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징벌하자”는 중국의 오만과 공갈을 어찌 해야 할까?
: 위기는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를 재정립시킬 기회다!
서상문(고려대학교 한국전쟁 아카이브 연구교수)
중국의 대국이면서도 소아적인 골목대장 행태가 재연된지 오래다. 주권국가에 대한 패도와 내정간섭 수준이 도가 지나치고 있다. 한동안은 서해 영해침범 및 어족자원 침탈, 이어도를 중국 영해 200해리 에 귀속시킨 도상침략(map’s aggression)에다 관공선을 보내 자주 화를 돋웠다.
그런가 하면, 달라이라마의 방한도 못하게 압력을 넣거나 훼방하지를 않나, 미국 소재 중국 파룬공(法輪功) 조직이 운영하는 션윈(神韻) 예술단의 한국공연 취소 압력, 북핵에 대해서도 겉 다르고 속 다른 식의 제재를 일삼아왔다.
이번엔 아예 노골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결정한 미국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 결정을 취소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혼란시국에 맞춰 한국의 과도한 중국시장 의존성을 약점으로 삼아 내정을 간섭함으로써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한지 오래다.
중국정부가 사드배치를 철회시키기 위한 압력으로 동원한 수단은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정부는 중국관광객의 한국방문을 제한하다가 지난 3월 15일부터는 개인여행객(散客)만 제외하고 전면 금지했다.
이 불똥으로 기존에 한국을 기항지로 하던 외국적 크루즈선들도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에는 기항하지 않고 있다. 한국 여행업계에서는 작년 806만 명이던 중국인 관광객이 반토막 날 수도 있다는 한숨소리가 끝나지 않고 있다. 중국정부는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 중 롯데를 본보기로 무지막지한 타격을 가한데 이어 중국인들에게도 반한감정을 부추기면서 선동해왔었다.
중국당국이 중국 전역에 걸쳐 총 99개가 영업하고 있는 롯데마트들 중 55개 매장들에게 소방법 위반으로 걸어 1개월 간 영업 정치처분을 내린 게 그 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소를 막을 요량으로 중국정부가 가했다는 혐의를 감추기 위해 관은 뒤로 빠지고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관방언론들이 주도하게 하고 민간 기업이 호응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폐쇄적인 중화민족주의적 쇼비니즘을 부추겨 애국심과 불매운동을 결합시켜 중국 전역에서 한국을 때리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드를 배치하면 그에 대해 군사적으로 정밀 타격하겠다는 공갈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민간에는 “한국을 징벌하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하기 직전에 “베트남을 징벌하자”는 소리가 나온 것과 유사하다.
쫄 게 없다. “군사적으로 정밀 타격하겠다”, “한국을 징벌하자”는 말들은 그야말로 공갈 협박에 불과하다. 설령 그 발언대로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니까! 또 중국도 속으로는 우리가 맞대응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니까!
중국은 상대를 공략할 때는 으레 먼저 공산당 기관지를 동원해 상대의 대응의지와 강도를 탐색하는 수순을 밟는다. 평소 자국함정을 동해에까지 보내 미국과 일본을 겨냥해 무력시위를 해온 게 중국이지만, 실제 군사적으로 행동을 취하면 바로 미국이 반격을 가하고 중국은 전쟁에 휩싸이게 되고 중공이 국가권력을 내놓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중국의 꿈”은 그야말로 정말 허망한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번 사드배치문제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대국이기는커녕 잔챙이 같은 소국 보다 나을 게 없다는 사실을 중국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중국의 민낯이 만천하에 가감 없이 드러난 셈이다. 사드의 한국배치가 적실성과 효율성이 있든 없든 중국정부가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게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국가주권문제로서 사드를 배치하고자 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 타당성, 무기의 효율성이 어떻든 간에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보수정권에서나 진보정권에서나 어떻게 결정하든 간에, 대선 후 차기 정권에서 하든,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주권국가인 한국의 국가정책이자 안보정책이 아닌가? 역으로 우리가 사드배치를 반대한다고 해도 중국은 환영하거나 할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전인민을 동원해 압력행사를 주도한다는 것은 오만을 넘어 월권이자 내정간섭이요, 공갈 협박이다. 중국이 정히 그렇게 하고 싶으면 먼저 한반도를 사정거리 안에 둔 자신들의 전략 무기들을 내려놓고 사드배치 철회를 요청하는 게 도리이자 순서다. 사드배치를 결정하게 된 명분은 북한의 핵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제거하는데 더 많은 수단을 사용했어야 했다. 또 사드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MD체제 구축의 일환이라고 치더라도 먼저 중국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중국 국내에 미국견제 명분으로 동쪽을 향해 무수히 배치해놓은 각종 미사일탄도탄들을 제거하고 요구할 일이다.
