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엔 공소시효가 없다! 전두환의 추징금과 사법정의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전두환가에서 미납한 추징금 1,672억을 모두 납부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게 2년 전 9월이었다. 검찰이 전방위적 수사와 압박을 가한 결과였다. 여기엔 전국민의 절대적인 관심과 지지가 큰 힘을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의 자식들과 그 일가가 저지른 범죄의 일부가 새롭게 드러났다. 이는 그들이 밀린 추징금을 다 낸다면 여죄를 사해줄 것인가 하는 문제와 결부돼 있었다.
당시 필자는 추징금이 헌법질서를 걷어차고 총칼의 위압으로 거둬들인 정치자금에 대한 것이었던 만큼 그 돈에 묻혀 있는 범죄는 끝까지 응징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역사 정의의 실현을 상징하는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전두환의 사돈 이희상 동아원 회장이 대납금으로 275억을 납부했다. 현재 검찰은 더 이상 이 사건을 추적하지 않을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만약 검찰이 추징금의 일부를 대납한 것에 만족한 나머지 그들의 여죄를 묵인하고 덮어버린다면 수사의 근본 목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임은 물론, 역사정의의 실현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셈이 된다. 이것이 정당한 일인가? 검찰수사에는 종결이 있어도 역사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당장 역사적 평가를 위한 공소장을 들이밀어야 한다.
전두환이 어떤 인물인가? 역사발전을 최소 30년 이상 후퇴시킨 역사의 패역자가 아닌가? 그는 한국현대사의 문제아다. 역설적이게도 역사정의와 사법정의를 곧추 세울 수 있는 과제를 안겨 준 공로자(?)이기도 하다. 그는 총칼로 국가권력을 거머쥔 뒤 불법으로 재벌 기업들에게서 조 단위에 육박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거둬 탈법적 통치자금으로 썼을 뿐만 아니라 신군부 세력의 동료 및 부하들과 자식들에게까지 골고루 나눠주고 물려줬다.
그는 이처럼 부정한 검은 돈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친인척을 통해 검은 돈을 희게 세탁하는 등 온갖 편법적, 위법적 수단까지 동원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자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렴치 하고, 능글맞고, 거짓말에 능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염장 지르듯 수중에 단돈 ‘29만 원 밖에 없다’고 둘러댔다. 그 자식들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전두환은 현대 한국의 역사발전을 가로막은 수괴였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린 주범이다. 우리 국민이 진작부터 역사의 단두대에 올려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친구이자 군사쿠데타 동지인 노태우가 국가권력을 이어 받는 통에 전두환과 신군부세력에 대한 사법적, 역사적 심판을 내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를 사법적으로 용서했다. 김대중 정권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한 개인의 목적 지향적 인권의식에다, 역사의 화해와 동서화합 명분 때문에 전두환을 위시한 국가모반 세력들을 단죄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역사적 심판을 내리지 못하고 적당히 넘어갔다. 그 역시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두환을 국가 원로로 대우했다.
해방 후 우리는 역사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신군부의 군사쿠데타를 단죄하지 못한 것도 그 중 하나다. 이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전두환이 진심으로 반성하지도 않았는데도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적인 정치 명분을 내세워 사면해준 역대 대통령들에게 있다. 추징금을 내지도 않았음은 물론, 자금 사용처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전두환이 천연덕스럽게 뱉은 ‘29만 원 밖에 없다’는 말이 그가 반성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유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다. 이 발언은 되려 국민을 우롱하고,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두환 사면을 결정한 대통령도 문제였지만 검찰과 법원도 역사의 책임에서 피해 가기 어렵다. 일국의 국가기강을 책임지는 사법부라면 역사와 민족 앞에선 반헌법적이거나 위법적인 행위가 있다면 최고 권부에도 서릿발 같은 반기를 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용기를 내기는커녕 당시 법원은 “성공한 쿠데타는 단죄할 수 없다”는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판 같은 분위기였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논리적으로 이는 앞으로 누구라도 성공만 하면 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는 말과 같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힘만 있으면 된다는 이 발상은 참으로 반역사적 폭거이자 국민주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최고 통치자가 행한 파렴치한 행위는 국민들의 정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그랬고,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 김일성의 북한과 일부 남미 독재국가들이 그랬다. 자유는 실종되고 국민들이 모두 눈치만 살피고 서로를 감시하면서 살았다. 국민들도 지도자의 독재적 폭압통치에 주눅이 들어 바른 소리를 하면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거나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대세였다.
한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쿠데타로 국가권력을 잡고 국가지도자가 된 대통령을 보고선 사람들이 과정은 어떻든 개의치 않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게 1980년대 말부터였다. 과정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찬탈한 권력을 선과 정의로 포장한 신군부세력 그리고 이에 비위를 맞춘 법조계와 일부 언론의 영향으로 오늘날 결과주의, 황금만능주의와 물질지상주의가 만연하게 됐다.
즉 과정은 따져서 뭐 하냐고 하면서 권력을 잡고 돈을 벌면 모든 죄행도 문제되지 않거나 심지어 존경까지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나가게 만든 사회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권력과 돈만 거머쥐면 과정은 개의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인식이 사회저변에 퍼져갔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게 우리 사회가 아닌가?
사법정의를 세우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책임이지만, 역사정의를 세우는 것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공무원, 정치인, 대통령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사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으며, 버젓이 활보하는 게 한국사회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공훈까지 받고, 죽어서는 국립묘지에까지 안장되기도 한다. 이는 한 마디로 국민이 물러서 그렇다. 그런 지경이 되도록 수수방관하고 감시하지 못한 국민의 책임이 크다. 대통령과 사법부는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국민을 위한 주권대행 기관이다. 특히 검찰과 법원은 사법정의를 실현시키기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은 게 아닌가?
역사정의는 헌정질서와 사법정의가 바로 서야 가능해진다. 헌정질서는 사법정의가 뒷받침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불법, 부정, 불의가 판을 치는 무질서, 탈법, 불법, 무법, 혼란, 모순의 도가니가 되고 만다. 해방 이래 법조계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법원과 검찰은 권력의 하수인이 돼 국민의 요구에는 눈을 감고 집권세력의 정치적 의도와 구미에 맞게 알아서 법을 집행하거나 가진 자들의 편에 선 게 다반사였다. 우리나라 이외에는 찾아 보기 어려운 ‘유전무죄’란 말이 이를 상징한다. 역사정의를 세우는데 기여하기는커녕 역사의 순류에 역행하면서 온갖 호사를 다 누려온 파렴치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게 그들이 아닌가?
전두환의 사돈이 전두환 일가에게 법이 언도한 추징금을 대납했다고 해서 끝낼 게 아니다. 과태료까지 가산해서 모두 징수해야 한다. 여죄도 끝까지 밝혀 응분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 권력을 지녔다고 해서 봐주고, 과거에 국가발전에 공을 세웠다고 해서 여죄로 밝혀진 범법행위에 대해 눈을 감아 준다면 사법 정의는 결코 서지 않는다.
이번에도 용두사미로 봉합해버리면 일반 서민들의 사법적 감정과 동떨어져도 아주 멀리 떨어진 법원의 고질적인 타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사태의 추이를 보면, 지금까지 권력의 눈치를 보며 기생해온 사법부가 이번에도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공산이 커 보인다. 혹여 역사적 판결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종결 지으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건 큰 오산이다.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포기한다면 역사에 방조자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5. 7. 16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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