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규의 한국예찬과 역사의 전환
꼭 40년 전, 루마니아 출신 소설가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가 쓴 자전적 장편 소설 ‘25시’(1925 La Vingt-cinqui´eme Heure)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전방 임진강 지역에서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쫄따구” 주제에 운 좋게도 숨어서 읽은 책들 가운데 하나였죠.
소설 ‘25시’는 공산치하의 조국 루마니아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한 게오르규가 1949년 프랑스에서 발표해 자신을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그의 출세작이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요한 모리츠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리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닥쳐옴에 따라 겪게 된 작가 게오르규 자신이었던 것으로 봐도 될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루마니아에 살던 선량한 농부 모리츠는 이웃주민의 허위 고발로 유태인으로 오인되자 즉각 이웃나라 헝가리로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모리츠는 ‘적성국(敵性國) 루마니아인’으로 나치스에 체포되어 나치스의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수용소에서 그는 운이 좋게도 게르만민족을 연구하는 민족연구 전문가인 한 독일군 장교에게 게르만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이은 후예로 오인되어 수용자들의 강제노동을 감시하는 감시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직이 좋다한들 수용소는 수용소일뿐! 모리츠는 연합군 지역으로 탈주하다가 이번엔 적국인 나치스병사로 오인돼 연합군에 잡혀 수용소에 갇히게 됐습니다. 그는 연합군 측에 자신은 유태인도 아니고, 나치스대원도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모리츠는 수용소 생활을 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간신히 석방돼 조국으로 보내져 처자식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가 싶더니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18시간 뒤에 그는 또 다시 체포돼 수용소에 감금됩니다. 서유럽에 살던 동유럽인들이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유진영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세계대전 발발 후 미국과 소련이 그 동안 연합국으로 나치 독일에 대항해 같이 싸웠지만,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미소가 분열되고 유럽 전역이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동서 두 진영으로 나눠지게 되어 각 진영에 있던 적대국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기의 조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된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소설 ‘25시’는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와 달리 불가항력적인 외부 타인의 힘에 의해 여러 차례 체포 감금돼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평생을 수용소생활을 하는 줄거리인데, 미·소 두 진영의 틈바구니에 끼인 약소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그린 것입니다. 나치와 공산당의 폭압세계를 고발함과 동시에 인간의 운명이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타인의 의지 혹은 의도에 결박되거나 결정됨을 보여준 게오르규 자신이 겪은 실제 악몽 같았던 경험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저자 게오르규가 오래 전 한국을 몇 번 찾은 적이 있습니다. 최초의 방한은 1974년이었죠. 방문 후 그는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을 찬미하고 용기와 희망을 가질 것을 당부한 이별사를 남겼습니다. 1920년대 말, 일본에 들렀다가 우연히 재일 한국기자의 요청을 받고 한국땅도 밟은 적이 없던 인도의 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가 엉겁결에 써준 “동방의 등불” 어쩌고 하는 한국찬미와는 진정성의 깊이가 다른 한민족 찬사입니다.
게오르규는 한국인을 자기 마음속의 왕자들이라고 칭했습니다. 이것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의 진정성은 그가 세 번이나 한국을 찾은 열정과 한국사랑, 그리고 그가 남긴 한국찬사를 읽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주는 메시지 : 내 마음의 왕자들이여!
“한국을 떠나면서 새로 사귄 내 친구들에게 나의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여러분들은 수난의 오랜 역사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역사의 비참한 패자들이 아니라 도리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왕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오랜 세월이 흘러가고 많은 고통이 또 밀려와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여전히 왕자라는 것을……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수난보다 위대한 나의 왕자들, 여러분들은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불행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헤어진다는 그 외로움을, 쫓겨야 한다는 그 방랑을, 굶주려야 한다는 그 갈증을, 여러분들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을 침략하고 지배하는 강대국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땅이 넓은 나라의 사람들, 승리의 영광 속에서 사는 사람들, 풍요 속에서 하품을 하고 사는 나라 사람들은 한 뼘의 땅이 주는 그 평화와 행복을 모를 것입니다. 서로 만나서 위로하고 손을 마주잡는 인정의 아름다움을 모를 것입니다. 고난에서 생겨나는 창조의 기쁨과 하늘과 땅이, 과거와 미래가 서로 포옹하는 융합의 세계를 모를 것입니다. 분리하고 계산하고 성(城)을 쌓는 자들은 언제나 땅위의 것만을 생각하지만 당신들은 압니다. 하늘의 빛깔 그 영원한 것을 가슴속에 그릴 줄 압니다.
여러분! 용기를 가지십시오. 고난의 역사도 결코 당신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와 노래와 그 기도-용기와 자랑을 잃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단순히 당신들의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가 잃어버린 영혼입니다. 왕자의 영혼을 지니고 사는 여러분들, 당신들이 창조한 것은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자동차가 아니라 지상의 것을 극복하고 거기에 밝은 빛을 던지는 영원한 미소입니다.
