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지도자의 출현과 연정의 疑丞輔弼은 실현 가능할까?
민주당의 대선 후보경선에 뛰어든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선공약의 하나로 대연정을 언급했다. 그는 대연정의 대상에 자유한국당까지 포함시켰다. 광역단체 수준이긴 하지만,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부분적으로 야당과 연정을 시도해오고 있다. 이번에는 과연 국가 차원에서 대연정이 실현될 수 있을까? 우리 현대사에서 전무후무한 여야(보수-진보)의 대연정이 실현되려면 우선 안희정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어야 할 것인데, 과연 그의 당선이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금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는 대연정이 단점 보다는 장점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극심한 대립이 반복된 나머지 나라가 둘 이상의 여러 세력으로 분열돼 있을 경우 연정은 소모적인 정쟁을 줄이고 국가적 과제의 문제해결을 용이하게 할 수도 있다. 혹여 대연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대권을 거머쥔 이가 반대 세력 중의 도덕적이고 유능한 인물을 국정의 동반자로 청빙(請聘)할 필요가 있다.
향후 대승적 견지에서 연정의 이해득실과 효용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연구해봐야 하겠지만, 우선 역사적으로는 연정을 시도한 예들이 없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연정은 무엇보다 먼저 최고지도자의 통 큰 결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런 의지를 지닌 지도자를 뽑는 게 선결과제다. 연정은 대국적이거나 대승적이지 못하고 용속한 지도자에게는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연정은 아닐지라도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쟁을 지양하고 분열된 국가와 국민을 통합해 정책적 효율성을 높일 목적으로 한 때 정치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날을 세웠던 정적을 국정의 동반자로 포용한 예도 적지 않다. 몇몇 예를 생각나는 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춘추시대 초기, 제나라 공자 小白은 권력 투쟁 끝에 桓公(B.C.?~B.C.643)이 돼 최고 통치자의 보좌에 오르자 다른 공자 糾와 군주 자리를 놓고 다투는 과정에서 규를 적극 지지한 관중을 발탁했다. 바로 관중과 포숙아 고사의 주인공인 그 관중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규를 군주에 앉히기 위해 관중은 직접 활로 소백을 죽이려 했을 정도로 소백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의 정치적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관중은 환공의 통 큰 발탁에 부응해 재상으로서 환공을 보좌하면서 개혁 정치를 주도했고, 제나라를 40년 동안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근대로 내려오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을 들 수 있다. 링컨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자 그동안 자신을 무식한 촌놈으로 비하하며 줄기차게 괴롭혔던 정적 스탠톤(E. M. Stanton, 1814~1869)을 새로운 연방정부의 육군 장관에 임명했다. 사감을 버리고 오직 스탠톤의 전쟁지휘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965)도 비슷했다. 처칠은 1940년 5월 영국수상으로 임명되자 모든 당파의 인재를 두루 등용해 전시내각을 구성하면서 자신이 해군장관 재직시 해군력강화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했던 노동당의 알렉산더(Albert Victor Alexander, 1885~1965)를 내각의 지도를 받게 될 해군장관에 임명했다. 당시 영국해군의 현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를 반드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던 처칠은 자신의 비전 달성을 위해 고집불통이긴 했지만 알렉산더의 군사적 전문성과 업무추진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통 큰 결단을 내린 위대한 지도자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 남아공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통령 취임 연설을 마치자마자 과거 자신을 27년 간 로빈 섬에 유배시킨 전 정권의 백인 대통령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Frederik Willem de Klerk, 1936~)를 새정부의 부통령에 임명했다. 정치적 보복을 가하기보다 국가의 안위를 우선시해서 흑백으로 갈라진 나라를 통합하기 위해 용단을 내렸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처럼 통 큰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정쟁이 끊이지 않고 악화일로에 있는 배경이다. 문제를 해결하라고 국민들이 뽑아줬더니 오히려 정치인들이 더 문제를 일으킨다. 필요 이상의 정쟁을 만든 지도자로서는 자신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현 박근혜 대통령이 으뜸이다. 그가 자신이 입버릇처럼 얘기해온 바 있듯이 사심 없는 애국심이 정녕 진정성 있는 것이고, 그래서 정말 역사에 남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대통령 당선 후 가장 먼저 박정희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지라도 청렴하고 국민적 신망이 두터운 인물을 국무총리에 임명했어야 했다.
또 교과서를 수단으로 박정희에 대해 높이 평가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일에 국가적 힘을 쏟아 붇기보다 광복 후 70여년 이상 쌓인 적폐일소를 통한 정치제도와 사회적 가치의 환골탈태, 국민의 통합과 행복증진에 정치적 과제로서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둬야 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을 기대하기엔 그에게는 근본적,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스스로 인재의 발탁 기준을 배신의 가능성 유무, 한 번 써먹은 사람은 다시 기용하지 않고, 부친에 대한 호오에 두다보니 인재풀이 극도로 좁아지는 것이다.
일개 정당이나 정파의 이익을 넘어 범국민적 국익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尙書大傳이 전하는 疑丞輔弼 중 든든한 국정의 파트너로서 輔의 역할을 과감하게 정치적 반대세력 중에서, 아니면 여야를 떠나 국민적 신망이 높은 인물을 찾아 그에게 전격적으로 맡길 필요가 있다.
疑丞輔弼이란 고대 중국에서 제왕이 통치에 필요한 전문적인 신하들을 전후좌우에 두고 통치한 것을 가리킨다. 疑는 경호와 의전을 담당하는 신하로서 앞에 두었고, 丞은 제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신하로서 후위에 두었으며, 輔는 정책을 논하는 신하로서 왼편에 두었고, 弼은 간언하는 신하로서 오른편에 두었다. 제왕이 간언하는 신하를 오른편에 둔 것은 직언, 고언하는 이가 그만큼 중요하고 으뜸으로 대우했다는 뜻임은 물론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疑丞만 남아 있고 輔弼은 하나도 없다. 참모들의 輔, 즉 참모들과의 정책대화는 거의 전무할 뿐만 아니라 弼, 즉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직언, 고언, 충언을 마다하지 않는 참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이도 곁에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직 자기만 아는 몇몇 사람들(최순실도 그 중 한 사람)에게 전화로 자문하고 그들의 말과 지시에만 의지해왔던 것이다. 박근혜판 수렴청정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다가오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는 온 나라가 부패와 부정의 악취가 진동할뿐만 아니라 정파적 이익에만 혈안이 돼 갈기갈기 찢어져 지리멸렬하고 사분오열돼 있는 망국적인 분열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연정 혹은 정파를 초월한 파격적인 인재발탁을 통한 현대판 탕평책을 결행할 수 있는 담대하고 역사의식 있는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로선 그런 인물은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금은 다들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주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를 헤쳐 나갈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을 제시하지 못하고 영호남, 충청 등의 지역 패권 추구와 정권 쟁취라는 소아적 이익에 갇혀 있는 것을 보면 가히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017. 2. 14. 06:48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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