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자작시

앙코르와트

雲靜, 仰天 2017. 2. 4. 11:42

앙코르와트

 
 
신은 만들어졌다
아득히 먼 오래 전 이곳 캄보디아에도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자가 고안했었지
가루다 치솟고 아수라 널브러진 砂岩의 향연은
백성의 무지와 왕의 탐욕이 빚은 환영일 뿐
 
신전은 쥐 죽은 듯 비어 있고
불볕에 말라버린 신의 존재감이
인간들에게 垓子를 넘게 할 때
200만 원혼의 中陰神들은 구천을 떠돈다
신들도 학살된 킬·링·필·드
 
신의 도시라는 앙코르와트에는
신은 없고 신을 만든 자만 누워 있다
신의 나라 캄보디아에는
또 다시 신이 창조되고 있다
신들이 서로가 서로를 할퀴어대고 있다.
 
2017. 1. 24
앙코르와트에서
雲靜
 
 

이곳의 신전들은 크기가 평균적으로 위 사진의 신전 보다 훨씬 더 크다 .
수 년 전에 가본 인도의 산치 대탑의 영향을 조금 받은 것 같아 보여도, 전체적으로는 인도와도 다르고, 중국이나 한국의 양식과는 더 많이 다른 대단히 특이한 Stupa! 탑신에 마애불 혹은 금강불의 상호를 연상시키는 불보살상의 상호를 릴리프로 4면에다 새겨놨다. 石柱와 基壇, 相好에 기생하는 이끼에서 천 년이 넘는 시간의 두께가 느껴진다.
석주 위의 난간에 새겨진 보리수 잎사귀들의 정교함이 대단히 돋보인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그것들과도 비견된다!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선 허물어진다. 온전하게 영원히 존재하게 만드는 Atman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부처가 깨달은 것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현대 과학이 증명한 진리다. 다만, 오랜 내전으로 나라의 곳간이 비어 있어 관리 없이 방치해놓다가 이제야 조금씩 손을 보기 시작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족상으로는 세계 최대일 것이다. 전체적인 형상을 볼 때 臥佛이었던 것 같다. 두상과 몸체는 사라지고 없는데, 어디서, 무엇으로 환생했을까?
킬링필드의 참혹함이란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분명하게 당시의 참상을 웅변해주는 해골들! 그들의 한이 영육에서 벗어났을까? 킬링필드를 포함한 캄보디아 현대 공산혁명사를 이해하고 싶다면 필자의 졸저 『중국의 국경전쟁 (1949~1979)』(서울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3년)가 유용할 것이다.
아침 공양 후 담배 한 가치 입에 문 스님! 원래 고대 석가 재세시의 초기 인도불교에서는 계율로 출가자들에게 담배와 육식을 하지 못하도록 금한 사실이 없다. 석가모니께서도 공양을 나가 얻은 상한 돼지고기 음식을 먹고 그게 화근이 돼 돌아가셨지 않는가? 담배는 그 당시엔 인도에 있지도 않아서 당연한 것이었지만!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의 이른바 소승불교(Hinayana) 권에서는 오늘날도 이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으니 대승불교(Mahayana)적 시각으로만 보고 무턱대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무릇 개안이 된 여행자라면 문화에 높낮이가 없고, 저급도 고급도 없다고 가르치는 문화인류학의 상대성 이론은 세계 어디서나 견지돼야 할 자세다.
칠흑 속 같았던 공산주의의 긴 터널을 지나 이제 이곳에도 자본주의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지난 세기, 인간의 삶은 늘 목구멍이 고상한 듯한 이념 보다 몇 백번이나 우선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보려던 Utopia는 수많은 인명만 살상시킨 실험으로 끝났다 . 그 자리를 쩐의 맛을 본 또 다른 신들로 메워지면서 서로가 서로를 할퀴고 있다!
아니 앙코르와트에도 바다가? 순간적으로 그렇게 착각시키는 작지 않은 호수 앞에서 無想, 無念의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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