여러분! 미래의 역사와 그 빛은 아파하는 자의 가슴속에서만 태어납니다. 그리고 수난을 참고 견디며, 그것을 넘어설 수 있었던 오랜 슬기와 용기를 가진 자의 눈빛에서만 창조됩니다. 한국에 와서 나는 ‘해와 달’ 설화를 읽었습니다. 호랑이에게 쫓기던 남매가 하늘의 해와 달이 됩니다. 호랑이는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침략만을 꿈꾸는 강대한 나라들은 피만을 남기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광명입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입니다. 한국이여, 내 마음을 정복한 사람들, 영혼의 사람들이여, 내 친구여. 우리의 만남은 짧았지만, 보다 깊고 많은 의미를 지녔습니다. 시는 짧지만 그 속에 도리어 무한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듯이 우리의 만남도 그럴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지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나는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를, 내가 내 조국에도 쏟지 못한 정열을 여러분,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의 나라를, 그리고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내가 다 그것을 바치지 못한다면 신(神)이라도 나를 대신해서 기필코 여러분들에게 보답할 것입니다.”―〔게오르규 저, 민희식 외 옮김,『한국찬가 : 25시를 넘어 아침의 나라로』(범서출판사, 1984년 8월) 99~101쪽.〕
게오르규가 한국을 찬미하고 한민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고 당부한 것은, 어쩌면 강대국들 간 세력다툼의 결과 분단된 채 여전히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놓여 있는 한국이 자신의 조국 루마니아의 역사와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가 동변상련의 아픔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었죠. 그가 강폭한 자들은 “서로 만나서 위로하고 손을 마주잡는 인정의 아름다움을 모를 것”이지만 “서로 만나서 위로하고 손을 마주잡는 인정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에게서 루마니아인의 인정을 느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오르규가 한국인을 두고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 “불행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며, “헤어진다는 그 외로움을, 쫓겨야 한다는 그 방랑을, 굶주려야 한다는 그 갈증을, 여러분들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 까닭도 바로 한국인들이 자신의 조국 루마니아인들과 같은 처지의 고통을 당했다고 봤기 때문이었겠죠.
게오르규는 단순히 약자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자의 패도를 질타하고 인류평화의 희원(希願)을 담아 한국인이 고난을 딛고 일어나 “하늘의 빛깔 그 영원한 것을 가슴속에” 품고 새롭게 “창조의 기쁨과 하늘과 땅이, 과거와 미래가 서로 포옹하는 융합의 세계”로 나아가길 기원했습니다. 또 그는 방한 시 이화여대와 계명대의 요청을 받아 한국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취지의 강연도 했습니다.
게오르규는 또 우리가 우리민족의 고유사상을 잊거나 모른 채 서양사상을 찾는 것이 안타까운 듯 홍익사상을 21세기를 주도할 세계의 지도사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민족이 낳은 홍익인간 사상은 21세기를 주도할 세계의 지도사상이다."
세월이 흘러 게오르규가 떠나고 새 세기가 된 지도 십 수 년이 지났습니다. 그가 빌어준 희원대로 한반도에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가올 2018년 6월 12일, 한민족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있게 된 북미정상회담이 잡혀 있습니다.
이 회담이 미리 잘 될 것이라고 결과를 예단할 필요도 없지만, 반대로 미리 북한이 이번에도 술수를 부리고 또 다시 속일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때그때 발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진정성을 확인하면 될 일입니다.
현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북한의 회담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회담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돼도 북한이 더 이상 예전처럼 포를 쏘고 미사일을 날리는, 평화가 위협 받는 상황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땅에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외세와 그 외세에 영합한 정치지도자의 탐욕 때문에 우리의 산하가 두 동강이 난 지 70여년이 지난 이래 정말 오기 힘든 천재일우의 호기가 도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오르규가 말한 대로 “우리는 지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나는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게오르규가 말한 대로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또 그가 우리를 향해 “고난의 역사도 결코 당신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와 노래와 그 기도―용기와 자랑을 잃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북돋아주었듯이 천지개벽에 상당하는 새로운 상황에 즈음해 확신을 가지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미국 내 정권이 바뀌고 해서 또 다시 뒷걸음질 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강대국의 외압과 민족 내부의 수구적 반발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이 민족, 이 땅의 평화정착에 대한 결연한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입니다. 용기와 불굴의 의지만이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참으로 한민족의 지혜와 현명한 집단지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게오르규가 갈파했듯이 우리들은 단순히 우리들의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가 잃어버린 영혼”임과 동시에 “광명”이라는 말의 세계사적 의미를 자각해야 할 것이며, 우리 스스로 우리민족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민족에게는 세계인들도 수긍하고 찬탄해마지 않을 보편사상인 위대한 홍익인간 사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40여년 전, 어둠이 이 민족과 이 땅을 뒤덮고 있던 암울한 시절, 게오르규가 한 줄기 공중에 쏟아 오른 신호탄의 섬광처럼 미래를 예견하고 축복한 바 있듯이 삼천리강토에 평화의 축복이 내리도록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2018. 5. 13. 08:48 초고,
9. 27. 09:06 퇴고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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