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봉사직으로 바꿔야 한다!
진작부터 예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오늘 조간신문 머릿기사를 보고 정말 다시 한 번 놀랐다. 4.15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후보가 이렇게 많다니 말이다. 전국 253개 지역구에 출마한 여야 후보는 무려 1,117명이나 됐다. 평균 4.4대 1의 경쟁률이다. 게다가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을 포함해 비례대표를 얻고자 투표지에 등재한 정당도 놀랍게도 37개나 된다. 21개 정당이 참여한 지난 제20대 총선 보다 76%나 폭증했다. 투표용지가 무려 50㎝에 가까운 48.1㎝나 된다. 사상 유례 없는 코미디다. 어이없고 허탈한 심정을 감추고 싶지 않다.
내 눈에는 다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리가 없다 싶어 보인다. 우리사회엔 정치를 하려는 자들이 왜 이다지도 많을까? 이들이 정치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 뭘까? 한 마디로 말해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권력과 권한이 너무 크고 세비도 많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 열망도 이처럼 과도한 입후보자 및 정당출현의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기성 정당이 “젊은피 수혈”로 당의 수구적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청년, 젊은층, 여성을 영입하겠다는 것도, 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선민의식도 간과할 수 없는 주요 이유다. 나는 장기적 관점에선 한국인의 이러한 적극성과 역동성이 미래를 밝게 할 것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정치개혁이 혁명적 수준으로 이뤄진다는 걸 전제로 한다.
부자가 되면 권력을 쥐고 싶은 모양이다. 4·15 총선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후보 100명 중 5명은 50억 원 이상의 막대한 자산가로 나타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지역구 후보등록 자료에 따르면, 3월 26일 오후 7시 기준으로 후보 568명이 신고한 재산액(가족합산)은 총 7,860억 9,830만원으로 1인당 평균 13억 8,398만원이다. 후보자들의 평균재산은 34억원이다. 이미 서민의 재산수준을 훨씬 넘어선 액수임을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 수준까지 크게 넘어선 큰 부자들이다. 기업인 출신 국회의원에게 돈이 많은 건 이해가 된다. 그런데 현역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한 봉사로 정치를 했다면 무슨 수로 이렇게 재산이 수십 억대가 되는지 의아할 뿐이다. 늘 해오는 정쟁은 권력과 돈을 더 챙기기 위해 벌이는 경쟁인가?
국회의원 287명 중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본인·배우자 명의 기준)는 100명으로 전체의 34.8%다. 정당별로 보면 미래통합당 의원이 52명으로 가장 많았고, 더불어민주당 29명, 민생당 9명, 무소속 5명, 미래한국당 3명, 정의당 1명 순이다. 500억 이상의 재산보유 국회의원은 제외하고 계산한 평균치가 이 정도이니 국회의원 전체의 재산은 이 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저 많은 돈들을 어떻게 모았을까? 죄다 강남에 집 가지고 있고 두 채 세 채는 기본이다. 숨기고 숨긴 게 저 정도일 것이다. 경찰출신으로 국민당의 국회의원이 된 권은희는 배우자가 상가를 8채나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평균재산 34억원이나 되는 큰 재산을 가진 자들이 서민들과 중산층 시민들을 대변해 줄 리 만무하다. 자신이 회사 오너인데, 혹은 부모가 학교 법인체 이사장인데 감사와 세무조사를 선선히 받으려고 할까? 자기가 부동산 부자인데 부동산값이 안정되길 바랄까? 저 사람들이 과연 국회의원이었을 때, 아니면 이번에 국회의원이 되고나서 보유세 올리는 법안에 과연 찬성하겠는가? 본인이 집을 여러 채를 소유하고 있는데, 보유세를 올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이 나라 부동산이 폭등했는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가? 투기꾼들을 국회에 앉혀 두고 무슨 집값을 잡을 수 있겠는가? 역대 정권 마다 부동산가격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도 임기 내에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두 배, 세 배 폭등해온 배경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개발될 것인지,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인지 고급 정보를 가지고 사놓고 해서 있는 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수억 수십억씩 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면 생선가게가 어떤 짝이 되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왜 저토록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지 않는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후보자가 이처럼 돈이 많다면 국민을 위한 봉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보는가? 겉으론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이면서도, “서민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어떻게 하면 한 건 올릴 수 있는가에 머리를 굴리는 자들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공약이나 주장에 진정성이 있겠는가? 돈이 먼저인 자들인데 말이다! (이 점은 고위 공직자들도 동일함!) 반면에 없는 서민들은 올라간 전세금, 월세금과 임대료 갖다 바치느라 등골이 휘고 있다.
