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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함'과 ‘생각의 힘’이 왜 중요할까?

雲靜, 仰天 2015. 6. 9. 17:55

‘생각함'과 '생각의 힘’이 왜 중요할까?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개인의 영역에서나 사회적 영역에서나 '생각함'이 왜 중요한지, ‘생각하는 힘’이 무엇인지 또 생각의 효용들 그리고 생각하지 않거나(생각하지 않은 듯 착각할 뿐 사실은 다 생각함) 사물이나 사안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잘못 생각함으로써 생겨나는 과오들을 기회가 될 때 마다 소개하려고 합니다.
 
취지와 동기는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일도양단의 위험성, 흑백논리, 근거 박약한 ‘유언비어’의 근원들을 해소시키며, 나아가 정치적 측면에서는 불필요한 소모적인 정쟁과 패거리 정치, 고질적인 진영논리를 배격하고 이성의 힘을 회복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례에 접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생각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생각은 모든 현상과 결과들의 일차적인 원인입니다. 이 세상과 우주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으로 접하거나 경험 혹은 행위하고, 생각 혹은 의식(六識)하는 일체(六處와 六境)는 생각의 결과입니다. 특히 행위는 그 생각의 연장인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엉겁결, 얼떨결, 혹은 부지불식간에 한 것처럼 보이는 행위조차도 모두 생각의 결과가 아닌 게 없습니다.
 
뇌의 어느 한 부위(현대 과학에선 생각과 마음이 어느 부위에서 작동하는지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고 단지 뇌의 전두엽에서 작동되고 있다는 정도로 추정하고 있음)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속도가 전광석화처럼 너무 빨라 감각적으로 미처 인식하거나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생각은 그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에 해당되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집니다. 현대 과학자들은 인간이 하루에 생각하는 것이 6천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 많은 생각들을 어떻게 통어할까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다른 말로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心을 觀한다고 해서 불교나 명상가, 신비주의자들, 서양의 심리학 등에서 마음을 바로 보려고 하는 ‘관심’과 마음 다스리는 것을 대단히 중시합니다.
 
특히 불교에서 마음의 통제는 깨달음의 첩경입니다. 그것은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며, 알파요 오메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와 유교도 생각과 마음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중요시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접근하는 방법이나 수단에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일상 속에 거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혹은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스스로 객관화 시켜 동영상을 보듯이 바라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개개인들의 마음과 생각들이 집적이 되면 그게 시민의식이 될 수 있으며, 사회 전체로서 국가의 마음과 생각으로 나타나거나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는 정치지도자가 생각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나중에 이 관계성과 그 상호작용에 관해 좀 더 자세하고 실증적인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과 마음은 무엇이 다를까요? 둘은 하나인 거 같아도 둘이며, 둘인 거 같아도 하나인 형태로 존재합니다. 한 겨울 추위 속의 길거리 노숙자를 보고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을 비유로 들어 봅시다. 노숙자들을 보고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들이 인식의 대상에 들어오지 않는 무반응, 그들에 대한 동정과 혐오라는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무반응도 마음과 생각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추위에 떠는 노숙자들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떠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지저분한 장면을 봤다는 식으로 언짢은 기분이 든다면 그것은 마음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두고 ‘인생의 패배자들!’이라거나 ‘에이 재수 없어!’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생각의 작용입니다. 
 

 
마찬가지로 ‘불쌍하다’, ‘안 됐다’, ‘춥겠어!’라고 느끼는 것도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저 사람들은 어떤 사연으로 저런 처지가 됐을까?’, ‘정부가 대책을 세워 줘야 할건데...’라는 의식이 들고, 이어서 동전을 적선하거나 돈을 얼마를 주는 게 좋을까 하며 판단하는 행위는 생각의 작용입니다. 어이 없는 각종 사건 사고로 두 눈 버젓이 뜨고 생때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영원히 자식을 잊지 못하는 건 생각과 마음이 한 곳에 같이 있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생각의 작용은 마치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질 찰나에 그 아이를 구하려거나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는 걸 보고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선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 맹자의 성선설과 그 반대의 주장을 편 순자의 성악설이 나온 배경입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모두 현대과학이 다다른 연구성과에 비춰보면 최종적, 단정적인 진실은 아닙니다.『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슨은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과거 태어나기 전부터 조상들로부터 받은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의 결과라고 봅니다. 이는 현재의 모든 행위는 과거 집적된 행위인 業(Karma)의 결과로 보는 불교적 해석과 갈래가 닿는 해석입니다. 
 
위 언급을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건 한 마디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잘 통어하는 것이 곧 자신이 생각의 주인이 되는 삶이 되도록 할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지름길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실증적으로 더 자세히 거론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오늘은 목하 나라 전체가 메르스로 극심한 혼란과 불안에 휩싸여 있는데,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게 무엇인지 자신이 정치지도자의 입장이 돼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자신이라면 초기에 어떻게 대응했을까를 생각해보시길 권해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사태의 본질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 뒤에라야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훈련된 눈이 없이 남이 전하는 소위 ‘카더라 방송’이나 언론매체들이 전하는 정보들과 평가에만 의존하다간 자칫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잘못해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각종 다툼 그리고 생각함의 잘못으로 인한 사안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는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 그리고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을 쓰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하고, 또 생각을 하되 본질적, 근본적으로 하면서 살아야 할 소이연이 여기에 있습니다.
 
메르스가 위험하다고 해서 우왕좌왕 하지 말고 차분히 여느 때의 일상처럼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건 본질을 도외시한 보도를 일삼는 부박한 언론들에, 무엇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 이해득실로만 대응하는 세력들의 간교한 마음과 생각에 중심 없이 휩쓸리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렇게 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생각과 마음에 중심이 잡혀 있으면 메르스 보다 더 전파성이 강한 바이러스일지라도 몸을 뚫고 들어오지 못합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하루를 건강하게 보내는 것도 복이자 능력입니다!
 
2015. 6. 8. 11:00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