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들 간 전략적 거래와 약소국의 운명 : 남북관계의 교훈
요즘 미국의 조야에서 심상치 않은 “이상한” 소식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평소 미국이 아니면 난리가 날 것처럼 미국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맹방이라고 소리 높여 상전 모시듯이 하면서 북한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셧다운 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성조기 들고 목소리를 높여오는 이들에겐 정말 경천동지할만한 얘기들이다. 주로 미국의 대표적인 안보싱크탱크 중의 하나인 국제전략연구소, 트럼프 정부의 폼페이오와 존 볼턴의 안보라인에서 흘린 내용을 근거로 보도하는 ‘미국의 소리’,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이 이 뉴스들의 출처다. 먼저 어떤 내용인지 핵심사항만을 요약 정리해보고, 국제관계의 이면에 내재된 작동방식의 룰에 관련해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핵폐기 후 김정은의 체제보장을 담보로 미군을 북한지역에 영구 주둔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사실로서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5월 11일 미 국무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한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점이다. 미 행정부의 고위 관리 입을 통해 북한의 번영이 언급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을 번영시켜주겠다는 것에는 반대급부로 대중국 견제역할이 포함돼 있다고 봐도 논리 비약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 트럼프의 안보 분야 복심인 폼페이오와 존볼턴 안보라인의 최종적 구상은 김정은과의 마지막 빅딜을 통해서 북폭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핵폐기 후 미국의 경제원조와 김정은 체제를 인정해주는 명목으로 미군의 북한주둔을 김정은이 수락한다는 빅딜설이 워싱턴의 국제전략가들 입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대북한 군사 공격을 언제든지 결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살기 위한 방편으로 친미 노선을 선택하여 트럼프에게 체제보장을 담보로 핵무기 폐기 후 미국의 경제원조와 미군의 북한주둔을 허용해주는 백기투항 차원의 빅딜회담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는 한 마디로 트럼프가 곧 시동을 걸 대중국 무역전쟁, 세계전략 차원에서 벌이는 중국 시진핑과의 주도권(패권으로 봐도 되는 요소도 있음) 싸움을 의식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장기 전략적 포석이며, 동시에 트럼프가 김정은과 문재인의 남북통일을 용인한 후 남, 북, 미 삼각동맹체제를 구축하려는 폼페이오와 존 볼턴의 대중국 견제용 패권전략이다.
트럼프는 이러한 미국의 계략을 눈치 챈 중국군의 북한진입을 미리 차단시키려고 영국, 호주, 캐나다 등 동맹국의 군함과 전략군 자산들까지 한반도에 들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미 연합훈련이 이미 종료되었음에도 영국, 캐나다, 호주의 군함들이 현재 평택항 등 한반도 연안에 근접 집결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 공군이 자랑하는 세계 최강의 최첨단 스텔스전투기 F-22랩터 10여대가 미 공군 역사상 최초로 군산 미 공군 기지에 전진 배치되어 북한과 중국을 향해 현재 작전을 전개 중이며 캐나다, 호주의 최신예 해상초계기까지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에 추가로 배치되어 현재 북한 잠수함과 중국군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는 중이다.
셋째, 폼페이오, 존 볼턴 안보팀은 이번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에서 핵무기 외에도, 생화학무기와 북한인권문제 그리고 모든 정치범 수용소의 완전폐기까지 일괄타결을 협상의 주요의제로 정하였다. 이처럼 대북 목표가 업그레이드됨에 따라 김정은은 늘어난 미국의 새로운 PVID방식의 핵협상 카드를 수락하기 힘들 거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트럼프는 최악의 상황일 경우 북폭 옵션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넷째, 6월 12일의 미북회담 결과는 김정은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친미노선을 선택하고 문재인의 등에 업혀 통일 쪽으로 방향의 가닥을 잡고 문재인과 권력을 분점한다는 원칙하에서 미국의 체제보장을 담보로 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전개해 나갈 경우가 없지 않다.
