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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리제이션’ : 나이 들면 나타나는 노화증세는 병일까?

雲靜, 仰天 2020. 9. 14. 14:01

‘메디컬리제이션’ : 나이 들면 나타나는 노화증세는 병일까?

 

‘메디컬리제이션’(medicalization)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몸에 특별한 이상은 잡히지 않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나타나는 사소한 증세나 노후 현상까지도 모두 병이 아닌가 의심이 들면서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면서 진찰을 받고 약을 먹는 ‘병원의존형’ 사람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다. “몸이 한창 때하고 많이 달라, 증상이 있으니 진찰을 받아보고 약을 처방 받아 먹어야지”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을 두고 하는 일종의 병증 증세다. “모든 증상을 치료 대상이라 생각하며 환자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수년 전부터 서구에서 생명공학, 의학 외에 사회학 학자들이 고령화시대의 사회문제로서 이런 현상들에 주목하기 시작한 분야다.
 
직장생활을 평균적으로 30년 넘게 하고 은퇴하면 처음 얼마 동안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다 나이도 그다지 노년 축에 들어가지 않고 몸 상태도 그런대로 괜찮아서 무탈하게 잘 지내는 이들이 많다. 그 동안 직장생활 하느라 마음 놓고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도 여기저기 가보고, 동기나 친구들과 함께 안 가던 등산도 해본다. 또 취미 생활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는 등 노후생활을 보낸다.
 
문제는 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는 법이라는 사실이다. 60대까지는 큰 불편 없이 지내다가도 70대로 들어서면 몸에 하나 둘씩 삐걱거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빠른 사람은 벌써 60대부터도 나타나기 시작한 이들도 있다. 건강에 문제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빨간 불이 켜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 없이 더부룩해진 배, 팔다리 관절이 쑤시고, 어깨가 결리고, 치아가 흔들리고 그 좋던 눈마저 흐릿해지고 눈물이 자주 고인다. 잘 들리던 소리까지 모기 소리로 들리는 귀, 말까지 어눌해지는 듯해서 벌써 상노인이 된 게 아닌가 걱정되면서 매사에 의욕이 떨어진다.
 

 
이쯤 되면 성격이 좋다는 사람도 몸의 이러한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으로 짜증을 내는 일이 늘어나고 마음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몸에 전에 없던 삐꺽거림이 있는 등 조금이라도 불편한 증세가 있으면 몸에 이상이 온 게 아닐까 하고 바로 병원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불편한 증세는 젊은 시절 때처럼 금방 호전되지 않는다. 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찾기 시작한 병원순례가 시작된다. 평생 병원 신세 안 질 것 같던 자신감은 사라져가고 의사를 찾는 횟수는 늘어나고 검사도 늘어만 간다.
 
여기서 잠깐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몸에 나타나는 각종 불편하거나 아픈 증상들은 대부분 노령화 진입 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것은 어쩌면 마음이 병을 만드는 심리적 현상이자 고령화시대의 일반화된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노화의 징후로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은 병이 아니다.
 
우선 갓 진갑이 지난 초로인 나만 해도 예전에 없던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외숙부와 이모님이 모두 심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선 나도 외가 쪽의 유전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50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약간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한 바 있고, 지금은 점차적으로 청력저하가 진행되고 있다.
 
관절에 소리가 나면서 사지와 몸통의 근육들도 허물거리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운동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정말 많이 한 덕을 평생 보면서 산 느낌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딴지 근육이 단단해보여서 하체 근육은 양호하다고 착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게 아니다. 바빠서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긴 한데, 운동량이 부족한 것 자체가 노령의 한 특성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아직 이러한 경미한 노화증세 외에는 별반 무거운 증세는 나타나고 있지 않으니 노화에 따른 증상들은 경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게 순리인 듯하다. 한 마디로 나보다 더 나이가 든 분들에게는 더 많은 증세가 나타날 것이다. 자신의 경험담이라기보다는 의학지식을 갖고 쓴듯한 구체적인 예들이 잘 정리된 글이 있어 아래에 인용한다. 많이 참고가 될 것이다.
 
“나이 들면 호흡에 쓰는 근육과 횡격막이 약해진다. 허파꽈리(肺胞)와 폐 안의 모세혈관도 줄어든다. 가만히 있어도 예전보다 산소가 적게 흡수되어 평소보다 움직임이 조금만 더 커지거나 빨라지면 숨이 찬다. 이건 질병이 아니다. 체내 산소량에 적응하면서 운동량을 조금씩만 늘려가도 숨찬 증세는 개선된다.
 
