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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국 해군의 ‘핵심가치(Core Value)’와 모토

雲靜, 仰天 2012. 3. 31. 06:53

세계 주요국 해군의 ‘핵심가치(Core Value)’와 모토

 

서상문(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해군발전자문위원)

 

정신은 언어를 통해 표출되고, 언어는 정신을 규정하고 이미지화 한다. 이 점에서 군도 여느 조직처럼 군 특유의 정신과 핵심가치(core value)를 가지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모토, 슬로건이나 구호를 필요로 한다. 핵심가치는 특정 국가나 조직의 존재의의와 임무를 밝히고, 여타 국가나 조직과 다른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신이나 가치, 능력 등을 집약한 것을 말한다.

 

이는 모든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됨과 동시에 조직의 발전과 성장 동력, 위기극복 및 기회창출의 원천이 된다. 핵심가치든, 모토든, 아니면 구호든 모두 조직의 정신과 존재가치를 함축한다. 특정 국가 군의 핵심가치나 모토 혹은 구호를 파악하면, 그 조직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定向(orientation)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런 취지에서 세계 주요 해군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대만 등 8개국 해군의 핵심가치 혹은 그에 상당하는 모토나 구호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8개국 해군의 각 사이트를 모두 확인했다. 이 중 어떤 국가들은 핵심가치를 제정하지 않고 있고, 구호만 있는 경우가 있다.

 

또 단지 해군의 임무만 소개한 국가도 있었다. 외국 해군의 핵심가치나 모토와 구호를 소개하면서 우리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적은 알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知彼而不知己’의 우를 범하는 꼴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그것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제시하려고 한다.

  

각국 해군의 핵심가치나 구호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핵심가치’가 무엇인지 개념을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함과 동시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핵심가치란 특정 국가나 조직의 문화를 구성하고 대표하며, 조직의 미션이나 비전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할 행동원칙, 신조, 운영원칙을 가리킨다. 조직의 영속적 신념, 의사결정, 조직 활동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며, 조직을 이끄는 바람직한 행동들을 제시하는 가치관이자 신념 또는 기본적인 규범이기도 하다.

   

핵심가치는 조직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공유하고 실천하며, 외부적 환경변화와 무관하게 조직을 지켜나가는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간 변화하지 않는 특성이 있고, 조직의 이미지임과 동시에 실체로서 대략 세 가지 역할 혹은 기능을 한다.

  

첫째, 조직의 정체성(identity), 일체감과 소속감을 부여하며, 조직을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방향타 역할을 한다. 또한 조직 구성원의 일체감 강화를 통한 위기극복의 구심점 작용을 할뿐만 아니라 조직 내 다양한 인적 구성원들을 정신적으로 묶어주는 지주 역할을 한다. 즉 조직의 글로벌화가 촉진되고, 모든 조직에 신세대들이 증가하는 오늘날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구성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조직에서 중요시하는 조직의 정체성, 신념과 가치를 표현하며, 구성원들에게 자긍심과 의미를 부여하고, 조직과 개인의 의사결정에서 원칙과 기준을 제공한다. 셋째, 성장 지속을 위한 조직문화 구축의 시발점이며, 조직을 최고로 만들기 위한 조직운영의 나침판 역할을 한다. 국민이나 조직 구성원들의 일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구성원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며, 역량을 높이게 함은 물론, 구성원 상호간의 팀웍을 강화시킴으로써 조직 내 전체적인 인적 능력의 총량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것이 세계 유수의 초일류 기업들은 물론, 주요 국가들의 각 군이 대부분 그들만의 고유한 핵심가치를 정립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이유다. 민간 기업이 기업 이미지 제고에 활용하기 위해 핵심가치를 제정한 표본 사례는 국내 최대 기업이자 세계적인 지명도가 있는 삼성과 일본의 신흥 의류 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을 예로 들 수 있다.

  

먼저 삼성은 “창조적 혁신과 도전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라고 표방하면서 경영이념(Philosophy), 핵심가치(Value), 행동원칙(Principles)의 “3위 일체 가치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경영이념은 “삼성의 존재이유 및 사명, 궁극적인 목적 및 방향성을 가리킨다”고 돼 있다. 구체적으로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는 것이다.

