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范仲淹(범중엄)
서상문(사단법인 세계한민족미래재단 이사)
근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의 좌우를 넘나드는 정치적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언행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사회참여 동기를 보면 문득 范仲淹(980~1052)이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范仲淹은 주자(朱子)로부터 “유사 이래 하늘과 땅 사이에 최고 일류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은 중국 송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요, 교육자이자 군사전략가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그는 마오쩌둥이 높이 평가했을 정도로 역사적 귀감이 된 인물이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도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나중에 즐거워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그의 “선우후락(先憂後樂)”정신을 사표로 삼았었다.
안철수와 范仲淹은 여러 면에서 유사점이 있다. 우선 두 사람 다 집권층의 폐정과 독단으로 사회공동체의 틀이 허물거리는 조짐을 보인 혼란한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국가의 녹을 먹는 공인이라는 점이다. 기득권층으로부터 비판과 견제를 받은 점도 닮았다. 范仲淹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기득권자들의 미움을 받았으며, 안철수도 그를 대권의 최대 위협 인물로 인식한 여권으로부터 많은 질시와 견제를 받고 있다. 사회봉사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范仲淹은 인재배양에 힘썼고, 온 힘을 쏟아 자선사업을 크게 벌였다. 안철수도 대학교수로서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식봉사를 해오고 있고, 사재를 털어 사회공익을 위해 쓰기로 했다.
가장 의미 있는 공통성은 정치참여의 동기나 명분에 있는 듯하다. 두 사람은 각기 당대의 지성으로서 혼란스런 사회와 국가를 바로잡기 위해 고뇌했다. 范仲淹의 고민은 그의 정치사상의 핵심이랄 수 있는 “先憂後樂”과 “사회가 안정돼야만 안정된 국가가 있을 수 있다”(唯有社會安定了, 才有安定的國家)는 말에 함축돼 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정치개혁(‘慶歷新政’)을 추진했다.
안철수의 언행도 范仲淹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안철수가 지식봉사는 물론 3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거금까지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 까닭은 천하, 즉 국가와 민족과 사회에 대한 근심의 발로요, 나아가 가까운 미래에 상식과 이성 그리고 사회적 균형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그것을 천하의 즐거움으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또 范仲淹이 인재배양과 관료 선발을 개혁의 성패를 결정짓는 문제로 본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안철수 역시 당파, 정파 등의 진영논리에 부유물처럼 휩쓸리지 않는 도덕성과 능력을 겸전한 인물이 정치와 사회의 주도층을 이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엔 차이점도 없지 않다. 范仲淹은 정치변혁 사상에 대해 모호하게 두루 뭉실 언급했을 뿐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각종 현실문제들에 대해 분석을 가하긴 했지만 대안적 사상과 구상을 제시하진 못했다. 정치주장을 펼칠 때도 간단하게 당위론적으로 언급했을 뿐 생각을 분명히 밝히지 못했다. 반면 안철수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료한 언어로 핵심을 말한다. 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혁신방향까지 제시한다.
안철수가 정치권 바깥에 있는 현재로선 그의 정치적 행보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만약 정치에 몸을 던질 경우엔 范仲淹의 결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와 일면식도 없는 내가 이런 훈수를 던지는 까닭은 사회공동체의 통합과 민주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큰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현재로선 그가 큰 지도자인지 예단할 수 없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나는 안철수와 상관없이 시종일관 공익을 위한 옳은 일이라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동의하는 인간형이 다수를 이루고, 보혁구도를 융섭적으로 포용하며,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모두가 상식과 이성에 설복하고 수긍하는 것이 사회적 가치나 기준이 되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가 어떤 인물이든 그것과 별개로 그러한 사회를 재창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큰 지도자인 것이다.
2012. 4. 6
雲靜 작성 미발표 글
위 글을 써놓고 난 뒤 2~3년이 지나면서 안철수의 정치적 언행과 행보를 보고선 내가 완전히 사람을 잘못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범중엄의 '범'자에도 미치지 못하는 함량미달 정치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약속도 말 뿐이었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 내지는 착각한 가운데 대통령은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대통령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위 글은 지우진 않을 것이다. 나의 판단착오도 지나간 나의 삶을 구성하는 발자취의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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