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의 생일 파티는 대한민국 신친일파 생성의 요람인가?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주한 일본대사관에서는 일왕의 생일을 경축하는 연회에 초대하는 초청장을 각계 각층의 주요 인사들에게 보냅니다. 매년 雲靜에게도 빠짐없이 보내옵니다. 물론 雲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진 않았습니다만, 올해도 일왕의 생일축하 파티가 지난 12월 3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 최고급 호텔에서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일왕의 생신을 축하하는 행사를 자국도 아니고 외국, 그것도 대일 감정이 좋지 않은 한국 땅에서 연다는 건 분명 아무런 정치적 목적 없이 순수한 사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본의 국가전략 및 외교정책과 군사정책에 찬성해줄 협력자, 즉 친일세력을 부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행해지고 있는 행사인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일왕은 일본의 국가 최고 원수입니다. 그는 통치행위는 하지 않고 단지 일본을 상징하는 그야말로 '상징적 존재'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와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천황의 직무는 국사행위를 행하는 것으로 한정"되고(일본국헌법 제7조),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제3) "국정에 관한 권능을 전혀 자기지 않는다"(제4조)고 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선 일왕은 일본국의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 알려진 총리대신과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뿐만 아니라 외국 외교사절의 아그레망(Agrément, 프랑스어로 ‘동의’라는 뜻임)을 접수하고 그들에게 신임장(Letter of credence)을 수여합니다. 즉 정치적, 외교적으로 일본국을 대표한다는 소리입니다.
총리대신이나 외국 외교사절들이 일왕의 이러한 동의 없이는 정상적으로 임명되거나 부임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국가원수의 역할이 맡겨져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밖에도 일왕의 여러 가지 권한들이 일본국 헌법에 명기돼 있습니다. 실제로도 일왕은 총리대신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대국민 영향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나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각기 국가 원수인 오바마 대통령이나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생신을 경축하는 행사를 연다고 사람들을 초대하진 않습니다. 영국, 네덜란드 등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들도 서울에서 자국 국왕의 생신을 축하하는 행사를 벌이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국민의 반일 정서에도 개의치 않고 보란 듯이 버젓이 매년 파티를 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여는 일왕의 생일 파티가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서 히틀러 생일을 축하하는 생일파티를 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는 아베와 같은 국가 지도자들이 나서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과의 친선과 우호를 강조하면서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하지만 속으로는 일본우익은 물론, 정치권과 정부도 그만큼 우리를 몰랑하게 보고 있다는 증좌에 다름 아닙니다.
반일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공공외교의 전개라는 미명 하에 일본의 힘을 교묘히 침투시키고 그에 대한 조력자들을 부식시키려는 게 그들의 전략입니다. 말이 좋아 조력자이지 그들은 새로운 친일파, 즉 신친일파나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일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국에서 이런 파티를 여는지 한 번쯤 진중하게 생각도 해보지 않고 무신경 하게 응하는 국내 지도층 인사들입니다. 정치인, 고위 관료, 언론인, 외교관, 경제인, 문화인, 군의 고위 장교들 가운데는 매년 꼬박꼬박 참석하는 얼빠진 작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면면들을 보면 친일파 후손들도 다수 보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일본의 의도를 알고도 참여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곳에 초대 받아 가면 무슨 말을 주고받게 될까요? 축하연회에서 일본인들에게 덕담을 건네지 과거사 왜곡에 대한 반성 혹은 시정을 촉구하거나 독도나 ‘일본군 성피해 여성’ 문제를 거론하겠습니까? ‘일왕 만세’를 외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을까요? 당연한 이치지만 그런 곳에서 비싼 밥 한 끼 대접 받고 오면 자신도 모르게, 혹은 심지어는 알면서도 능글맞게 일본에 유리한 발언들을 하는 학자,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왕왕 눈에 띱니다.
다른 일로는 일본의 학자, 외교관, 언론인, 문화인들이나 경제인, 종교인들을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양국 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날 필요가 절실하고, 그것을 장려하고 기존 교류를 지속, 확대 발전시킬 일입니다. 그래서 양국의 각계 각층이 참여하는 건전하고 정의로운 시민사회가 함께 부정한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힘과 가교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봐도 일왕의 생일잔치에 가는 것만큼은 온당치 못한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친일'이 따로 있습니까? '친일파'는 날 때부터 타고난 것일까요? 그것은 생득적인 게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공간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후천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닌가요? 오늘날은 과거처럼 직접적인 침략에 부응하고 협력하는 형태의 친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노골적인 수단은 지양하고 꼴을 달리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을 뿐입니다. 현대 국제관계가 그런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정부가 국외의 친일인사들을 길러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국가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매년 베푸는 이러한 연회에 참석해 그들과 함께 일본적 정서의 공유에 희희낙락하거나 일본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으면 침묵하는 등 그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이러한 언동이 현대판 친일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구한말의 노골적인 친일파 무리들처럼 일본이 또 다시 한반도를 집어 삼키기 위해 외교적 술수를 부리고 농간을 부리면 그들에게 협조할 사람은 이런 류의 인간들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보장하겠습니까?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덧붙여 사족을 한 마디 더 달면, 지금 국내에는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친미, 친중, 친일, 친러 세력이 각기 형성돼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실로 구한말의 상황을 연상하게 됩니다. 학자, 정치인, 언론인 등의 지식인들 가운데는 국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대사관과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제각기 동기와 목적이 다를 순 있어도 결국엔 그들은 계획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국제화, 다변화, 자유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친미, 친중, 친일, 친러가 최종 목적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상대국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고 힘을 실어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대착오적인 북한의 3대 세습과 악명 높은 인권유린에는 눈을 감은 채 북한의 정치체제를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추종하는 ‘북한 절대 추종세력’(기존 한국의 수구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정부의 실정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하는 이들에게 덮어 씌우는 이른바 '종북파'나 ‘친북파’와 성격이 다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릇 지식인이라면 자신이 어디서 어떤 공부를 했든간에 궁극적으로 그 공부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거나 도모하는데 쓰여야 할 것입니다. 국익을 위해 친미가 아니라 用美, 친중이 아니라 用中, 친일이 아니라 用日, 친러가 아니라 用러, ‘북한절대 추종’이 아니라 用北과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합니다.
雲靜은 어느 파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안으로 망국을 예감케 하는, 탐욕에 찌든 泥田鬪狗를 벌이는 당쟁과 정쟁이 그칠 날이 없고, 밖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국들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합종연횡하거나 군비를 강화시키고 있는 엄혹한 국제정세에 직면해 진정 홀로 외로이 대한민국의 생존과 국익을 우선시 하고 고뇌하는 ‘생존우선파’, ‘국익우선파’에 속해 있을 뿐입니다.
2015. 12. 8. 05:08
雲靜
'앎의 공유 > 아시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읽기 3 : 비관론과 경계론 그리고 ‘중국문제’의 해소방향 (0) | 2016.04.26 |
---|---|
중국읽기 2 : 중국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선 (0) | 2016.04.22 |
중국 읽기 1 : 지속과 변용, 모노크롬과 시네마스코프 세계의 혼재 (0) | 2015.07.18 |
‘현영철 총살’ 동영상을 계기로 본 북한과 중국의 형벌 (0) | 2015.06.23 |
왜 ‘일본해’가 아니고 ‘동해’여야 하는가? (0) | 2012.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