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짧은 글, 긴 생각

레프 뜨로츠키와 한국의 모 시민단체

雲靜, 仰天 2019. 1. 16. 21:25

레프 뜨로츠키와 한국의 모 시민단체

 

새벽에 일어나 날짜를 보니 꼭 90년 전인 1929년 1월 16일 오늘이 마침 공교롭게도 레닌의 명성과 실력에 필적한 비상한 머리를 지닌 러시아혁명가 뜨로츠키가 스탈린에게 쫓겨 국외로 추방당한 날이네요. 문득 뜨로츠키의 추방과 우리사회 진보진영 내 굴지의 모 시민단체 내 집행부의 반민주적, 반지성적 농간과 작당이 겹쳐지는군요. 그래서 퍼뜩 떠오르는 단상을 적어봅니다.

 

아시다시피 뜨로츠키는 레닌이 살아 있었을 때부터 러시아공산당 내에서 독재가 될 조짐을 보인 레닌의 노선(특히 당 우선, 직업적 혁명투사 우선시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고 줄기차게 당내 민주화를 요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레닌 사후 스탈린이 꼼수와 술수로 당권을 잡고 권력을 전횡적으로 휘두른 탓에 독재와 당내 비민주화가 더 심해지자 뜨로츠키의 비판도 더 격해졌습니다.
 
그 결과 처음에 뜨로츠키는 알마타로 쫓겨난 뒤 그곳에서도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위협을 피해 결국 터키를 거쳐 머나먼 멕시코까지 도피해 가서 살다가 나중에 1940년대 초반 스탈린이 보낸 괴한이 휘두른 도끼에 난자를 당해 척살되고 맙니다.
 
 

명석한 두뇌와 달변의 웅변이 일품이었던 레프 뜨로츠키

 

단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뜨로츠키가 추방당하지 않고 러시아공산당 내에서 그간 그가 해온 바른 소리, 그리고 당내 민주화를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정당한 문제제기를 계속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러시아 현대사는 물론, 전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유사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이승만 시절부터, 특히 박정희 시대 그 독재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해 온 올곧은 선비형 민주인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박정희의 장기 독재에 대해 바른 말, 옳은 소리를 하다가 타살된 대표적인 인물이 고 장준하 선생이란 건 누구나 아실 겁니다. 만약 박정희가 그들의 말을 어느 정도라도 듣고 그들의 역할을 나름대로 인정했다면 적어도 박정희의 독재가 남긴, 수많은 강압과 파국과 탐욕과 어그러짐에 따른 부정적인 역사 유산이 최소화 됐을 것입니다.

 

위에서 거론한 모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1990년대 초 출범 초기에는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단체가 우리사회에 넓고 깊게 똬리를 튼 친일파를 뿌리 뽑지 않으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건전한 역사의식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 좌표설정과 목적은 분명 옳았습니다.
 
기형화 되고 자유경쟁이라는 이름하에 친일파와 그 후손들 그리고 그 세력에 얼기설기 칡넝쿨처럼 견고하게 얽혀 있는, 국가의 존엄과 사회정의는 어떻든 자기와 일족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한 “역사적” 부역자들의 거대한 카르텔로 인해 보수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이 나라가 보수와 진보간의 균형과 상호 견제로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작동되도록 하는데 일조하기 위한 의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는 어땠습니까? 제 기억과 경험에 의하면, 저가 가끔씩 그 시민단체의 본부에 초대 받아 회의에 참석하게 된 1990년대 후반 시기에도 벌써 모 간부 등 그쪽 상근자들의 편파적, 일방적 작위와 지역적 편가름을 보고 이 조직의 미래가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특히 당시 초대 이사장님이 타계하신 뒤 대략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이 단체 내 집행부는 1만 이상에 육박한 전국의 회원들이나, 특히 자신들이 요청해놓은 운영위원들의 정당한 문제제기와 지적들을 무시하고 사갈시, 적대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반면에 그러한 발언을 하는 정의로운 회원과 운영위원들을 내치고 멀리하였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말이라면 금과옥조로 여기고 도저히 의심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즉 이성과 합리성이 마비된 홍위병들만 주위에 포진시켰죠.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시민단체의 의도적인 불의와 적폐입니다. 불의와 적폐는 반드시 “저쪽 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쪽 편”에도 있습니다.

 

건전한 역사의식을 토대로 친일파들에게 겨눈 도덕성과 비판의식이 동일한 비중으로 자신에게도 겨냥해야 했지만, 그러한 덕목과 준열한 원칙은 이미 팽개치고 사라진지 오래된 일임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러시아공산당 내 비 민주화와 독재가 깊어지는 상황에 직면해 뜨로츠키도 그렇게 강조해서 말했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고요. 상식과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불의에 맞서는 용기가 있는 분이라면 답은 스스로 안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2019. 1. 16. 10:07
臺北 西園路寓居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