이처럼 사드의 도입 및 배치가 우리의 내정에 속한다는 사실을 중국정부가 애써 무시하고 깔아뭉개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인의(仁義)와는 거리가 먼 완전한 패악질, 즉 패도다. 시진핑 정권이 지금 추진해오고 있는 야심적인 프로젝트, 즉 패도에 반대하고 인의를 강조한 공자사상과 사마천의 역사정신을 내세워 문화적, 사상적으로 세계를 석권하겠다는 정책과 완전히 배치되고 모순된 것이다.
중국인들이 “짱꼴라”, “짱깨”(이는 단순히 중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는 용어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용어인데, 그 내적 함의에 대해서는 나중에 소개할 기회를 갖겠다)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자신보다 힘이 센 미국에겐 패도를 행하지 말라고 비난하면서도 힘 약한 나라에게는 패도를 일삼기 때문이다. 이는 한 마디로 한국과 한국인을 만만히 보기 때문이다.
외교경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덩치가 크다고, 큰 시장이 있다고 힘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발상 자체가 대국다운 이념과 철학이 없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스포츠에서 권투, 레슬링, 유도 등의 무제한급 승자가 플라이급이나 페더급 챔프를 이겼다고, 혹은 이기겠다고 실력을 갈고 닦고 절치부심, 와신상담, 분골쇄신하는 선수를 봤는가? 그가 진정한 강자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구촌을 대동사회로 이끄는데 전적으로 책임지고 공헌하지는 않더라도 자신보다 더 강한 자와 겨루거나 아니면 오직 자신의 한계를 이기려고 노력하는 게 진정한 강자가 취할 바른 길이다. 시진핑 주석이 자랑거리로 내세우고 있는 과거 중국사상가들 가운데 노자가 말한 대로 힘 있는 자는 남과 겨루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과 겨룬다는 노자의 자승자강(自勝自强)사상에 충실 하는 게 땅 큰 나라의 지도자다운 모습이 아닐까?
중국은 세계 공도(公道)를 무시하고 이 질서를 깨트리고 시도한 것일까? 사드 배치 문제가 불거져 나온 뒤로 중국이 우리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갑자기 돈을 좀 만지게 된 졸부가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중국이 덩치는 곤륜산이나 태산만하지만 언행은 마치 소인배나 다름없다. 땅덩어리는 크지만 국가지도자들이 행하는 언행과 정책적 행보를 보면 마치 236㎝의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인 중국의 쑨밍밍(孫明明)이 키 크다고 키 작은 선수들에게 함부로 막말에다 공갈치고 막무가내로 밀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런 모습을 보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대국이기는커녕 속된 말로 ‘땡깡’을 피우고 마구 횡포를 부리는 왈패 같아 보인다. 과거 전통시대 중국의 황제와 사대부들이 주변 모든 조공국이나 약소국들에게 온갖 거드름을 피우던 오만과 자만이 다시금 재현된 것처럼 보인다.
서세동점의 시대 19세기 후반기 아시아 패권의 주체가 청국에서 일본으로 바뀌어가려는 전환기인 1882년 임오군란 때 청국 황제의 특명을 받고 조선에 파견된 위안스카이(袁世凱)가 1895년 청일전쟁 이전까지 식민지도 아닌 조선의 국정을 쥐락펴락한 전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위안스카이는 20대의 일개 중간급 관리에 불과했다. 그래서 DNA의 전승이라는 유전학적인 면에서 볼 때 역사는 단절보다는 연속성이 더 크다는 걸 잘 보여준다. 민족단위의 피는 그것을 깨끗이 하기에는 갑자기 돈이 좀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부단한 자기성찰을 통한 겸손을 갖추기까지 몇 세기가 걸려도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이처럼 중국이 패도를 걷게 된 데는 중국 전체가 고대 자기 선조들이 창안한 인류의 보물과도 같은 사상과 정신을 내팽개치고 공산주의사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시진핑 국가주석을 위시한 중공지도부가 한국에 대해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완력적 패도는 자기 품속에 있는 보물에 눈을 감은 것에 대한 필연적 과보다.
