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논의 보다 지금은 실천이 필요한 때!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어떤 교수 출신 경제학자가 경제민주화를 해보고자 개설한 어느 카톡방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을 보고 올린 글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경제의 불평등이 최고조로 악화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국민의 반 수 이상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상태다.
안녕하세요? 좋은 의견들에 사족을 답니다.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좋은 적기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의 실천을 위해 모였다면 정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방의 한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목적의식과 방향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포항 소재 모 대기업의 경우다.
이 기업은 자산, 매출, 기업이윤 등에서 국내 대기업들 중에 몇 손가락 안에 들지만, 그것은 많은 경우 비정상적인 수단이나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게 적지 않다. 예컨대 단적인 예로 환경법을 다 어기면서 오염물질을 포항시와 영일만에다 몰래 무단으로 방류하고 있고, 이상득, 최순실 같은 비정상적인 권력자들에겐 정치자금을 수십억, 수백억을 아깝지 않은 듯 쾌척하면서도 자신들이 뿜어내는 대기, 악취, 토질, 수질, 해양오염 속에 살고 있는 현지 주민들의 복지엔 인색하다. 가끔씩 이 회사가 정치자금으로 정치권에 갖다 바치는 돈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에 불과한 푼돈 몇 푼으로 생색이나 내면서 기업이미지를 친환경기업이니 어쩌고 하면서 포장한다.
이 기업이 내고 있는 흑자는 제품수출의 지속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환경문제처럼 마땅히 지불해야 할 곳에 지불하지 않는 데에서 경비절감이 돼서 이뤄지는 부분도 있다. 만약 천연 그대로였던 상태에서 생태계가 죽어가는 영일만 바다를 원상 복구시키려면 그 기업 전체를 다 팔아도 돈이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이 기업의 이익과 위법은 기업만의 원인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데 문제가 더 심각하다. 과거 이 지방의 시장, 국회의원, 시의원, 시청, 노동부 지청, 해운항만청, 국정원 등 이른바 권력 있는 정치인과 기관들은 하나 같이 그 기업이 잘 굴러가도록 온갖 편의를 다 봐줬다. 지금도 일부는 그 관행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에 따른 반대급부는 얼마인진 알 수 없지만 정치자금 혹은 후원금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지방 주민들에겐 널리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시장, 국회의원, 공무원들의 의식은 모두 시민들의 안전 내지 이익 보다 대기업의 이익을 우선시 하고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대기업에 대해 우호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사회적 구조는 이 기업이 창설된 이래 반세기 가까이 흘러온 오랜 기간 고착화 돼 온 문제다. 이 때문에 이 기업이 안고 있는 불합리한 어떤 문제들이 외부로 불거져 나오기가 어렵다. 혹여 가뭄에 콩 나듯이 어떤 개인 또는 소수자들이 힘을 합쳐 예컨대 환경오염 사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시정과 정당한 보상 등을 요구하면 기업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그래도 전혀 법적으로 제재가 가해지거나 시정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부 지청, 시청 공무원, 시장, 국회의원을 찾아가도 모두 듣는체하고는 얼마 지나면 흐지부지 되고 만다. 이들 사이에 그들끼리의 공생과 상부상조의 스크럼이 짜여 있어 눈 감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새로 시장이나 국회의원에 도전하고자 하는 정치지망생들에게 찾아가서 호소해도 거의 다(내가 보고 들은 경험으론 모두 다)가 듣고 관심이 있는 체만 하고 치운다. 왜? 그들도 이미 자기 명의는 아니지만 친지나 지인들 등의 명의로 해당 대기업에 납품하는 작은 기업을 하나씩 제공 받아서 가지고 있으니 재갈이 다 물려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방 시의원들도 동일한 형식의 회사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무슨 거래로 지원을 받아오고 있다. 간혹 구체적인 피해사고가 발생해 피해자가 지방법원에 해당 대기업을 상대로 고소를 해도 그 잘난 검사와 판사들도 정상적으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또 지역 언론들은? 그들도 거의 다가 광고주인 그 기업의 눈치를 보고 알고도 보도를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아주 극소수의 개인이 그 기업이 쏟아내고 있는 환경오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허공 속의 외침으로 끝날 뿐이다. 억울한 피해자들이나 서민들은 어디다 호소할 데도 없어 포기하거나 체념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삼성이나 다른 대기업들도 상황은 이 기업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국세청, 노동부,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금융기관, 돈 맛에 각종 위원회 위원으로 동원되는 대학 교수나 학자들, 모종의 시민단체 등이 얼룩말들이 자신의 안전과 공생을 위해 서로 스크럼을 짜서 견고한 방어벽을 만들듯이 서로 간에 처남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굴러가는 구조는 위에서 예를 든 지방의 경우와 대동소이할 것이다.