 

삼성이 추구할 핵심가치로는 “영속적이고 내재적인 신념”이자 “정체성, 사고행동의 기준”이라고 한다. 이에는 인재 제일(People), 최고 지향(Excellence), 변화 선도(Change), 정도 경영(Integrity), 상생 경영(Co-prosperity) 등 다섯 가지 하부 실천지침이 제시돼 있다. 행동원칙에는 “1. 법과 윤리를 준수한다. 2. 깨끗한 조직문화를 유지한다. 3.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4. 환경, 안전, 건강을 중시한다. 5. 고객, 주주, 종업원을 존중한다” 등 다섯 가지가 있다.

  

삼성의 핵심가치에는 인재제일을 외친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나 변화와 최고를 지향하는 현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잘 반영돼 있다. 즉 삼성이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나 이념이 흠 잡을 데 없이 잘 표현돼 있는 셈이다.

  

문제는 핵심가치나 경영이념의 표현이 잘 돼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치나 이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핵심가치 중 인재중시, 최고지향, 변화선도는 여타 기업들도 본받을만한 가치로서 삼성이 주도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정도경영”과 “상생경영”에 대해서는 삼성이 계열사 간의 “일감 몰아주기”, “편법 증여”와 같은 의혹을 불러일으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즉 삼성이 내세운 “정도경영”과 “상생경영”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핵심가치의 슬로건은 오히려 기업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준거가 돼 버리고 만다. 바꿔 말하면, 실천의 정합성과 언행일치라는 기업의 도덕성 문제를 드러내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핵심가치이자 구호다.

  

최근 수년 사이 ‘UNIQLO’라는 의류 브랜드를 내걸고 세계적인 의류브랜드 회사로 급성장한 패스트리테일링의 핵심가치는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이다.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모토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UNIQLO의 제품을 사는 것이 UNIQLO 브랜드의 소비자임과 동시에 상식과 세상을 바꾸는데 앞장 서가는 자로 인식케 함으로써 폭발적으로 이 회사 제품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이 “잃어버린 20년”의 침체에 빠져 있을 때 패스트리테일링이 “나 홀로 성장”을 계속해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의류브랜드로 발전한 것은 이 전략 덕분이었다. 그것은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柳井正)회장의 각고의 노력과 경영능력 등과 함께 소비자의 인지도에 힘입어 결국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 중심에 이 핵심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세계 주요국 해군의 핵심가치 혹은 그에 상당하는 의미의 모토와 구호는 어떠할까? 이하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해상자위대)와 대만의 해군을 살펴볼 차례다. 그리고 말미에는 우리 해군의 구호를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1) 미국 해군 맻 해병대(US Navy & US Marine)

현재 미국 해군의 공식적인 핵심가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시기 미상의 과거 한 때 "Non Sibi Sed Patriae!"이라는 공식적인 모토를 갖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Non Sibi Sed Patriae!"는 라틴어이다. 영어로 옮기면 ‘Not for self, but country!’, 즉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 구호가 폐기된 이래 지금까지 미 해군은 공식적인 핵심가치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비공식적으로 1798년 4월 30일에 제정된 “명예, 용기, 헌신”(“Honor, Courage, Commitment”)라는 모토를 표방하고 있다.

 

<미국 해군 로고> <미국 해병대 로고>

  

“명예, 용기, 헌신”은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들처럼 군인이 지켜야 할 전통적인 덕목이라는 점에서 고전적인 취향이 드러난다. 그러나 한편에서 보면, 이는 군인 이외에 다른 조직들도 가질 수 있는 가치들이어서 해군의 특성은 물론, 현대전과 해군발전의 방향성이 부각되지 않는 면이 없지 않다. 즉 첨단 무기 장비로 합동성이 강화된 현대전 수행능력의 제고를 추구하는 미 해군의 발전 방향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 해군이 “명예, 용기, 헌신”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은 현대전 수행능력을 강조하고 추구하는 가운데서도 그래도 변함없이 인간의 정신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해병대는 현재 “Semper Fidelis”라는 핵심가치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역시 라틴어인데, “언제나 믿음직한”(always faithful)이라는 의미다. 지난 수십 년 간 미군은 모병제로 인해 병사들의 질이 많이 저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 해병대는 “언제나 믿음직한” 모습인지, 또 미 해군도 “명예, 용기, 헌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 중국 해군(中國人民解放軍 海軍, People's Liberation Army Navy)