인류의 집단지혜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사상 그리고 그로부터 태동되는 정치이념이기도 한 중국의 인의(공자), 왕도(王道 맹자), 자승자강, 대동(大同)세계(천하의 평등을 지향한 유가의 이상세계, 禮記, 禮運篇 출전), 자리공리(自利公利), 이타심의 보살(중국에서 꽃을 피운 대승불교)정신은 모두 봉건적 사상이라고 매도하거나 구시대의 유습으로 규정해 깡그리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중국정부가 최근에야 정부차원에서 공자사상과 사마천의 역사정신을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등 재조명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것이 공산주의사상을 대신하든가 아니면 최소한 중국인 중산층이 동의할 만큼 양자의 조화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역사적 과보는 또 한 번 받게 될 것이다. 멀지도 않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중공의 일당 독재가 끝나고 다당제와 민주화시기로 진입하게 되면 반드시 패도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늦어도 10~20년 안으로!
중국은 향후 우리의 대응수위와 결연한 의지의 정도, 대응정책의 명분 및 치밀성의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협상, 7월에 있을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에서 시진핑과의 수뇌 협상내용에 따라 횡포를 접든가 아니면 그 수위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4월 17일 백악관 외교정책 보좌관이 다음 대통령이 사드문제를 결정하는 게 맞다고 한 지금은 중국이 한국의 새로운 리더십의 대응을 관망하고 있는 중인데, 중국의 후속조치는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미 중공 수뇌부(7명으로 구성된 중공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수준에서 삼성과 현대 등 롯데 이외 기업들에 대한 제재의 확대, 한국 국적기의 유럽행 항공기의 중국영공 통과 폐쇄 등 단계별 대응조치를 검토한 바 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실제로 중국『人民日報』의 부속지『環球時報』는 지난 3월 중순, 중국에 진출해 있는 삼성과 현대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 선거 전후 문재인 후보(대통령)에 대한 시진핑의 호의적인 발언들을 보면 중공지도부에서는 지금까지의 펼친 전을 거두기로 하고 봉합수순에 들어간 듯하다.
지금까지 중국정부가 우리에게 구사해온 이러한 전술은 한 마디로 통일전략전술과 성동격서(聲東擊西)로 요약할 수 있다. 전자인 통일전략전술은 논란거리를 던져 놓으면 적의 의도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노리는지도 모른 채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박 터지게 서로 싸워대도록 만드는 갈라치기전술이다. 북한이 늘 우리에게 써먹고 있는 게 이 전술인데도 우리는 아직도 중국의 이러한 통일전략전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김일성 이래 3대째 써먹고 있는데도 우리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여전히 이 전술의 실체와 저의를 깨닫지 못하고 저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
통일전략전술은 원래 러시아 혁명시대 레닌의 볼셰비키들이 짜르의 전제정권과 그에 기생한 기형적인 자본가계급에 대한 내부 분열, 다수의 포섭과 주된 적의 고립을 통한 전체권력의 와해를 노린 혁명전술로 고안된 것이다. 1920년대 초 네덜란드 출신의 코민테른 공작원 마링과 보이틴스키, 보로딘 등의 소련공산당 및 코민테른 공작원들이 차례로 중국에 잠입해 중국국민당을 끌어당겨 중국의 중앙정부인 군벌세력을 와해시키고자 중국공산당에 지도하고 전수해준 전술이다. 중국인들이 통일전략전술로 노리는 것은 한국사회 내부의 자중지란▶ 적전분열▶ 지리멸렬▶ 철회 혹은 대중국 협상력의 저하다.
후자인 성동격서는 미국과 일본과의 싸움에서 약한 고리를 잘라내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사드 사태의 이면에는 중국의 성동격서 전술이 내재돼 있음을 통찰해야 한다. 성동격서 전술에 중국이 노리는 최대의 이익이 감춰져 있다. 중국이 걸어오는 싸움이 단지 한국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핵심은 미중관계라는 그랜드(대)전략의 충돌에 있다. 즉 큰 틀은 미국과의 한 판 승부에 있고, 북한 핵무기를 빌미로 강화시키는 미국의 대중국 압박을 완화시키고자 동쪽 한반도에서 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것이다. 그 하부 차원에서는 미국, 일본과의 군비경쟁에 말려들지 않고 싶다는 곤혹감이 숨겨져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대중국 포위의 고리에서 떼어내기 위해 갈라치기 하고 길들이려는 상대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약자를 하찮게 보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한국을 우습게 아는 적지 않은 중국인들의 인성이 문제의 근원이지만, 동시에 한국인의 뿌리 깊은 사대근성과 외교력의 부재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과도한 대국의존성, 분열성과 파당성, 사대주의에 젖어 있는 우리를 얕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이참에 우리의 연약한 저자세 외교, 상대의 저의도 알지 못한 채 초당적인 해법의 논의 없이 무턱대고 중국에 찾아가거나 대선 후보자가 중국의 일개 한반도정책 특사를 만나 대화함으로써 스스로 국가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부 정치인들의 지적 천박함과 순진함, 자각하지 못하는 사대주의근성, 또 큰 틀(大局), 즉 세계정세와 중미 대응 판세를 읽지 못하는 국가지도자의 무지 그리고 그 무지를 대신하는 정치적 허세와 단세포적인 중추신경을 반성해야 한다.
