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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에게는 늙음이 없다!

雲靜, 仰天 2017. 7. 9. 17:59

꿈꾸는 자에게는 늙음이 없다!

 

서상문(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나라 안 정치인들은 입으로는 걸핏하면 백성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몸과 의식은 오로지 금권을 향해 있는 정치인이 대부분입니다. 정말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넘어서 백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애민을 실천하는 호연지기의 큰 정치인이 눈에 띄지 않는 세상입니다.

 

과거 역사상엔 그런 큰 정치인이 전무 했었던 건 아닙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불현듯 한시(漢詩) 한 수가 떠오릅니다.

 

蒼茫歲月一株松

창망한 세월 속 한 그루 소나무

生長靑山幾萬重

청산에서 나서 자라기 몇 만 겹인가?

好在他年相見否

다른 날에 서로 볼 수 있을까 없을까?

人間府伊使陳從

인간 나라를 세우는 길에 그대를 쫓겠나이다.

 

고려 말, 삼봉(三峯) 정도전이 함경도에서 변방을 지키고 있던 이성계를 찾아가 자신의 심사를 밝힌 시입니다. 그는 고려 왕족과 권문세가들의 끝간 데 없는 토지겸병과 가렴주구 등 정치적 횡포가 극심한 것에 환멸을 느껴 새로운 세상을 갈구했습니다.

 

 

조선의 국가 틀을 짠 삼봉 정도전. 신권으로 왕권을 견제해서 나라가 굴러가도록 하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정치가였다.

 

그러나 새 세상에 대한 비전은 품고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그것을 실현시킬 힘, 즉 무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력을 거머쥐고 있던 이성계를 찾아 간 것입니다. 조선 개국 9년 전(우왕 9년 1383년)의 일이었습니다. 정도전의 나이 41세 때였습니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남들이 꾸지 않는 청운의 꿈을 꾸었던 셈입니다.

 

정도전은 이성계와는 초면이었지만, 이성계는 정도전의 이름 석 자를 듣고 있던 차였습니다. 삼봉은 이성계가 사람됨이 겸손하고 백성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같이 눈물 흘릴 줄 아는 덕장(德將)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정도전과 이성계. 두 사람은 의기가 투합돼 역성혁명까지는 성공시켰지만, 국가운영에서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했다.

 

삼봉은 대화를 나누면서 새 왕조를 개창할 적임자로 이성계를 선택한 뒤 시 한 수로 자신도 기꺼이 여기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죠. 그가 군기가 엄정한 이성계 휘하의 병사들을 보고 이성계에게 던진 첫 마디가 의미심장했습니다. “이 군사를 가지고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이성계도 헌걸차게 화답하면서 삼봉의 두 손을 움켜잡았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드물게 보는, 사상과 무력이 결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정도전은 자신을 한고조 유방을 도와서 한나라를 세운 장량에 비유했습니다. 자신이 이성계를 선택해 조선을 세웠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자기 신념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사상과 신념을 조선의 기틀을 잡는데 신명 나게 바쳤습니다. 중국 明나라의 법전들을 참고해 나라의 기본과 토대를 마련한 ‘조선경국전’이 삼봉의 작품입니다. 

 

삼봉은 사변과 이상에 그치고 만 역사상의 숱한 낭만적 혁명가들과 달리 이상과 행동이 일치된 순정한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새 세상을 만들고자 한 갈망과 비전을 흉중에 품고 있던 준비된 혁명가였기에 조선 건국 후 권력의 열매를 따먹기에 급급한 사이비 혁명가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혁명은 이전 시대의 지배이념을 부정하는데서 출발합니다. 혁명 전이나 혁명 후에도 삼봉이 시종일관 불교를 공격한 까닭도 불교가 고려의 국교이자 정치이념이었지만, 너무나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집필한 ‘불씨잡변’(佛氏雜辯)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 대해 ‘부처의 헛소리’라는 의미의 불씨잡변이라고 매도했듯이 고려 말 불교는 왕실과 함께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국정을 농단한 최대 원흉이라고 지목했기 때문입니다.

 

삼봉의 정치적 지향은 집권 후 과거 자신들이 그렇게 비판하고 탓했던 고려의 권문세족들처럼 새로운 신흥사대부가 돼 백성의 고혈을 빨아 가렴주구하는 기득권자가 되어간 여타 개국공신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습니다.

 

혁명 초기,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도탄에 빠져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삼봉으로 하여금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만든 선연한 명분이었습니다. 백가지 성을 가진 백성, 요즘 말로는 서민이자 국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름지기 정치인과 권력자라면 방점을 찍고 향해야 할 마음가짐과 정치철학이 아닌가요? 우리 자신이 바로 서민이요, 백성이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도 한 세상 잠시 소풍 왔다가 구름처럼, 이슬처럼 혹은 바람처럼 갈 인간사에서 늦었더라도 각자가 크든 작든 흉중에 품고 있는 뜻을 세워봅시다! 입지(立志)는 젊을 때만 세우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평균 수명이 짧았던 공자(孔子) 시대의 덕목입니다. 100세 시대의 오늘날에는 폐기해도 될 가치입니다.

 

중년과 노년에 꾸는 꿈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한탄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거나 꿈을 잃어버리면 자신도 모르게 쉬이 늙고 맙니다. 꿈꾸는 자에게는 늙을 틈이 없습니다!

 

2017. 7. 9. 15:56

구파발에서

雲靜

 

위 글은 2017년 7월 10일자『울산신문』에 칼럼으로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