 

<중국 해군기>

 

G2로 부상한 중국 해군의 핵심가치는 “화해해군”(和諧海軍)이다. 그 하위 개념에 “환상을 버리고 전쟁을 준비하자”(丢掉幻想, 準備打杖)이라는 모토가 있으며, 관련 구호는 “祖國萬歲!”다. “화해해군”은 후진타오(胡錦濤) 현 중국공산당 주석이 내건 정치적 기치와 목표인 “조화사회”의 이념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정부의 여타 기구들이 모두 그렇게 하듯이 해군도 국가 최고 지도자의 정치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는 정치적 의도가 내포돼 있다.

 

만약 후진타오 정권 다음에 권력을 잡은 어떤 특정 당의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내건다면 해군이 지향하는 가치는 바뀔 수 있다. 즉 중국해군은 정권에 따라 목표나 핵심가치가 달라지는 가변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국민의 해군이라기보다는 중국공산당의 해군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환상을 버리고 전쟁을 준비하자”(“丢掉幻想, 準備打杖”)이라는 모토는 과거 중국이 경험한 쓰라린 역사적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1940년대 중․후반 한동안 중국공산당 내 지도적 인사들이 미국과 친교를 맺으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와 달리 미국은 결코 중국공산당과 관계를 증진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 점을 간파한 마오쩌둥(毛澤東)이 과감하게 미국과 결별했는데, 이 모토는 이때 친미적이거나 과도하게 미국에 희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경고하면서 한 말이다.

 

오늘날도 중국 해군은 여전히 미국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남중국해에 개입하면서부터는 더욱 노골적이다. 따라서 “환상을 버리고 전쟁을 준비하자”라는 모토는 특정 국가, 즉 미국에 대한 중국의 대적의식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 표현은 중국해군이 호전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만들어 대외적으로 중국해군이 평화애호 정신이 결여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인식을 준다.

 

3) 러시아 해군(Военн-МорскойФлот)

 

<러시아 해군기(함미기)> <러시아 해군기(함수기)>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해군의 핵심가치나 구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국가다. 러시아연방 해군 홈페이지에는 이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말하자면 해군의 정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 “2010년까지 해군활동 영역에서 러시아연방의 기본정책”에 규정된 해군의 기본 임무만 탑재돼 있는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신성을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기본 임무는 아래와 같이 무려 아홉 항목에 이른다.

  

첫째, 해양 방면으로부터 러시아연방과 러시아연방의 연합국들에게 군사력이나 군 사적 위협을 가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군사적 수단을 통해 대양에서의 러시아연방의 이익을 수호한다.

둘째,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러시아연방의 해군 전력을 적합하게 유지한다.

셋째, 러시아 해역에 연한, 그리고 러시아 안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양 지역에서 외 국 및 군사정치 블럭 해군력의 활동을 통제한다.

넷째, 군사적 위협을 폭로하거나 경고 및 예방하고, 해양 방면으로부터 러시아연방과 러 시아연방 연합국들을 대상으로 한 침략을 격퇴한다. 군사분쟁의 예방과 군사분쟁의 조기 국면에서 이의 국지화 활동에 참여한다.

다섯째, 러시아연방의 안보이익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해양지역에서 전력 및 장비를 즉각 적으로 증강한다.

여섯째, 러시아연방의 해저영토의 수호를 보장한다.

일곱째, 러시아연방의 해양 수역과 연안 지역을 군사행동 가능 영역으로 방비한다.

여덟째, 러시아연방 해역, 배타적 경제수역, 대륙붕, 해양의 원격 지역들에서 경제 및 여 타 분야의 안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유지한다.

아홉째, 해양에서 러시아연방의 해군활동 참여를 보장한다. 러시아연방 깃발과 군사력의 위상을 과시하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러시아연방의 이익에 부합하는 군사활동, 평화유지활동과 민간 구호활동에 참여한다.