또 쉽게 달아올랐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식어버리는 국민들의 냄비근성도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예전처럼 전략적인 준비 없이 미국에만 의존하는 식으로 대응하다간 앞으로 중국과의 잦은 충돌이나 싸움에서 늘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실할 일이다.
적어도 조선시대 17세기 초반 ‘친명배금정책’을 내세운 인조반정 이래 서인, 노론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이래 근대에 이르도록 우리 선조들의 주류가 중국에 사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조선왕조의 패권적인 사상이자 정치철학으로 자리를 잡고 조선의 국왕도 갈아치우며 중국황제를 하늘 같이 떠받든 게 조선의 위정자들이지 않았던가? 신을 모시듯이 사대하다가 만주족이 명을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세우고 중국의 패자가 되자 그간 오랑캐라고 멸시해온 그들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리를 조아린 게 조선의 사대부들이었다.
물론 곧은 절개와 직언을 마다하지 않은 남인 계열 영남학파에 속한 선비들의 예외는 있다. 또 중국세력이 한반도에서 물러가고 일본이 침략해왔을 때 매국에 앞장선 인물은 당시 가장 학식이 많고 똑똑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이완용, 송병준 등이었다. 이완용은 자기 조카에게 앞으로 미국을 눈여겨보라고 한 바 있는데, 결국 일본 패망 후 한반도로 진주해온 미국에 안보와 국방을 맡기다시피 하고 있는 게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중국지도부는 한국인들의 고질적인 이 약점들을 손바닥 보듯이 훑고 이용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대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를 보면 강자에게 약한 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1992년 8월, 중국과의 수교협상에서 처음부터 중국과의 관계설정을 잘못한 노태우정부의 패착을 지적할 수 있다. 당시 수교협상 과정에서 노태우 정권은 국제법적으로 침략에 해당하는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에 대한 사과 한 마디 받아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북한에 대한 관계와 하나의 중국원칙과의 딜이라는 외교적 ‘밀당’은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한 채 맥없이 중국이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원칙’을 인정하고 말았다. 중국-대만과의 관계와 중국-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한국-대만과의 관계를 외교적으로 잘 활용해 새판을 짰더라면 지금 우리가 겪는 것처럼 이처럼 중국에 대해 ‘을’의 존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여파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평소 한국 국회의원의 중국 관련 발언이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서울의 중국대사관에서 그 발언을 시정해주기를 요구하는 지경이 됐다. 이번 사드 배치 결정 시에도 유사한 모습이 그대로 연출됐다.
중국이 작년 말 한국정부 외교부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외교부 장관은커녕 차관도 아닌 부국장급 외교관으로서 중국 베이징 외교가에서 ‘천스카이(陳世凱, 1882~1894년 주조선 외교관 자격으로 머물며 국정을 농단한 위안스카이에 빗댄 별명)’로 불리는 천하이(陳海)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을 한국에 보내 대기업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여야 중진 정치인을 만나 설득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이는 사실상 반협박이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역으로 유사한 상황에서 우리가 외교부 부국장급 인물을 보내면 중공지도부가 중국외교부의 고위직을 만나게 해줄 것이라고 보는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처럼 한국의 재계와 정치계가 일개 중국외교부의 차관급 인사에게 외교적으로 농락당한 것은 중국의 오만도 오만이지만 그를 만나주는 정치권 인사들이 더 문제다. 과연 이것이 대중국외교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인지, 개인의 공명심의 발로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사대주의 근성에서 나온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외교력과 외교의 중요성이 얼마만큼 큰지 여실히 알게 해주는 사례인데, 참으로 통탄스런 일이다.
여기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정보와 판세읽기의 어리숙함, 북방외교라는 성과만 내려고 한 나머지 외교전을 포기하고 중국의 페이스에 말려든 국가지도자의 단세포적인 시야, 전략의 부재 등등 한국의 정치력, 외교력의 부실문제가 고스란히 내재돼 있다.
