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vs 이세돌 대국에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다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민족 마다 집단적 우성이 존재하는 분야가 있는가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서양성악을 좀처럼 이길 수 없듯이 서양인들은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도 동양인의 바둑을 이기기 힘듭니다. 그저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하는 가운데 끝났습니다. 알파고는 세계 최고 고수의 반열에 있는 이세돌을 5전 4승으로 이겼습니다.
바둑경기 외적인 문제는 제쳐놓고, 바둑의 정신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세돌 9단은 프로기사의 정신성과 인간됨을 전세계에 알렸으니 결코 진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인간사를 매사 승패로만 따지면 안 되니까요.
확실히 이번 대국을 보노라니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맞대결이라는 세기의 이벤트에 바둑을 좋아하는 바둑 애호인으로서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둑경기만은 아니었습니다. 대국을 잠시 지켜보는 동안 인류의 미래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미래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그들의 역할은 인간의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파고들지, 또 누가, 어떻게 그들을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가와 같은 윤리문제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 같은 것이 뇌리를 스쳐지나 갔습니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연구에 끝없이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내려는 사명감에 빠져 있어 멈출 줄 모르는 자기증폭, 폭주기관차 같은 성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고 맹신하는 자기 확신이 강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 원자핵물리학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그랬었죠. 오늘날도 인공지능 과학기술자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가보려는 욕구가 넘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미지의 세계로 남겨둬야 합니다. 인간은 알면 알수록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되듯이 모르는 곳, 미지의 세계가 신비롭게 존재함에 따라 인간들에게 새로운 도전에의 동기, 열정, 힘, 상상 같은 정신력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아닌가요? 인류의 정신문화와 문명은 죄다 그로부터 배태돼 나왔죠. 역사, 문학, 신화, 철학, 예술, 종교, 인류학, 고고학, 민속학, 언어학 등 모든 인문학의 서사와 담론은 근원적으로 그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모든 종교의 지향은 유한성과 미지성이 결합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 종교는 없고, 미지의 세계를 신의 영역으로 등치시키는 구조여서 그곳을 존재의 본령으로 하고 있죠. 그런데 그 영역이 깨어지면 판도라가 열리는 셈이니 일부 과학자들이 인공지능개발을 우려하는 게 단순한 기우는 아닐 것입니다.
과학계에서도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천체물리학자로 세기적 천재로 알려진 스티브 호킹 박사는 이미 오래 전에 “현재까지 개발된 인공지능 기술들은 상당히 유용했지만 앞으로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개발 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 수 없다”며 “향후 100년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것”이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조작하고 인간이 알지도 못하는 무기를 이용해 인간을 정복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와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도 인공지능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인공지능 무기 발전이 화학 핵무기에 이은 제3의 전쟁혁명이 될 수 있다”며, “인공지능 기술의 군사 목적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을 마련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죠.
앞으로 인공지능이 민주국가에서는 주권자들의 삶과 행복에 어느 정도는 기여할 영역이 있을 것이고, 비민주 독재국가에서는 독재자들이 독재권력, 악덕 재벌과 정보기관의 권력 강화와 군사력증강에 이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이어서 그야말로 로봇처럼 광범위하게 쓰임새가 훨씬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그래서 이번 대결로 IT산업을 권력 강화에 어떻게 해보고자 시도할지도 모릅니다. 평소엔 국제경쟁력이 민주정부에서 3위까지 올라갔다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집권 8년 동안 20위 밑으로 추락했을 정도 무관심하다가 호재를 발견한듯이 무릎을 칠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가 절차 면에서나 의식면에서나 확고하게 정착이 되지 않으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문제는 인공지능을 어디까지 개발할 것이며, 인간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도 알파고에게 지금까지 인간이 경험한 한정된 바둑대국 정보를 입력했는데도 저 정도가 됐는데, 향후에는 인간의 감정까지 집어넣기 위해 알고리즘을 발전시키겠다니 감정을 지닌 로봇이 나올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공상소설과 SF영화에서나 본,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기계는 인간의 감정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제 그 믿음이 깨지는 날이면 인류의 문화와 문명은 기계에게 잠식당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알파고를 개발하거나 인공지능의 유용성을 긍정하는 과학자나 기술자, 미래학자들은 전혀 염려할 게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부의 우려를 일축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개발과 진화를 더 부추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인공지능 개발 긍정론자들은 인간의 행복증진을 위해 개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상업적 동기와 목적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미래학자이자 구글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임원인 레이 커즈와일도 인공지능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공지능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니라 인류가 만든 산물”이며 “삶을 더 풍족하게 해줄 도구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찬성론자들의 말도 한편으로는 수긍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각종 헬스케어에 이용할 수도 있고, 지진, 해일시의 재난구조와 산업용, 극지나 심해의 탐사나 우주개발 같은 과학에도 활용할 수 있어 인류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시킬 수도 있죠. 또한 군사적 용도로도 쓸 수 있겠죠. 이미 10여 년 전부터 간단한 임무 정도는 수행이 가능한 인공지능이 탑재된 무기체계가 전장에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여러 업체에서 개발 중에 있습니다. 군사용도로 쓰는 것은 제한이 있어야 하고 사용에도 정말, 정말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보다 더 나은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여전히 진화의 정도, 인간과의 관계, 인간의 영역 축소, 인간의 상상력 고갈, 인공지능의 관리문제, 윤리와 법률문제 등 이익 보다는 해악이 훨씬 더 컬 것입니다. 게다가 인공지능을 탑재한 각종 기기들은 인간의 일자리를 더욱 줄어들게 만들겠지요. 마치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 후 동력화된 기계의 출현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실직해 거리로 나앉았듯이 말입니다. 무엇 보다 가장 큰 해악은 인간의 신비로움이 대폭 축소돼 인간다움, 즉 후마니타스가 상실되고 기억기능의 퇴화는 물론, 상상기능이 엄청나게 오그라들 것이라는 점입니다.
雲靜은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지능의 수준에서 더 이상 진화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기존에 개발된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이 문제보다는 도처에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고도 헤어날 수 없이 기계처럼 살고 있는 ‘기계적 인간’들의 삶을 인간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사회적 치유에 주의를 환기하고 국가적 역량을 쏟을 때입니다. 이제는 인공지능 개발문제를 기업이나 한 국가의 과학기술 문제가 아니라 범인류의 문제로 보는 인식이 확산돼 유엔에서 나서든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지구적 차원의 관련 법률제정이 시급합니다.
인공지능 찬성론자들은 반대가 있다고 해서 만들지 않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새로운 산업으로 포장하면 상업적 이익창출로 떼돈을 벌수 있다는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10년 안팎으로는 인공지능이 장착돼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도 나오겠지만, 터미네이터 비슷한 인공지능 살인기계도 반드시 나올 것 같습니다.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계들이 더욱 인간에 가까워질 정도로 발전된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행복해질까요?
2016. 3. 17 아침
출근길 전철안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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