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공지 및 정보 마당

안중근 의사의 유묵 ‘爲國獻身軍人本分’

雲靜, 仰天 2020. 9. 18. 11:51

안중근 의사의 유묵 ‘爲國獻身軍人本分’


그저께 민주당 대변인 박성준 의원이 자신의 천박한 역사지식과 감각 제로의 정무능력을 드러낸, 결코 파장이 작지 않을 대형 ‘사고’를 쳤다. 집권당 당대표까지 지낸 유력한 정치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그의 “자랑스런” 아들 서 모씨를 비호하느라 둘러댄다는 게 전혀 엉뚱하게도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爲國獻身軍人本分’에 비견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탈법, 위법행위였음에도 안 의사께서 말씀 하신 “나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을 다한 것이라고 갖다 붙인 것이다.

文面의 뜻만 알고 그 이면의 깊은 역사적 맥락은 알지 못한 채 생각 없이 사용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일개 사병에 불과한 그 아들 서 모씨를, 그것도 부대복귀 없이 무려 두 차례에 걸쳐 23일간의 긴 병가와 정기휴가를 “누군가”의 전화 한 통화로 휴가를 연장한 위법자를 불후의 민족영웅 안중근 의사와 동급에 놓게 돼 안 의사를 능멸하게 된 셈이다. 안 의사의 정신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작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개 병사가 부대복귀 없이 그렇게 긴 휴가를 사용했다면 그것이 정상적이라고 믿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과연 부대장도 그러기 쉽지 않는데 일개 병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유력 정당의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아니고선 상상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특혜”가 아닌가? 추 장관의 아들을 감싼답시고 안중근 의사의 말씀을 끌어다 썼지만 자신의 역사지식 무지와 어설픈 정무적 감각만 폭로했을 뿐이다. 번지수를 잘못 잡은 황당하기가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다. 어이없는 이 무지에 대한 비판은 별도로 신문 칼럼으로 실을 생각이고, 여기선 안 의사의 이 유묵에 얽힌 얘기만 간단하게 소개한다.

‘爲國獻身軍人本分’은 보통 안 의사가 남긴 또 다른 유묵(遺墨, 생전에 붓글씨로 남긴 글)인 ‘國家安危勞心焦思’와 짝을 이룬다. 즉 각기 발묵된 시간과 그것의 증정대상자는 달라도 의미로 봐선 두 문구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國家安危勞心焦思 爲國獻身軍人本分로 앞 뒤 對句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설명도 이 순서로 하는 게 자연스럽다.



두 폭의 유묵 모두 명주천에 행서체로 쓰여진 붓글씨다. ‘國家安危勞心焦思’와 ‘爲國獻身軍人本分’은 모두 크기가 큰 차이가 없지만 전자가 조금 더 길고 폭이 넓을 뿐이다. 前句는 세로 149㎝, 가로 38.2㎝의 이 8자를 중앙에 쓰고 오른쪽 위에 ‘贈安岡檢察官’, 왼쪽 아래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로 돼 있고, 그 밑에 안 의사 掌印이 먹물로 찍혀 있다. 後句는 세로 137㎝, 가로 32.8㎝로서 한 가운데 본문 글의 왼쪽 아래에 ‘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謹拜’와 그리고 그 아래에 안 의사 掌印이 찍혀 있다.

참고로 안중근 의사가 남긴 서예 유묵은 모두 그가 사형을 선고 받고 뤼순 감옥에서 쓴 것이다. 사형이 확정되자 뤼순 감옥의 많은 관리들이 저도나도 명주비단과 지필묵을 가지고 옥중의 안 의사를 찾아와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안 의사는 그간 집필해오던『안응칠역사』와『동양평화론』의 집필 시간 이외에 틈을 내어 부탁한 상대에 알맞은 문구를 써줬는데, 총 200여점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의 유묵은 60여점이고, 그 중 54점이 서울 남산의 安重根義士紀念館에 전시돼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安重根義士紀念館에 가서 안 의사의 다른 유품들과 함께 이 두 유묵을 직접 감상한 바 있다.

주로 고전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글귀들이 주를 이루는 안 의사의 서체는 문외한이 봐도 단박에 알 수 있을 만큼 선명한 특징이 있다. 붓글씨를 조금 흉내만 낼 정도로 서예에 밝지 않는 내가 보기에 대략 두 유묵은 안 의사 특유의 호탕한 필법이 유감없이 펼쳐진 서체인데다 전체 화선지상의 공간구도를 봐서 공히 서예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보인다.

