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짧은 글, 긴 생각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해원

雲靜, 仰天 2019. 1. 18. 21:14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해원


어느 단체 카톡방에서 아래의 글이 올라왔다.

"죽은 이가 누구이든 간에 억울한 의혹이 있으면 산 자들은 그 의혹들을 밝혀줘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밝혀줘야 할 법이 있습니다. 자꾸만 진실들을 땅에 묻으면 묻은 만큼 폭발력 또한 커질 수밖에 없는 거죠. 타인의 억울한 주검을 당신이 외면해버리면 당신이 의문사 한 후에 모든 사람들이 입 닫고 침묵할 수도 있는 거죠. 한 목소리로 우리 함께 장자연이도, 이라크의 삼성엔지리어링 사건의 억울한 아들도 밝혀내어 죽은 자의 억울한 한을 풀어줍시다. 한 마음 되어주시면 밝힐 수가 있구요. 당연한 우리의 의무입니다. 함께 해요."

위 글에 대해 雲靜이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았다.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동감입니다. 같은 의미를 다르게 표현해서 아래와 같이 생각을 보탭니다.
 
인생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자신이나 자기 부모형제와 처자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최대의 解寃은 생면부지 타인의 억울한 죽음을 자기 일족의 억울한 죽음처럼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것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이다. 그것이야말로 죽음이 他者化 되고 일회용 종이컵처럼 기억되지 않는 현대사회의 비정하고도 숱한 억울한 죽음들을 자기문제화하고, 사회 전체에 일상화 된 아귀다툼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최고의 시민참여형 정치적 행위의 실천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검찰이 선별적으로 수사를 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니 타자의 해원은 우선 이것을 어떻게 국민들 손으로 되찾아 오는가가 관건이다. 모르는 이의 억울한 죽음이 자신의 문제가 된다면 이제 검찰의 폭거에 저항할 수 있는 사상적 무기는 마련된 것이다.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 행동만 남았다.

 2019. 1. 18. 09:07
臺北 寓居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