중국이 어려워하고 함부로 하지 않는 상대는 미국 같은 강대국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강대국이 아니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한 판 붙겠다는 의지로 결사 항전하는 나라다. 한 동안 중국인들이 언필칭 한국인들에게는 친밀감을 느낀다고 하면서도 무시해온데 반해 일본인들에게는 친밀감을 느끼지는 않아도 무시하지는 않듯이 말이다.
이처럼 중국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거만이라든가, 또 약소국을 대국의 횡포로 제재해도 별수 없을 것이라고 자만했다가 당하거나 꼬리를 내린 실증적인 예를 몽골, 베트남, 대만의 대중국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대응강도가 약하긴 했지만 몇 년 전 희토류 파동 때 보여준 일본의 대응도 참고할만하다.
몽골은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를 여러 번 초청했는데, 그럴 적마다 중국정부는 몽골정부에 대해 경제를 봉쇄하겠다느니 베이징에서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는 국제열차를 중단시키겠다느니 하면서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몽골은 할테면 하라고 하면서 끝까지 달라이 라마의 초청을 강행했다. 나중에 중국은 더 이상 문제시 하지 않고 슬그머니 없던 일로 함에 따라 양국관계가 정상화 된 적이 있다.
이 점은 우리가 종교계나 학계에서 달라이 라마를 한국에 초청하고자 했을 때마다 청와대나 정치권이 자기 검열을 해 결국 초청계획을 무산시킨 것과 대비된다. 필자도 2000년대 초반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기 위해 일본 도쿄 소재 티베트 망명정부의 동아시아 대사까지 만나 성하의 방중을 논의하고 계획을 다 잡아 놓았지만 청와대가 허락하지 않아 무산된 경우를 알고 있다.
베트남은 동남아국가연합의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중국과의 교역이 두 번째로 많은 나라다. 중국은 전면 침략을 가하기 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반중국 패권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베트남 지도부에게 여러 차례 응징을 가할 것이라는 경고를 발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계획대로 1978년 12월 캄보디아를 침공해 친중국 성향의 폴포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베트남 성향의 헹삼린 정권을 세우는 등, 중국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자국 이익을 포기하지 않고 중국에 대항했다.
그러자 1979년 2월 중국은 33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전격적으로 베트남을 공격했지만, 베트남은 민·관·군이 일치단결해 거국적으로 항쟁했다. 그 결과 중국지도부는 2개월도 안 돼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 뒤 1988년 3월에도 베트남은 중국과의 서사군도를 둘러싼 공방에서 해군을 동원한 실력행사까지 서슴지 않았는데, 결국 중국은 대국답지 않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 우리가 중국의 패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이 같은 몽골, 베트남의 예를 보면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의 패악질을 물리칠 수 있는 묘수가 숨어 있다. 이번 사드 사태에서 우리가 맞대응하면 중국도 손실이 결코 적지 않다. 중국에게 한국이 5대 무역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당장 한국의 먹거리 시장을 잠식한 중국농산물과 공산품의 량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대중국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국가의 전략차원에서 실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몽골, 대만,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인도,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5국(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국을 둘러싼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도 펼쳐야 한다. 중앙아시아 5개국은 중국과 긴밀하게 안보협력을 해오는 나라들이어서 상당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성과를 얻기가 힘들 것이다. 특히 대만과 달라이 라마 카드는 파장이 엄청난 것이다.
한 판 승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들과 국가지도자의 결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한중간에 분쟁이 생길 때마다 중국의 보복조치에 손을 들고 꼬리를 내려야만 할 것인가? 또 다시 중국의 입김에 국운이 좌우되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다시금 과거처럼 중국의 영향권 속에 떨어져 천 년 이상을 중국의 눈치를 보고 살아온 사대주의시대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여기에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중국을 겨냥한 제압 혹은 패권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미중의 경쟁, 중일 간의 경쟁 및 신경전, 북핵 및 대북한 문제, 한미동맹을 축으로 하는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이라는 구도까지 종합하는 바탕 위에서 대중국 정책이 설정돼야 하는 고충이 내재돼 있기 때문에 단선적인 접근은 금물이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기에 고도의 지략과 최상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임은 분명하지만, 이번을 기회로 삼아 지금이 역사상 고구려 이후 처음으로 중국이 한민족을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만든 원년으로 기록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
2017. 3. 8 새벽
고향에서
雲靜
위 글은 2017년 5월 16일자『오마이뉴스』에「“한국 징벌하자”는 중국의 오만, 어찌해야 할까?」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고문의 수정 전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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