  

러시아 해군의 방어지역이 러시아연방의 해양 수역과 연안뿐만 아니라 배타적 경제수역, 대륙붕이라는 점과 그리고 이를 넘어 대양지역에서 러시아연방과 러시아연방 연합국의 안전까지 수호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4) 영국 해군 및 해병대(Royal Navy & Royal Marine)

 

영국 해군도 미국 해군과 마찬가지로 “Si vis pacem, para bellum”라는 라틴어 구절을 차용하고 있다. “Si vis pacem, para bellum”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If you wish for peace, prepare for war”)는 뜻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 구호는 고대 신성로마제국 시절의 푸불리우스 플라비우스 베제티우스 르나투스라는 작가가 ‘De Re Militari’(‘Concerning Military Matters’, 즉 ‘군사문제에 관하여’) 라는 제목의 소책자 3권에서 썼던 말이다. 낯익은 경구처럼 들리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영국해군의 핵심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군의 범위를 넘어 국가나 범국민 차원에서 요구되어지거나 요구하는 가치처럼 들리기 때문에 해군만의 특성을 충분히 살린 표현은 아니라는 흠이 있다.  

 

<영국 해군기(함미기)> <영국 해병대 로고>

 

이와 달리, 영국 해병대는 “Per Mare, Per Terram”라는 라틴어를 공식 가치 내지 모토로 채택하고 있다. “Per Mare, Per Terram”는 영어로는 “By Sea, By Land” 즉 “바다로, 육지로”라는 의미다. 이 구절은 원래 미국 독립전쟁 당시인 1775년 6월 17일 벙커힐전투에 참가한 영국 주둔군의 모자에 쓰여 있던 말이다.

 

벙커힐전투는 보스턴 항구 북쪽의 찰스타운 반도에서 2,400명의 영국 주둔군과 1,500명의 미국 대륙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전투 결과 영국 주둔군은 참전 인원의 절반에 가까운 1,15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미국 대륙군은 3분의 1에 해당하는 450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 대가로 막대한 피해를 본 바 있다.

 

“바다로, 육지로”는 해군의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보다 해병대의 전투특성과 임무의 성격이 짧고 함축적으로 잘 응축돼 있는 느낌이 든다.

 

5) 프랑스 해군(Marine nationale)

 

<프랑스 해군 로고>

 

 

  

프랑스 해군의 정식 모토는 “명예, 애국심, 용맹, 규율”(“Honneur, Patrie, Valeur, Discipline”)이다. 프랑스 해군의 모든 선박에 새겨져 있는 이 모토는 왕정 해군시절(la marine royale) 때부터 변하지 않은 것이다. 프랑스 해군은 공식적으로 ‘국립 해병’(‘La royale’)으로 불린다. 프랑스 해군이 프랑스제국 시절 1624년 리슐리외가 창설한 왕정해군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La Royale”(라 로아얄)로 불려진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고대 해군장관이 파리의 로아얄 지역에 해군의 본부를 세웠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프랑스 해군은 총 배수량이 49만 톤(2002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군 가운데 하나다. 지중해와 대서양 양쪽의 해상을 모두 방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군 수뇌부는 해상이 아닌 유럽 대륙의 군사적 선점에 주력하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 행정부에서는 프랑스의 현 국력 상황에선 상대적으로 해군력을 최우선 해상력으로 보지 않고, 장기적으로도 해상력의 중요성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해군력을 유지하고 보호하면서 세력을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에 적절히 배분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들은 영해보호라는 기본 임무에서부터 민간 선박을 보호하고, 핵무장이 가능한 함선들, 국제대륙간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핵잠수함들까지 관리한다. 프랑스 해군의 “작전행동(Action)은 힘과 권력의 행사로부터 예방 역할을 하며, 어떠한 사명의식을 갖도록 결집시킨다.”(L'action opérationnelle rassemble les missions de prévention et de projection de puissance ou de forces).

  

그런데 “명예, 애국심, 용맹, 규율”은 프랑스 해군이 추구하는 핵심가치처럼 간주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유럽 각국 군대가 추구해온 전통적 가치의 전형이어서 내용이 너무 일반적이다. 그래서 시대에 뒤진 답보 상태를 느끼게 만든다. 바꿔 말하면, 프랑스 해군은 해군의 전통적 특성과 정체성은 잘 표현돼 있지만, 그 외에 오늘날 해군이 첨단 무기, 장비로 무장한 현대전을 수행하겠다는 발전방향은 제시돼 있지 않다. 그러한 가치들을 함축하기에는 표현에 부족함이 없지 않다.

