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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정신대’ 용어의 개념 차이와 ‘정대협’ 사태

雲靜, 仰天 2020. 5. 31. 17:28

위안부’, ‘정신대’ 용어의 개념 차이와 정대협사태

 
한자교육이 중단된 지 오래되다보니 요즘 한창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정대협”, “정신대”, “위안부”라는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정대협”이란 “韓國挺身隊問題對策協議會”라는 시민단체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즉 挺身隊 중의 挺, 對策 중의 對, 協議會 중의 協자를 따내서 줄여 부르는 약칭이다. 이 가운데 핵심 열쇠말은 挺身隊란 건 누가 봐도 안다. 이 ‘정신대’가 문제라는 소리다. 한자로 쓰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한자를 안다고 해도 일본 역사에 소양이 없는 이에게는 바로 알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挺身隊라는 이 용어를 두고 아직도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말들이 분분하다.
 
어제부로 국회의원 신분이 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과거 1990년대 후반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이른바 잘못된 용어지만 ‘위안부’문제 관련 시민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나는 그 단체를 방문한 바 있다. 이 명칭이 잘못된 것임을 얘기해 주려는 목적에서였다. 이 단체의 사무실이 서대문 녹십자병원 뒤편의 골목에 위치해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윤미향 씨는 만나지 못했다. 대신 그 쪽의 직원들에게 방문취지를 말하면서 정신대와 위안부 두 용어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시민운동의 ABC이니 정확하게 사용하고 운동의 범주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해주고 온 바 있다.
 
그런데 이 단체의 명칭이 고쳐질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도 그대로 지속됐다. 그것도 근 20년 이상이나! 이를 보고선 둔한 감수성, 비전문성과 막힌 학습의지 및 능력(learning capacity) 혹은 그게 아니라면 폐쇄성이랄 수도 있는 걸 보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찬 적이 있다.
 
정신대란 일본근대사(일본은 1945년까지를 근대사의 하한선으로 잡는다)에서 만들어진 특수한 역사 전문용어로서 일제가 전쟁 후반기로 들어간 1930년대 말부터 한국뿐만 아니라 타이완, 동남아 등지의 식민지인들을 전쟁수행 혹은 전시에 필요한 인력으로 징발한 자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여기엔 비행장 활주로 닦기, 항만공사, 철도부설, 도로 개보수와 탄광 채굴에서부터 병원간호 보조, 일본군들에게 성을 제공하는 여성들 등등 다양한 직종들이 있었다. ‘정신대’가 이들 전체를 이르는 총칭이었다면, ‘위안부’는 그 하위의 일부를 이루는 개별 명칭이다. 그쪽 관련자 중의 누군가가 스스로 자인했듯이 이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의미와 실체 구분을 모르고 시민운동을 시작하고 본 셈이다.
 
당시 국내에 거주하지 않고 있던 나로서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해서, 바쁜 가운데서 짬을 내서 ‘정신대’와 ‘위안부’ 관련 용어의 의미 차이 그리고 그 유래를 밝힌 내용을 담은 글을 길게 써서 주요 언론매체에다 실었다. 기사가 돼 월간 중앙 2001년도 9월호 특집으로 나왔다. 아래에 붙여놨으니 참조해보시기 바란다. 약 20년 전에 쓴 오래된 글이지만 아직도 참고할만한 유효한 내용이 적지 않다.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듣기 싫어하는 “성노예”라는 말을 대신할 용어에 관한 대안을 제시한 졸고도 같이 올렸다.
 
https://suhbeing.tistory.com/m/30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574299
 
뭐 시민단체라고 해서 관련된 모든 글을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중앙지에서 매월 발행하는 유력한 매체에 실린 글이라면 접할 가능성이 높다. 언론보도에 대해 매일 하는 모니터링은 시민단체가 행하는 기본 일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기사내용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참고할 만도 하다. 당시 국내엔 학계든, 언론계든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이 정도로 자세한 내용은 쉽게 접할 수 없던,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도 변화가 없었다.
 
정신대 문제를 취급한 시민운동가들이 당시 나의 위 졸문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보고도 무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기사를 보지 못했다거나 혹은 보고도 무시했다면 그것이 현재 정의기억연대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들의 원인이 됐다고도 말할 수 없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용어사용의 오용에 있지 않다. 나도 그 시절을 전후해서 한동안 시민단체에 속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시민운동을 해봐서 미뤄 짐작을 할 수 있는데, 시민운동단체의 제한된 능력과 궁핍한 재정 상태에선 전략적 차원에서 고려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두 용어를 혼용해서 시민운동의 범주를 축소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문제 외에 그 밖의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내재돼 있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보면 어제 기자회견에서 행한 윤미향 씨의 해명은 납득이 되는 부분이 있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정의연의 회계부실, 개인계좌를 이용한 모금, 딸 유학비, 주택 구입자금 등등)도 남아 있다. 따라서 단순한 착오나 실수였는지, 아니면 목적을 가지고 저지른 의도적인 범법행위였는지는 검찰수사나 혹은 있을 수 있는 추가 제보를 중심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덧붙여서, 이번 사태가 일어났다고 해서 30년간의 운동성과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은 거론조차 필요 없는 당연지사다. 또 그 성과란 게 정의기억연대 혼자서 이뤄낸 게 아님을 아는 겸손함이 절실하다. 여기에다 일본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 혹은 악용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할머니들의 처지와 바람 또 우리정부의 입장 등등 여러 가지 요인들을 폭 넓게 종합해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과 같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면에는 폐쇄성, 둔한 촉수, 시민운동가라면 갖춰야 할 필수적인 도덕의식에 대한 느슨한 긴장감, 열정으로 포장된 과욕과 불철저, 적당주의와 한 몸이 된 매너리즘 따위가 한 몫 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은 지금 당장 내려도 될 듯하다.

 
 

개인이든, 단체든, 늘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특히나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더욱 그렇다. 말이 화근이 돼 불필요한 말썽거리를 만들거나 사태를 키운다.

 

무엇 보다 당장 시급한 것은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제2차 피해를 가하는 폭거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서서 또 다른 문제들을 일으키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질적인 병폐로서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악플을 다는 자가 개인적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라면 당장 중지해야 하고, 정치몰이로 보수를 받고 알바로 공격하는 이들에게는 중지하도록 제지해줘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반사회적 언행을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진영의 이익이 92세 고령자의 안위 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가?
 
2020. 5. 31. 09:07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