차기 제21대 국회의원 임기 중에 크게는 평생 국회의원 하려고 박아 넣은 돈, 짧게는 이번 선거에 든 돈을 어떻게 뽑아낼까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기득권이나 이권을 챙기는데 바쁠 것이다. 방법과 수단은 각자 알아서 한다. 부가 있으니 이제는 그 부를 지키거나 더 확대코자 권력을 가지려고 탐한다. 부자가 과연 서민을 위해, 중산층을 위해, 국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배부른 자는 배고픈 자의 심정을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진 자가 누굴 대변하겠는가? 가진 자는 팔이 안으로 굽듯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정의로운 자가 아니고선 자연스레 소수 재벌기업과 수십 억대의 부유층만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다. 강남좌파는 기대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어쩌다가 나오는 신기루다. 더군다나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가 한 둘씩 나타나는 그런 자도 무늬만 그렇지 속을 들여다보면 “짜가”다. 이미지만 그렇게 치장했을 뿐이지 여타 못된 부자들과 다를 게 없다. 남들을 속이기까지 하니 오히려 이중 혐의를 지닌 더 나쁜 위선자다.
당 차원에서도 다를 바 없다. 미래통합당과 민주당이 현실적으로 서로 싸우면서도 가진 자, 국회의원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선 경우에 따라 오랜 전우처럼 대국민 짬짜미가 된다. 정의당? 이 당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 통속으로 변해가고 있다. 정의당의 심상정도 이전에 재산이 얼마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선거에서 재산을 12억으로 신고했다. 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당의 대표 주자가 이 정도 자산가라면 이제 더 이상 서민을 위한다고, 서민을 대변한다는 정당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문제제기 한다. 왜 매번 선거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려고 저렇게 목을 맬까? 경쟁률이 왜 저렇게 심할까? 공천 잡음 혹은 파동은 왜 저렇게 끊이지 않을까? 왜 저렇게 수많은 정당들이 난립하고 있을까? 광복 후 우리나라만큼 이렇게 많은 정당들이 명멸하고 있는 나라가 있을까? 창당, 분당, 합당, 파당을 이렇게 많이 하는 나라가 있을까? 당을 버리고 이당 저당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들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기본적으로 국회의원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되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엔 본질적으로 국회의원들에게 너무나 많은 과도한 권한, 권력과 특혜들이 부여돼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세비는 연 1억하고도 수천만 원이나 된다. 국가가 지급하는 보좌진들의 보수는 별도다.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정치적 권한과 혜택, 사회적 대우 등에 걸쳐 백 가지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다 그들이 운용해오는 비합법적인 권력을 더하면 그들의 힘은 상상 보다 훨씬 더 세다. 국회의원의 지역구 관리와 검은 돈을 상납 받는 정치자금 마련도구로 이용되는 국회의원의 시의원 공천 관행도 여러 권력들 중에 작지 않은 권력이다.
사업해서 망했다는 사람은 들어봤어도, 국회의원 선거에 져서 재산을 날렸다는 소린 들어봐도 국회의원 해서 집안 거덜 났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대부분 재산이 빈약한 자는 짧디 짧은 임기 4년만 해도 먹고 살만큼 챙기고, 처음부터 재산가로 출발한 국회의원은 곳간을 더 넓히거나 최소한 세무조사 따위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기존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이유다.
대안은 먼저 정치하려는 목적이 한 재산 챙기기에서 국민을 위한 봉사직이라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고 실제로 봉사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국정 관련 사안들에 대한 실상파악, 연구, 조사, 정책 마련에 필요한 실비의 경비 정도만 지불하는 선에서 세비를 대폭 줄여 거의 봉사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봉사직은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권한과 권력을 대폭 줄인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정말이지 지금 당장이라도 국민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국회의원직을 어떤 식으로 바꿀지 로드맵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 먼저 몇 가지를 제시하면 우선 국회의원은 최소한의 생활비와 활동비를 적절하게 산정해서 지급하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람만 정치를 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봉사를 통해 만들어지거나 자연스레 형성되는 자기만족과 국민들의 존경을 먹고 살고, 그것만으로도 만족감과 즐거움을 얻도록 해야 한다.
기존에 누리고 있는 국회의원의 엄청난 권한을 혁명적으로 줄이는 대신, 그들의 국정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 정확성, 다양성과 연기적인 정책입안 혹은 대안 제시능력을 높여주기 위해서 현행 두 자리 수의 보좌진을 전문연구자와 행정수행자들로 바꿔야 한다. 요컨대 권력 대신 의정활동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의원 보좌기능을 대폭 보강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대폭 줄인 국회의원의 권력과 권한은 국민이, 시민이 행사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여러 가지 방안과 실현수단을 강구하고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회의원을 봉사직으로 만들면 지금처럼 저렇게 많이 “박 터지도록” 국회의원 서로 하겠다는 자들이 서로 안하겠다고 뒷걸음 칠 것이다. 국회의원(도의원, 시의원도도 마찬가지임)에게 주어진 권력과 권한이 줄어들면 그만큼 검은 돈도 오가지 않을 것이며, 그 돈도 모이지 않을 것이고, 검은 돈이 모이지 않으면 그만큼 부패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무엇 보다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공천파동, 당의 이합집산 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놀랄 만큼 줄어 들 것이며, 선거로 먹고 사는 선거꾼들도 사라질 것이다.
내 분명히 장담컨대 아마도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일 뿐이라고?”, “현실은 그렇지 못한, 쓸데 없는 뜬 구름 잡는 소리라고?” 그렇게 반문하는 당신은 꿈도 안 꾸나?
2020. 4. 1. 13:55
북한산 清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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