 

6) 독일 해군(Deutsche Marine)

 

독일해군도 핵심가치나 모토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연방 해군 사이트에는 그것들을 찾아 볼 수 없고, 구호도 눈에 띄지 않는다. 단지 해군의 임무만 열거돼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독일해군의 임무는 국제적 갈등의 방지와 위기극복 및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대응 과제를 이행하는 것이고,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견지해야 할 과제로 설정돼 있다. 또한 세계무역과 경제활동에 가장 중요한 해상교통로를 확보하여 국익보호 이바지에 뒷받침하는 것도 주요 임무이다.

 

<독일 해군기(함미기)>

 

이는 독일정부가 일본정부나 러시아정부와 마찬가지로 해상교통로의 확보가 국가적 사활의 관건으로 생각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즉 세계의 무역국들에게 물자교역을 위한 가장 중요한 무역 수송로는 해상인데, 전 세계무역의 90% 이상, 유럽연합 해외무역의 95% 이상, 수출국가로서 국제화되어 있는 독일도 국내외 무역의 거의 70% 이상이 해상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은 경제적, 정치적 무역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원료수입의 안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가전략에 부응해 독일해군은 자국경제의 중요한 밑바탕의 하나인 해상무역 능력을 보장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연방군의 배치준비를 위한 책임자로서 해군총장은 요구되는 해군력 설정과 확대 관련 계획의 중점을 설정했다. 독일해군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글뤽스부르크(Glücksburg) 함대사령부와 로스톡(Rostock) 소재의 해군청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해군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안전과 평화를 위한 독일 연방군의 한 구성원으로서 상비필승의 자세로 활동하고, 위기 및 재난시 지원을 위한 즉각적인 출동과 배치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다.

 

7) 일본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 Japan Maritime Self Defense Force)

 

일본 해상자위대가 취하고 있는 구호는 “지킨다! 이 바다와 미래를!”(“守る! この海と未來”)이다. “지킨다! 이 바다와 미래를”이라는 구호는 섬나라 일본의 지리적 특성이 십분 반영된 구호다. 즉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본은 영원히 4면이 바다일 수밖에 없는 운명적 특성을 나타낸다.

 

실제 일본국민이 필요로 하는 물자 대부분이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그중 90% 이상이 해상수송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은 다른 어떤 국가 보다 바다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본방위백서에 의하면, 일본정부는 장차 불특정 침공국이 일본본토를 점령하려 할 경우 그들은 해상과 항공 우세를 차지한 후 바다 또는 공중에서 지상군을 상륙 혹은 착륙시키는 “착․상륙 침공”을 실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기(함미기)>

 

따라서 해상자위대 고유의 임무인 ‘현재’의 영해수호는 물론, 불확실한 ‘미래’의 바다까지 지키겠다고 함으로써 현재나 미래나 오직 바다를 지키는데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또한 이 구호는 바다를 지켜야만 일본민족과 국가의 미래가 보장받을 수 있다는 계시적 언명이다. 언어의 조탁 면에서도 바다라는 공간과 미래라는 시간이 상호 유기적으로 잘 어우러져 있고, 언어의 운율 면에서도 문학적으로 잘 다듬어진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지킨다! 이 바다와 미래를”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임무가 제시돼 있다. 즉 "새로운 위협이나 다양한 사태에 대한 실효적인 대응”, “국제적인 안전보장 환경의 개선을 위한 주체적, 적극적인 대적” 그리고 방위력의 미래 역할인 “본격적인 침략사태에 대비한 준비” 등이다.

 

 8) 臺灣 해군(中華民國 海軍)

 

<중화민국 해군기> <중화민국 해군 로고>

 

대만의 ‘중화민국’ 해군은 해군이 계승해야 할 ‘전통정신’으로 여섯 가지를 내세우고 있다. 즉 1. “소수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격퇴한다”(以寡擊衆), 2.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움을 극복한다”(冒險犯難), 3. “충의를 전 해군장병의 행동지표로 삼는다”(忠義軍風), 4. “과거 국민정부 수립 이후 해군이 거둔 혁혁한 역사적 전과를 이어받는다”(歷史傳承), 5. “위험에 직면해서도 다 같이 극복하고 목적을 달성한다”(同舟共濟), 6. “서로 돕고, 상호 협력한다”(互助合作)는 정신 등이다.

