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아시아사

우리가 살았던 추억의 세계로 : 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 탐방

雲靜, 仰天 2022. 5. 5. 19:36

우리가 살았던 추억의 세계로 : 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 탐방

 

방금,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에 있는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을 다녀왔다. 한국 근현대사를 말이나 글로가 아니라 눈으로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재미있게 봤다. 2010년에 개관했다는 이 박물관은 총 5개 층으로 구성돼 있었다. 지하 1층(풍물관), 지상 1~2층(문화관), 지상 3층(한국정치 100년사 사료전), 옥상 전시장(헬기 등 전시)이었다. 주소는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59-85로 돼 있다. 박물관 주변엔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파시 같은 것도 형성돼 있었다.

 

들어가서 보니 박물관은 우리가 살아온 20세기 현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의 입새에까지 이르는 갖가지 모습들을 재현해놓은 거대한 기억의 재생 공간이었다. 또 근현대사 관련 물건들을 수집해 놓은 게 얼추 수 만 가지는 돼 보였다.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았다. 실제로 박물관측에 물어보니 대략 7~8만 점 정도 된다고 했다. 게다가 재현물의 실재성과 사실성도 대단히 뛰어났다. 특히 세트물이 너무 정교해서 흡사 실물 속에 들어가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 박물관 내부에 설치된 세트물과 전시된 다채로운 사진들 그리고 실물의 소품들을 보게 되면, 우리가 살아온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잊고 산 옛날 일들이 오랜 시간차를 뛰어넘어 바로 소환된다. 미시적으로는 개인과 가족이 살아온 생활의 한 장면이자 신산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거시적으로는 한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외양적인 근대화, 산업화에 성공한 사실도 한 눈에 실감나게 해준다. 우리가 살아 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서 지금과 비교가 되는 것이다. 금석지감의 느낌이다. 한민족의 5000년 역사에서 최초로 가난을 벗어난 것도 완전히 실감하게 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구하려고 해도 쉽지 않는 오만 가지 물건들을 보면 누구든지 박물관 건립자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많은 물건과 자료들을 수집하느라 수십 년 간 발품을 팔았을 것이고, 그기에 들어간 경비와 물건구입비도 정말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해야 할 일을 한 개인이 한 것이라니 정말 경탄해마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하거나 빠진 것, 있으면 더 좋을 것이 몇 가지 없지 않다. 크게 짚어보면 세 항목이다.

 

우선, 수집 전시된 풍물들 중에 그래도 수집이 안 되고 빠진 게 있다. 약쟁이, 시험비커에 넣은 놓은 디스토마, 회충, 편충 등의 각종 기생충들과 구충제, 무성영화와 변사, 호떡집, 풍각쟁이, 서커스단, 차력사, 우체부,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의 대합실 풍경, 양조장, 모기약 방역차, 차장, 외양간, 마굿간, 코뚜레 등의 소와 말 관련 각종 도구들, 우시장, 고속도로 건설, 포스코나 현대자동차 공장 건설장면 사진, 민방위훈련, 편물기계, 연날리기, 화투, 윷과 윷놀이 등의 세시풍속, 스케이트나 썰매 타는 모습, 모심기, 식목일 나무심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쥐불놀이, 술래잡기, 오자마, 고무줄놀이, 소풍, 운동회 풍경, 조기청소, 민방위훈련, 전통 혼례식, 장의사, 상여, 중국집, 선창가, 어판장 경매, 어름공장, 사창가 풍경, 크리스마스 씰, 미제 스푼 및 반합 등등...

 

더 큰 공간이 필요하긴 해도 이 외에도 각종 직업이나 산업 분야별 풍물과 도구, 물건들을 전시해놓으면 내용이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아쉬운 점이 또 있었다. 예컨대 풍물과 사진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해설이 거의 없었다는 점, 스토리가 빠져 있었다는 점, 박물관의 주제가 한국 근현대사라고 돼 있지만 전시된 내용은 현대에 치중돼 있지 근대 관련 풍물은 많이 부족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시를 통해 무얼 전해주려고 하는지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컵셉에 대한 역사학자나 민속학 전문가의 설명이 제시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공간만 지금 보다 더 확보된다면 삶의 변화가 대비되는 코너를 마련하면 실감의 도를 더 높혀 줄 것이다. 역사학에서 비교사의 효용이 그렇듯이 비교를 통해서 자신을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고 의미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명이 없던 시절의 호롱불, 세탁기가 없던 시대의 빨래 노동, 선풍기가 없던 시절의 부채사용, 냉장고가 없던 시대의 작은 찬장과 매일의 장보기, 난방을 위한 아궁이, 연탄불 시절의 수고로움 등등. 

 

그렇다고 이 박물관의 성과와 명성에 흠이 되는 건 아니다. 단지 '옥에 티'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 족히 8만 가지나 된다는 세트물, 사진과 실물 및 모형들에 대해서 일일이 해설을 써붙인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다. 다만 일일이 다 설명하라는 게 아니라 시대를 구분해서 큰 맥을 짚어주는 설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사족은 그만 접고 지금부터 우리가 걸어왔던 과거로 여행을 떠나 보자. 아래에 올려놓은 사진들은 거의 다 내가 현장에서 관람하면서 일일이 직접 찍은 것이다. 이 사진들 중에 10여 컷 정도는 인터넷에서 본 박물관의 이미지를 캡쳐한 것이다.

 

2022. 5. 6. 05:3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