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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강제북송 문제와 진영논리

雲靜, 仰天 2012. 3. 31. 07:00

탈북난민의 인권문제와 진영논리

 

서상문(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목적지향적 행위는 때가 적절해야 한다. 시의성을 놓치면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진정성까지 의심받는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중국의 탈북난민 강제북송에 임하는 여야 정치권이나 보수, 진보 진영의 자세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는 당사국 국민이라면 누가 요구하든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다. 여기엔 여야가 따로 없고 보수와 진보가 협력 못할 게 없다.

 

 

  

먼저 때를 놓친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이다. 임기 초나 중반기에 제기하지 않고 있다가 4년이 지난 임기 말, 총선이 임박한 이제야 중국정부에 탈북자인권문제 해결을 요청한 것이다. MB정부가 국정운영의 일정표를 가지고 출발했는지 의심받을 수 있는 사유다.

 

실제로 야당이나 진보진영은 우파들의 결집을 노린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일본정부에도 지난 4년간 언급하지 않던 ‘성노예’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촉구했으니 더욱 그렇다. 중국이나 일본정부가 매번 귀담아 듣지 않는 배경이다. 우리 정부가 제기하는 정당한 요구가 왕왕 국내정치용 발언이라는 점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재 야권이나 진보진영이 국정의 한 축으로서 응당 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문제제기가 정당함에도 “때”로 인해 불순한 정치적 저의를 가진 것으로 인식한 탓인지 그들은 보편가치인 인권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야당은 국회결의안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면서 국회탈북자인권특위 구성과 청문회개최에 미온적이다. 또한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만 시위현장에 나타나 협력을 약속했을 뿐 진보단체들은 탈북자들의 호소에 귀를 열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16만여 명이 탈북자강제북송 반대에 서명을 했지만 정작 당사국인 우리는 1만 2,000여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인터넷상에는 탈북자인권문제로 단식농성한 모 의원을 두고 총선공천을 노린 것이라거나 표를 의식한 “정치쇼”라고 조롱까지 한다.

  

이는 의제를 선점당한 진영이 반대진영의 옳음을 고의로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진영논리다. 야당과 진보진영은 총선, 대선 승리를 통한 정권교체가 우선이라고 생각한 듯 문제제기에 힘을 실어줬다간 총선에서 여당에게 보수표가 몰릴까봐 여권의 전술에 휘말리지 않으려 한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은 인권문제임에도 인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탈북자의 입장에서나 주권국가의 자존감이라는 민족이익 면에서나 통일문제를 얘기하면서 탈북자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건 자기정체성에 반하는 모순이며, 당리당략적 대응에 불과하다. 집권 후 탈북자 인권문제나 성노예 문제에 대해 영원히 제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일까? 야권은 지금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하지만 집권하면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할 게 뻔하다. 그러면 이번엔 지금의 여당이나 보수진영이 모순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정치가 생산적이지 못하고 국민이 피곤한 이유다.

  

두 진영은 집권을 노린 정치공학에서 벗어나 고통받는 당사자들과 대다수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대승적 모습을 보여줄 순 없을까?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진영논리를 훌쩍 뛰어 넘는 통 큰 정치가는 언제나 나타날까?

 

위 글은 2012년 3월 12일 자『경북일보』"탈북자 강제북송 문제와 진영논리"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