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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生의 유래와 방생의 참의미

雲靜, 仰天 2019. 5. 11. 15:53

放生의 유래와 방생의 참의미


혹시 방생을 해본 적이 있는가? 직접 해보지는 않아도 남들이 하는 걸 본 적은 있을 것이다. 방생이란 인간에게 잡혀서 죽을 산 생명체를 살도록 놓아 주는 행위를 말하는 불교용어다. 일반인들 사이에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다. 국어사전에선 사람에게 잡힌 생물을 놓아 주는 일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불교에서 왜 방생을 하는지 방생의 유래와 이 말의 어원에 대해선 전혀 설명돼 있지 않다. 그리고 요즘은 사람들이 방생의 참 의의를 알지 못하고 기복적 동기에서 형식만 쫓아 흉내만 내는 게 보통이다.

방생은 오늘날에 들어와 성한 게 아니라 이미 오랜 옛날부터 불교에서 권장되고, 민간에서도 해오던 것이다. 사찰에서 불교도들이 해마다 보통 음력 3월 3일이나 8월 보름 등 일정한 때에 맞춰 방생계(放生契)를 조직해 放生會를 열어왔다. 강과 바다에 떠돌아다니는 無主孤魂을 천도하기 위해 지내는 수륙재(水陸齋) 같은 것도 크게는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근래에는 꼭 정해진 이 날짜에 따르지 않고 필요하다 싶을 때 수시로 행한다.
 

모든 언행과 일에는 항상 진득한 마음이 들어가 있어야 하듯이 방생도 형식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돼야 한다.

그런데 사찰에선 왜 방생을 할까? 방생은 살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살생을 금하는 것은 소극적인 선행이고, 방생하는 것은 적극적인 선행의 실천으로서 널리 권장되기 때문이라는 것쯤은 굳이 불교도가 아니어도 일반인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상식이다. 좀 더 명쾌한 경전적 가르침이나 근거는 없을까? 왜 없겠는가? 있다! 방생의 근거는 4세기경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金光明經(범어 원명은 Suvar aprabh sa-stra)이다. 대승불교의 대표적 佛身論인 三身說(法身, 報身, 應身=化身)의 내용을 참고하려면 이 경이 유용하다. 이 금광명경이 바로 삼신설이 설해져 있는 대표적 경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원효 성사가 이 경을 가장 좋아한 데에 힘입어 신라와 고려에서 크게 존숭된 이래 우리나라에서 법화경, 인왕경과 함께 호국 삼부경으로 불리고 있는 금광명경은 고려대장경에 한역본으로 남아 있다. 한역본에는 담무참(曇無讖)의 4권 19품, 寶貴의 8권 24품, 義淨의 10권 31품의 역본이 완본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 금광명경에 방생 이야기가 나온다. 이 경의 전체 19개 품 중에 제16 流水長者品에 설해져 있다. 유수 장자(流水長者의 인도 고대의 원어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長者는 고대 인도사회의 대부호를 중국역경가들이 번역한 용어임)가 죽어가는 물고기들을 구해주고 물고기들에게 불법을 설해줘 도리천에 태어나게 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요지다.

사찰에서 방생의례가 생기게 되고 방생법회가 행해지게 된 것은 이 내용에 기원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유수 장자가 물고기 만 마리를 구제함으로써 天子가 덕을 갚았다고 하니 방생의 유래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에 天台智者가 고기 잡는 기구를 모두 없앴으며, 강가에서 고기잡이를 금하고 이를 불교법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유수 장자는 원래 고대 인도사회의 유명한 의사였다. 그는 사방으로 다니면서 의술을 베풀어 병자들을 치료했다. 어느 날 그는 水空과 水莊이라는 두 아들(고대 인도어의 원명 역시 미확인)을 데리고 길을 가던 중 연못에 물이 말라 수많은 물고기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보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유수 장자는 바로 왕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고하고 코끼리를 빌려와 강에 가서 물을 길어 코끼리 등에다 실어와 못에 물을 채워서 죽어가던 물고기들을 살아나게 하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유수 장자가 그 연못가를 거닐자 고기들이 유수 장자가 있는 곳으로 몰려와 따라다니는 게 아닌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유수 장자는 물고기들을 위하여 몸소 물속에 들어가 寶勝如來(부처의 열 가지 이름 중의 하나)의 명호를 부르며 無明에서 시작돼 生의 老死憂悲苦惱까지를 차례로 연기한다고 하는 12인연법을 설해줬다. 유수 장자가 행한 이러한 생명존중, 자기희생의 利他行, 자비심과 법보시 덕에 그 많은 물고기들이 도리천에 태어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유수 장자 이야기는 유수장자품의 말미에 부처께서 그때의 유수 장자는 석가모니 부처 자신이고, 수공은 석가모니가 현생에서 낳은 아들 라훌라이며, 수장은 그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아난다라고 밝히는 대목이 나오듯이 전생에서 죽음에 직면한 수많은 물고기를 구해준 부처의 본생담이다. 즉 석가모니는 이 얘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산목숨을 해치지 말라는 생명존중의 자비정신, 법보시와 함께 널리 음식을 많이 보시하는 자기희생적 이타행을 실천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처럼 금광명경에서 설한 대의의 핵심은 산목숨을 해치지 말라는 것과 널리 음식을 많이 보시하라는 것이듯이 들짐승과 날짐승 등 모든 중생들에게 목숨을 돌봐주고 먹이를 많이 주는 게 바로 방생의 참정신인 것이다. 그래서 원래 방생은 생명을 중시하는 불살생과 보시의 실천을 위한 불교의식으로 시작됐다. 방생은 아무 곳에서나 하는 게 아니라 산 생명들이 서식하는 못이나 강, 바다 또는 산이나 들에서 한다. 이러한 곳을 방생지라 한다.

그런데 근래에는 점쟁이, 海神齋를 지내는 무속인들도 기복적 행위의 수단 혹은 상업적 목적으로 때를 가리지 않고 물고기를 사다가 방생을 하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무속신앙에서 방생하는 곳은 보통 혼령이 강림해 있다고 그들이 믿는 강, 바다, 산이다.

방생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살생을 금지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사상이 깃들어 있다. 불교에서 방생을 하는 까닭은 윤회설과 3세설에 근거해 물고기나 여타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모두 전생의 나였거나 내생의 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생들을 살도록 놓아주는 것은 곧 나 자신이나 부모형제를 놓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방생의 이러한 원래 취지와 가르침을 따른다면, 자신의 복을 빌기 위해 사람들이 식용으로 먹기 위해 잡은 물고기나 들짐승, 날짐승을 돈을 주고 사다가 놓아 주기보다는 애초부터 사냥, 낚시, 천렵 자체를 하지 않는 게 더 본질적인 실천이다.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사냥, 낚시, 천렵 따위를 취미로 즐기려면 불교를 믿지 않으면 마음의 부담에서는 벗어난다.

또한 보시 중에서도 특히 법보시를 하는 게 으뜸가는 보시이지만, 만약 법보시를 펼칠만한 교리적 능력이나 수승한 지혜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위에 많이 나누어 주는 財布施를 하는 것도 좋다. 다만, 그것들은 공히 남을 도와도 도왔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無住相布施라야 공덕이 크다.

2019. 5. 11. 08:57
臺北에서
雲靜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