위 내용들 가운데는 현재 주변국들의 상황과 조건들로 봐서 실현 불가능한 것도 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전략적 가능성도 있다. 이 양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문재인은 물론, 북한의 “로케트맨”까지도 이용할 가능성은 낮지 않다. CNN 등 미국 내 몇몇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트럼프도 미국판 “Me too”운동, 러시아의 미 대선개입 스캔들, 반이민법 등등의 골칫거리에 적잖게 시달리고 있고,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올 11월의 중간평가 선거는 필패할 것이어서 그는 미국 역대 정권의 오랜 “골칫거리”(사실은 즐기고 있는 의도적인 정책요소임)인 북핵문제를 최대한 국면전환용의 호재로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김정은도 내부적으로 장마당과 돈주(김정은이 눈감아 주고 있는 개인 자본가)들의 동향을 제어하기에는 자본주의가 생각 보다 깊이 진전돼 있어 이를 주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의 내외부적 이해가 맞아 떨어져 트럼프와 김정은이 의외로 통 큰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그것은 미국의 국내 정책과 깊이 연계된 것이어서 트럼프가 한반도의 안보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재선을 위해 대선 직전까지 끌고 가서 극적인 모양새로 타결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 미국이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확고하고 만족할만한 보장과 반대급부가 있기 전까지는 김정은이 중국을 배신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또 김정은과 문재인이 힘을 합쳐 사회주의국가 체제로 갈 수 있다는 미국 내 뉴스는 보수진영의 기존 현상에 대한 급격한 변화를 우려하는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를 위한 트럼프 정부의 대북 포용전략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일 실제로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국내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경천동지할만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그 파장은 전세계 차원에서 판도가 달라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과 정부는 과연 그에 대한 심리적 준비와 정책적 대응방안을 가지고 있을까? 이것의 실현은 보수진영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을 것이어서 많은 저항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민족사적 차원에서 거국일치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분명히 인식하고 주의해야 할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가 작지 않다.
첫째, 인구, 국토의 크기에다 군사력, 경제력과 문화적 힘의 총합인 이른바 국력이 약한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국민들의 평균적 지력과 전략마인드 그리고 애국심만큼은 드높아야 한다. 스위스, 스웨덴처럼 군사력이 약해도 국민이 잘 살고 국민의 수준이라도 높아야 한다. 아니면 이스라엘처럼 인구도 적고 땅도 작지만 군사력과 민족주의적 국민의식만큼은 출중해야 한다. 최소한 둘 중 한 가지라도 갖춰야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다.
둘째,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과 러시아도 늘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약소국의 권익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릴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지난 세기 그들 강대국이 걸어온 역사가 뒷받침해준다. 예컨대, 러시아혁명 후부터, 혹은 그보다 좀 더 이른 19세기 말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러시아, 미국, 나중엔 일본까지 뛰어든 서방 제국주의 열강들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역사 古國이자 지역 패자로 군림해온 중국과 인도를 나눠 가지려는 구상을 갖고 서로 경합을 벌였다. 물론 중국과 인도 주변의, 각기 중국과 인도의 영향력 속에 있던 조선, 몽골, 오키나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미얀마, 네팔, 시킴, 부탄 등도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먹이로 선정됐다. 이 나라들이 식민지가 되는, 거꾸로 열강이 나눠 가지거나 독점한 역사적 과정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가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교훈적으로 명심해야 할 나라들만 개략적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미국과 영국이 신생국 볼셰비키의 소련을 포위 압살하기 위해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와 일본이 미국 편에 섰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미소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영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어 미국을 견제하고, 중국과 일본이 적이 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중국국민당을 지지해 중공을 제압하려고 했으며, 일본과 영국의 ‘영일동맹’을 깨어 두 나라를 갈라놓으려고 일본을 선택했다가 1930년대 후반에 가서는 중국을 선택했고 나중엔 1970년대에 가선 다시 자유중국을 버리고 공산중국을 선택했다. 또 미국은 그 전에 독일과 일본의 추축국에 맞서기 위해 소련과 손을 잡았지만 목적을 달성하고 난 뒤에는 즉각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영국과 일본을 끌어들였지 않았던가?
소련은 미국의 견제에 대항하기 위해 동구권 국가들을 위성국으로 삼고 중국과 북한을 지원했다. 그러나 중국이 1970년대에 들어와 대소 견제를 위한 미국과 배가 맞자 소련은 중국과 결별하고 중국을 아래 위에서 포위하고 견제하기 위해 몽골과 북베트남을 지원했다.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처음엔 영국과 손을 잡았었지만, 결렬됐고 1930년대 초 사활을 걸고 침략한 중국을 제압하지 못한 결과 결국 미국과 한 판 ‘맞짱’ 뜨게 됐고, 패한 후엔 미련없이 미국의 품에 안겼다. 논점이 흐려질 것이어서 더 이상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오늘날도 그렇지만 과거 지난 세기에 티베트, 영국, 인도, 파키스탄의 관계와 중국, 소련, 미국의 방정식도 있지 않았던가?
