 나가사키(長崎) 시장이 나가시키시 청사 앞에서 우익단체의 간부가 발사한 총탄을 맞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왼쪽 가슴에 맞았지만 간신히 목숨은 건졌다.
 
비교적 근년에 벌어진 사건으로는 2002년 10월 당시 61세의 민주당 소속 이시이 코우끼(石井紘基) 중의원이 토우쿄우都 내의 자택 앞에서 우익 활동가들에게 칼을 맞아 사망한 사건 그리고 2007년 4월 선거운동 중이던 이토우 잇쬬우(伊藤一長) 나가사끼 시장이 JR나가사끼역 근처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폭력단 간부가 쏜 권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들 수 있다. 이토우 잇쬬우도 사망 당시 61세였다.
 
야마가미의 범행동기로 두 번째 가능성은 현재로선 옅어 보이지만 이를 계기로 일본 내 극우파의 불만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극우파를 중심으로 일본에는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하자는 움직임과 그에 대해 찬성할 수 없다면서 반발하고 있는 평화세력 간의 투쟁이 진행돼오고 있다. 전자는 전쟁과 해외파병이 가능한 ‘정상국가’, ‘보통국가’로 재건해야 된다는 주장을 펴오고 있다. 또한 자위대의 국가군대화는 물론, 핵보유를 현실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고, 언론에서도 잘못 보도하고 있는 게 있다. 즉 일본의 우익과 극우 세력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피살된 아베 신조를 “일본 우익의 상징적 인물”이라거나 “일본 우익의 구심적 인물”이라고 보도한 언론들이 그 사례인데, 잘못 짚은 기사다. 기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오보다.
 
먼저 일본 좌우익의 구분 기준은 전후 평화헌법 중 특히 제2장 “전쟁의 방기”를 규정한 제9조의 준수여부다. 제9조는 아래와 같이 규정돼 있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것을 방기한다." (日本の国民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国際平和を誠実に希求し、国権の発動たる戦争と、武力による威嚇又は武力の行使は、国際紛爭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永久にこれを放棄する。)
 
전쟁포기, 무력행사 포기를 중핵으로 하는 위 내용의 확대 적용으로 무력불보유, 전수방어와 비핵3원칙이 연동돼 있다. 이를 평화헌법체제라고 부르듯이 이것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정치이념의 체제가 돼왔다. 이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게 우익이고, 이 체제를 깨뜨리고 기존 자위대를 국가의 공인된 무력(군대)으로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군비재건과 대외전쟁을 할 수 있는 소위 "정상적인" 국가체제를 만들고자 하는 세력은 극우파다. 우파와 극우파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선연한 전선이 형성돼 있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과 모든 언론매체들이 아베 신조를 우파라고 자리매김 하거나 좌파와 우파 간의 차이만 얘기하는 까닭은 우와 극우 간의 이 전투적 대립관계를 식별하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다. 
 
좌익은 평화헌법체제의 유지는 물론이고 기존의 자위대까지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일본공산당, 사회당 등의 좌익 정치세력은 평화체제를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자위대의 무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평화헌법에서 규정한 무력행사 포기 조항을 실제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위대를 둬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서 문제의 한 복판에 있는 집권당인 자민당의 구성, 당론 등의 존재양태와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된다. 자민당의 파벌은 역사도 길고 지금도 끈질기게 존속하고 있다. 크게는 보수본류와 보수방류, 기타로 나누어지는데, 다소 도식적으로 정리하면 크게 보수본류(비둘기파)와 보수방류(매파)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평화헌법 유지, 미일안보체제 하에서 경제 우선, 대미협조외교 노선을 따르는데 반해 후자는 평화헌법 개정, 재군비, 대미자주 외교를 기조로 삼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대중국정책도 파벌을 구분하는 정책 범주에 들어간다.
 
특히 자민당 내 최소 8개 파가 하나의 독립된 정책을 가지고 상호 공존하면서 여러 파벌들이 각기 독립된 정당처럼 기능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자민당을 지배하는 것이 곧 일본을 지배하는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인데, 자민당 내에도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이를 지키고자 하는 호헌 세력도 있다. 전자가 매파이고 후자가 비둘기파다.
 
이번 참사로 절명한 아베 신조는 자유헌법론, 헌법개정론 등을 주창하며, 일본의 재무장에 적극적인 태세를 보여 온 “淸和政策硏究會”의 일원이었다. 통칭 “호소다(細田)파”로 불리는 이 파는 원래 아베 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결성한 “보수방류”의 원조인 “十日會”를 출발점으로 한 파벌로 자민당을 대표하는 친미 매파 집단으로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고, 아베 총리를 비롯한 내각의 주요 각료들 다수가 소속돼 있다. 호소다파는 사실상 자민당을 지배하고 있는 파벌인데, 기본적으로 반공주의 색채가 강했었기 때문에 냉전 시대에는 같은 반공국가였던 한국, 대만 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었지만 지금은 상황변화에 따라 결이 다르다. 그 외에 개헌을 지지하는 파로는 나중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 주축이 된 士志會와 현 친중파로 알려진 니카이(二階)파도 있다.
 
아베 신조, 고이즈미 준이찌로우(小泉純一郎) 등 개헌을 하고자 하는 호소다파와 니카이파 세력은 평화헌법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노력을 경주해오고 있다. 즉 기존 체제를 위호하는 것이 통상 보수주의자들인데, 따라서 이 세력은 우익이 아니라 극우세력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자민당 외에 개헌을 당론으로 가진 극우 당은 공명당, 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 등이 있다. 
 
헌법개정과 재무장을 주장하는 매파가 지금까지 자신들의 뜻과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고 독주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과반이 넘는 일본국민의 호헌의지와 자민당 내의 여러 파벌들 간의 상호 견제, 특히 개헌에 반대하는 파벌(渡辺, 山崎拓, 石原, 森山로 이어지는 ‘近未來政治硏究會’의 이시하라파, 개헌과 재무장에 반대 기치를 내건 ‘平成硏究會’와 ‘爲公會’ 등)의 반대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공회는 외상을 지냈고 한국인들에게 일본군위안부 관련 ‘고노 담화’의 당사자로 알려진 코우노 요우헤이(河野洋平)가 중심인물이다.
 
지금까지 위에서 소개한 일본 내 암살 혹은 테러사건들에는 하나의 큰 공통점이 보인다. 하나같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 기득권층에 대한 억눌려온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만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 그리고 테러로 정책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목적했던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기존 정책의 실행이 빨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모친과 가정을 파괴시킨 종교단체 그리고 그것과 정치적 커넥션이 있는 극우세력에 대한 분노로 일어난 것이다. 반면, 만일 아베 신조를 사망케 한 범인 야마가미 테쯔야가 만약 평화헌법 개헌의 진전을 노린 범행이었다면 그가 목적으로 한 것은 영향을 받지 않거니와 개헌이 당장에 이뤄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당장 바로 내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도 자민당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극우표가 결집될 것이다. 또 아베 신조가 현임 총리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일관계라든가 중일관계와 한일관계 등의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극우파의 개헌 주장이 더 거세질 것이고, 자민당 내 존재하는 아베 신조가 속한 호소다파의 세가 다소 위축되면서 상대적으로 현 수상 키시다 후미오(岸田文雄)파의 세력이 공고해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전체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빌미로 삼아 사회안전을 명분으로 일본국민들을 더욱 체제 순종적이고, 개헌의 필요성을 공감할 수 있도록 몰고 갈 것이다.
 
2022. 7. 9. 20:4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