한국 대기업들은 하나 같이 늘 기업경쟁력이 없네, 노동인건비 상승 때문에 생산단가가 오르네, 직원을 감축해야 하네 어쩌네 하면서 죽는 소릴 해댄다. 그러면서도 그걸 명분으로 산더미 같은 유휴자금을 쌓아놓고도 재투자는 꺼리면서 기존 사원마저 감축하지만 정작 재벌 오너들은 수십조, 수천억을 몰래 빼돌려 떵떵 거리고 잘 살고 있다. 이번에 보도됐듯이 한진기업 오너 가족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삼성은 노조활동을 방해하거나 직원들의 산재에 대해서도 법조계에 로비를 해서 문제가 없는 듯이 보상을 해오지 않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오히려 어버이연합 같은 극우적 룸펜들에게 뒷돈 대주거나 유력인사들에게도 반서민적 입법저지 시위개최에 필요한 경비를 집어주면서 정치에 개입해오지를 않나,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로비를 했지 않는가? 이게 과연 삼성만 그러는 문제일까? 대기업의 전위 조직인 전경련 차원에서도 그들에게 뒷돈을 대준 사실은 무얼 의미할까?
자산금과 연매출이 대기업에 준하는 규모가 큰 중기업들은 사정이 어떨까? 이 기업들은 대기업과 다르다고? 아니다! 이 기업들의 존재 패턴은 대기업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실하고 정직하게 기업을 운영하는 회사도 있지만, 그런 회사는 또 대기업의 엄청난 갑질과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적지 않은 이런 류의 중기업 오너들은 투자 대비 가져가는 이익이 적지 않아서 재산을 숨겨놓고 사는 이들이 다수인 것으로 추측된다.
간간히 세월호 침몰사고를 낸 청해진 주식회사 같은 중소기업이나 서울시내 버스나 택시 운수회사 등등의 오너들의 놀랄만한 각종 비리들이 보도되는 걸 보라. 대부분 정부공무원들 혹은 관련 감독기관들의 의도적인 배려(?)에 따른 유착관계가 보이지 않게 형성돼 있다. 죽어나는 건 정말 아주 영세적인 소기업들이다. 이 같은 것들은 몇몇 예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하나를 보고도 전체를 유추할 수 있다.
현지에 사는 주민과 시민들은 어떨까? 오랜 세월 약삭빠른 일부 사람들은 해당 기업들로부터 떨궈주는 떡고물을 얻어먹고 웃으며 잘 살고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선 대부분이 실상을 모르거나 알아도 어찌 해야 좋은지 몰라서 그냥 방관자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주체들을 한마디로 엮으면, 주범, 공범, 공동정범, 조력자, 방관자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의 생산공장이 있는 여타 도시들도 아마도 포항과 속성상 유사할 것이다. 따라서 포항은 한국사회가 어느 정도로 부패하고 썩었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이런 내용에 대해 부분을 보고 전체인양 하는 논리비약이 아니라고 믿어주면 좋겠다. 분별 있고 통찰력 있는 이들에겐 낙엽 한 잎이 지는 걸 보고도 가을이 오는 걸 안다. 一卽多, 多卽一이 아닌가? 단체 카톡방에서 이 같은 경험담들을 더 이상 주저리주저리 계속 늘어놓는 것도 보기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아래에 결론 격으로 한 두 마디 덧붙이고 마치겠다.
성장과 분배 중에 어느 것을 우선시 할 것인가에 대해 설왕설래 하고 있는데, 과연 어느 쪽이 우선일까? 둘 다 정의롭고 상보적이고 순환적으로 작동돼야 하는 것이 원론인 듯하지만, 원론적으로 맞다고 해서 어느 나라에나 다 기계적으로 적용이 가능하거나 통하는 건 아니다. 한국의 상황에선 성장 보다는 분배에 치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와 구체적인 사례들은 경제에 문외한인 나보다는 경제전문가들이 더 잘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경제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도 거론하고 있는데, 이 말은 고대 중국의 經世濟民(혹은 經國濟民)에 연원을 두고 있고, 근대 에도(江戶)시대에 들어와 학자들이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이 經世濟民 중에서 經자와 濟자를 취해서 ‘經濟’라고 만들어 이를 이념적인 정치정책의 뜻으로 쓰다가 서양에서 영어의 ‘economy’가 들어옴에 따라 점차적으로 경제운영의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은 그런 원론적인 이론규명, 문제제기, 현실진단, 방안과 수단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의미가 없진 않지만, 문제들이 백출돼 다 나와 있는 마당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향 설정에 대한 분명한 기치를 높이 들고 복수의 정의로운 이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진지를 구축해가야 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마르크스가 세계를 해석만 하지 말고 행동하고 투쟁하라고 했듯이 말이다.
2018. 5. 8. 04:43
臺灣 타이뻬이에서
雲靜 초고, 5. 9. 일부 수정 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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