같은 이유로 기침도 약해진다. 미세먼지 많은 날 기침이 자주 나온다는 호소는 되레 청신호다. 기침은 폐에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질을 밖으로 튕겨 내보내는 청소효과가 있는데, 그런 날 기침이 있다는 것은 호흡 근육이 제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만성적 기침이 아니라면 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
 
고령에 위장은 움직임이 더디고, 오래된 속옷 고무줄처럼 탄성도 줄어서 음식이 조금만 많이 들어와도 금세 부대낀다. 담즙 생산이 줄어, 십이지장은 일감을 처리할 연료가 모자란 셈이니 기름진 고기의 소화가 어렵다. 젖당 분해 효소도 덜 생산돼 지나친한 유제품 섭취는 설사로 이어진다. 대장은 느릿하게 굼뜨져서 식이섬유 섭취라도 줄면 변비가 오기 쉽고, 막걸리라도 좀 마셨다하면 어김없이 아랫배가 사촌이 논 살 때 마냥 슬슬 아파온다.
 
이런 불편들은 고령 친화적 생활습관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위가 더부룩하면 연한 음식과 소식(小食)으로 습관을 바꿔 가면 된다. 또한 고령의 상실감이나 서운함이 밀려올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병이 되기도 하고 아니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고의 전환이 권장되지 치료가 꼭 필요한 게 아니다. 가령 양귀비가 옆에 바짝 붙어 있는데도 한창 때 같았으면 천방지축으로 기고만장했을 ‘똘똘이’가 기침(起枕)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 ‘아! 자손을 번식시킬 의무가 끝났구나’라고 수긍하면 병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끝난 의무를 치료대상으로 여겨서 의사나 약 등에 의존하여 억지로 더 질질 끌게 되면 병을 만드는 것이 된다. 서운하겠지만 ‘똘똘이’가 자기 몸에서 가장 똘똘했던 시절은 벌써 지나갔다. 한편, 노화 현상을 모르거나 간과하면 노년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나이 들면 음식을 삼킬 때마다 인후가 氣道 뚜껑을 닫는 조화로움이 둔해진다. 노인들이 자주 사레들리는 이유다. 노년의 골 감소증은 어느 정도는 숙명인데, 목뼈에 골다공증이 오면,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앞으로 쉽게 숙여진다. 이는 氣道를 덮는 인후를 압박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기름 바른 인절미나 조랑떡이 입에 당겨 소시(少時)的처럼 한 입에 냉큼 삼켰다간 氣道가 막혀 사달이 날 수도 있다.
 
불필요한 약 복용이나 무심코 건네받은 건강 보조 약물이 몸을 그르칠 수도 있다. 노령에는 간 세포수가 감소하고, 간으로 흐르는 피도 줄어들뿐더러 간 효소의 效率性도 떨어진다. 그 결과 약물대사(代謝)가 늦어지고, 체내 잔존량이 늘어나 藥禍가 일어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여러 증상에 적절히 순응하면서 다스려가거나, 하다못해 무거워진 몸을 자주 움직여 주기만 해도 한결 가뿐해질 수 있다.”
 
어떤가? 노후현상과 노년의 질병이 구분되는가? 위에 열거된 노령화 패턴들을 이해한다면 medicalization을 적지 않게 떨쳐내 버릴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나타나는 여러 불편함과 고통은 노령화의 자연스런 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누구나가 인생은 생로병사라는 동일한 운명을 겪게 돼 있다. 태어나는 것도 처음이요, 늙는 것도 처음이고, 죽는 것도 처음이다. 난생 처음 늙어 보기 때문에 신체의 노화증세가 어떤지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또 지금까지는 굳이 노화와 질병을 구별하여 배울 기회나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늙어 가는 것’과 ‘아픈 것’은 비슷해 보여도 다른 것”이라는 말은 명언이다.
 
노인이 돼 가면서 몸에 나타나는 한두 가지, 혹은 몇 가지 증세들은 심각한 죽을병이 아니다. 모든 이들이 비켜갈 수 없는 생로병사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이 자연스런 현상을 병으로 알고 근심에 쌓이거나 호들갑을 떠는 그 자체가 오히려 병이다. 그런 생각이 바로 없던 병도 키울 수 있다. 늙는 건 숙명이고, 그걸 만물의 이치로 받아들일 일이다. 노화증세와 질병은 다르다.
 
2020. 9. 14. 13:42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