  

또한 주요 구호로는 “海軍의 創新”을 내세우고 있다. “해군의 창신”은 말 그대로 해군이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임무가 설정돼 있다. 즉 “지휘통제 자동화, 작전능력 입체화, 무기계통 미사일화”(指揮管制自動化, 作戰能力立體化, 武器系統飛彈化)의 지도에 의거해 정찰,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종심타격 증강, 작전범위 확대, 신속 반응 및 임기응변적 방위 행위의 제고를 통해 효율, 위협, 저지(效嚇阻), 3회 공간기동 타격력을 지닌 작전병력을 조직하여, “질의 정예, 높은 효율, 신속 배치, 장거리 타격”(質精, 效高, 快速部署, 遠距打擊)의 병력 건설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군의 창신”이라는 구호는 다분히 추상적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왜 변화해야 하는가라는 점에서는 언뜻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결점이 있다. 물론 제시된 임무들을 보면 이 가치에는 해군이 늘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스스로 변화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군을 이끌고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의지가 내포돼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모름지기 핵심가치나 구호란 구체적인 임무나 설명이 없이도 제시하고자 하는 뜻이 대상자에게 즉각 전달돼야만 제대로 된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해군의 창신”은 적어도 구호의 字意만으로는 해군 구성원이나 국민에게 ‘중화민국’ 해군수뇌부가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가 직각적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9) 대한민국 해군(Republic of Korea Navy)

 

<대한민국 해군기(함수기)>

  

우리 해군의 경우는 동아시아 해상 통제권을 장악한 장보고 대사와 임진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제독의 충무정신을 이어 받고, 대한민국 해군 창설과 함께 해군이 나아갈 지표를 제시한 손원일 제독의 창군정신을 현양하는 다양한 구호들을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출항준비”, “대양해군”, “필승해군”, “해군의 힘,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호국해군”, 그리고 해병대가 자랑으로 삼고 있는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구호들은 각기 해군과 해병대가 지향하고자 하는 항구적 지속성과 발전방향을 담은 것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위용

 

최근 수년 사이 계속된 북한의 서해안 지역에서의 군사도발 이후로 “호국해군” 구호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 구호들은 장보고의 사상이 녹아 있는 대양해군 정신, 이순신의 충효사상, 손원일 제독의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삼가 이 몸을 바치나이다”라는 해군 창군이념과 그 실천지침들이 상호 복합적으로 응축된 것임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세계 주요 해양강국들의 해군정신과 지향하는 바를 표현한 핵심가치, 구호나 혹은 임무를 살펴봤다. 여기에는 각기 자국의 안보환경이 반영돼 있다. 각국이 처한 안보상황은 달라도 러시아와 독일 이외의 국가들은 모두 해군의 정신과 존재가치를 표상하는 핵심가치나 그와 유사한 모토 혹은 구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 러시아, 독일과 같은 국가들은 핵심가치를 표어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에 상당하는 모토, 구호나 혹은 임무를 제시함으로써 해군의 정체성을 대내외에 표상함과 동시에 구성원들에게 해군 고유의 임무, 존재 및 발전방향을 제시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해군장병들의 정신일체화, 행동규범화, 전투 및 복무의지의 일상화에 기율을 제고할 수 있는 핵심가치나 정신성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실행될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조직의 목적달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체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의 핵심지도부가 구성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활동방안을 조직 차원에서 개발, 운영하여 핵심가치가 조직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홍보해야 할 것이다.

  

해군만을 위한 해군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해군, 현대화, 대양화, 첨단화를 지향하는 해군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구호를 사용함으로써 21세기형 해군의 목적과 존재의의, 발전방향과 임무를 표상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예시한 바 있듯이, 이 과정에서 핵심가치를 지정해놓고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조직 비판의 척도가 되고 만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제약하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위 글은『군사저널』, 2012년 1월호(2012년 1월 1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