이러한 국제정치의 합종연횡 과정에서 동구권의 몇몇 국가들, 한국, 대만, 오키나와, 몽골, 티베트, 베트남 등의 약소민족은 강대국들끼리의 흥정과 거래의 대상이 돼 선택됐다가 버림을 받고, 버림을 받았다가 선택되는 운명에 놓여졌다. 대표적인 한 예로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를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렇게 적극적으로 지원했건만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한 순간에 그들을 버렸던 역사를 알면 좋겠다. 사실상 이들 약소국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자력으로 운신할 수 있는 힘이 없었으니 국가운영의 자율성과 정책적 독자성이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셋째, 국제정치판에선 늘 일정한 수준의 경제력과 그것을 자력으로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지 못하면, 즉 땅덩어리와 인구는 작고 적지만 강소국이 돼 있지 않으면 강대국들 사이에서 늘 장기판의 졸이 되는 운명을 면치 못하게 마련이다. 중국과 인도처럼 땅이 크고 인구만 많고 총체적인 국력이 부실해도 마찬가지다. 이 장기판에서 처음엔 서구 열강들 간의 침략과 이권경쟁의 각축장이 됐다가 그래도 안간 힘을 다해 마지막엔 식민지가 되는 걸 모면하고 독립국으로 살아남은 것은 마오쩌둥의 공산 중국, 호치민이 이끈 북베트남, 리콴유의 싱가포르, 레닌과 소련공산당의 힘을 빌려 속국으로 있던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수흐 바타르의 몽골이었다. 반 이상 실패한 건 중화민국의 장졔스(蔣介石)였으며, 류큐(琉球) 왕국의 尙왕조, 대한제국의 고종과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넷째, 약소국은 자국 안보를 위해 어느 하나의 강대국만 죽자 살자 믿고 추종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사이에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 약소국만 배신당하는 꼴이 된다. 이 사실은 만고불변의 철칙이다. 따라서 약소국은 반드시 동맹국과 주변국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국력과 강단 있는 국민성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는 이스라엘이 좋은 예다. 3대세습이라는 전무후무한 독재와 인민들이 헐벗고 죽어간 대가를 치른 것이지만 결과적인 외양만 놓고 보면 북한도 그런 축에 들어간다.
역사를 조금 긴 호흡으로 조망하면, 국제사회에선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한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의 금언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이익이 상충되면 적이 되고 전쟁까지도 벌이고, 이익이 맞아떨어지면 친구가 되고 동맹까지도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조건과 국제정세와 국력 그리고 국가지도자 및 국민의 집단적 역량과 의지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 조건이 사라지면 우방이 적이 되기도 하고, 적이 우방이 될 수 있는 게 국제관계이자 국제정치다. 지금까지 국내문제로 인해 극동문제에는 끼어들지 않은 러시아도 이 판에 비집고 들어올 틈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머지않아 김정은도 푸틴을 찾아갈 것이다. 두고 봐라.
지금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이 면해 있는 정세가 바로 이런 상황이다. 미국은 언제, 어디서든 늘 미국 편이다. 그러니 한 때 동맹이라고 해서 영원히 우리 편이 돼 줄 것이라고 굳게 믿거나 혹은 반대로 한 때 총부리를 겨눈 적이라고 해서 영원히 화해가 불가능한 원수가 된다고 생각하는 고정된 시각과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일이다. 더 늦기 전에 기회를 놓치거나 뒤통수 맞고 버림 받았다고 핏대 올리지 말고!
2018. 5. 14. 09:45
북한산에서
雲靜
'더불어 사는 삶 >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토와 국토 (0) | 2018.05.17 |
---|---|
원장과 최우수상 (0) | 2018.05.15 |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의 한국예찬과 남북관계의 새로운 출발 (0) | 2018.05.13 |
‘경제민주화’, 논의 보다 지금은 그 실천이 필요한 때! (0) | 2018.05.09 |
‘4.27남북대화’를 살려내지 못하면 지금 같은 천재일우는 다시는 오기 힘든다! (0) | 2018.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