특히 내가 보기에 ‘爲國獻身軍人本分’은 안 의사께서 사형집행 2시간 전에 쓴 글씨인데도 전혀 떨림이나 흔들림이 없이 평소처럼 태연자약한 상태에서 쓰신 유묵과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당시 생사에 초연한 안 의사의 기품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어서 가중치를 더 줘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다 서예작품으로서의 가치 외에 서양제국주의에 대응해 아시아의 평화를 주창하고 추구한 안 의사의 위국애민의 정신성을 엿볼 수 있으며, 일본인조차 안 의사의 의로운 기개에 심복하여 죽을 때까지 그를 기리면서 애지중지하던 유묵이란 점에서 역사사료로서의 의미도 있어 가치가 더 높아진다.

언제 어디서든 늘 “국가 안위를 걱정하고 마음을 쓴다”는 의미의 ‘國家安危勞心焦思’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초대 조선통감으로서 동양평화의 교란범이자 한국침략을 진두에서 획책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를 사살한 뒤 현장에서 체포돼 뤼순(旅順) 감옥 수감 중 자신을 취조한 뤼순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

당시 일제의 하수인 야스오카에게는 안 의사의 이토 사살이 이토에 대한 “오해”로 인한 범죄였음을 인정하게 만들어 그를 국사범이 아닌 일반 범죄자로 몰아 극형으로 치죄하려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에게 안 의사는 극형의 “범죄자”였지만 안 의사를 취조하면서 이토를 살해한 동기가 개인적 원한에서가 아니라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사상의 심대함과 진정성을 알게 됐다.


온화함과 위엄이 교직된 언행에서 풍기는 안 의사의 기품과 인품의 고매함에 마음이 끌린 야스오카는 퇴임 후 죽을 때까지 안 의사를 잊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야스오카는 사망 직전 이 유묵을 맏딸 우에노 토시코(上野俊子)에게 물려주었으며, 그 딸은 그 뒤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崔書勉) 원장을 통해 1976년 2월 11일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했다.

‘爲國獻身軍人本分’은 뤼순 감옥에 수감된 안 의사께서 그 이듬해 1910년 3월 26일 사형집행 2시간 전 그 동안 일본군 헌병으로 안중근의사의 공판정 왕래에 호송업무를 맡았던 간수 치바토시찌(千葉十七, 1885~1934)에게 써준 유묵이다. 처음 안 의사를 본 치바 도시치는 명치유신의 원훈으로 자국정부의 초대 수상까지 지낸 대정치인 이토를 암살한 흉악범이라고 생각해 크게 분노했다.


훗날 안중근 의사의 행적, 특히 옥중에서의 언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대부분 이 치바의 역할이 컸다. 적군이었지만 안 의사의 고매한 인품에 매료될 줄 아는 그의 품성도 보통 사람 수준은 아니다. 그는 안중근 의사 연구에 일조한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치바는 차츰 안 의사를 지켜보면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온 마음으로 갈구한 안 의사의 굳은 정신과 높은 기개와 사상에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50여일에 불과한 짧은 접촉 기간이지만 그는 안중근 의사를 호송하면서 안 의사의 인품과 사상의 웅혼함에 감복하고 매료됐고, 안 의사와 정분을 나눴고 안 의사는 치바에게 ‘爲國獻身軍人本分’ 유묵을 선사했다.

치바는 퇴역 후 안 의사를 잊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안 의사의 사진과 이 유묵을 걸어 놓고 매일 일제를 대신해 지극 정성의 속죄하는 마음으로 참배하면서 명복을 빌었다. 안 의사에 대한 그의 흠모와 존경심은 자신이 죽고 난 후에도 부인과 양녀(미후라)에게 계속 매일 참배하도록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치바의 유골을 생전에 안 의사의 위패를 모셔놓은 미야기(宮城)현 구리하라(栗原)시의 大林寺 뒤편에 안장했고, 그의 영정도 안 의사의 영정 옆에 나란히 모셔놓고 같이 명복을 빌었다. 경내에는 ‘爲國獻身軍人本分’글귀를 새긴 비석도 들어섰다.

두 유묵은 모두 그 뒤 다행히 유족들의 발원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야스오카 세이시로 유족에 이어 치바 토시치의 유족도 기증의사를 밝힘에 따라 1980년 8월 23일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 원장을 통해 安重根義士紀念館에 헌증했다. ‘國家安危勞心焦思’는 1993년 1월 15일 보물 제569-22호로 지정됐고, ‘爲國獻身軍人本分’은 2000년 2월 15일 보물 제569-23호의 문화재로 지정돼 지금까지 이곳에 소장돼 있다.

일부 정치인의 개탄스런 무지에서 촉발된 논란으로 조용히 잠들어 계신 안중근 의사가 어지러워 하실까봐 송구스런 마음이다. 다시 한 번 안 의사와 함께 두 일본인의 명복을 빌며, 그 유족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낸다.

2020. 9. 18. 08:41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