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에는 깡통, 오른손에는 도끼를 든 ‘주체의 나라’
서상문(화가 · 시인 · 역사학자)
북한만큼 ‘주체’를 많이 외쳐온 나라도 드물다. 북한의 정치사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주체’, ‘자력갱생’, ‘자립적 민족경제’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접하게 된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북한이 내세워온 국가적 자존심이자 체제의 정당성이었다.
북한은 그것을 단순한 정치구호에 그치지 않고 마치 왕조시대의 연호처럼 시간의 기준에까지 새겨 넣었다.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삼는 이른바 ‘주체연호’를 만들어 1997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2024년을 ‘주체 113년’이라고 표기했으니 현대국가라기보다 옛 왕조가 군주를 중심으로 연호를 정하던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다만 북한은 2024년 10월부터 로동신문과 공식 담화 등에서 주체연호를 사실상 사용하지 않고 서기만 표기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27년 동안 국가의 시간 자체를 김일성의 출생에서 시작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은 북한에서 ‘주체’라는 말이 얼마나 강력한 정치적 상징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북한 현대사를 실제 사실에 비추어 들여다보면 기묘한 역설과 마주치게 된다. 말은 주체였지만 국가의 중요한 고비마다 북한을 일으켜 세우고 살려낸 것은 외부의 돈과 무기, 식량과 석유, 기술과 군대였다.
북한에서 17년 동안 살면서 사업도 하고 김일성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공부도 했지만, 스파이 혐의로 북한 당국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재미 교포 김동철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흥미로운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서 인민무력부 소속 상장급 장성에서부터 말단 기업소 직원과 노동당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 번 무엇인가를 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김 목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한 사람들과는 “스치면 스칠수록 더 많은 것들을 내어주어야만 한다.” 무엇인가를 건네주면 건네줄수록, 가까이하면 가까이할수록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모습을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반복해서 보았다고 했다.
김동철 목사는 이러한 현상을 한마디로 ‘거지현상’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 표현을 북한 주민 전체의 천성이나 민족적 성격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굶주린 주민이 먹을 것을 구하는 행위와 국가권력이 외부지원을 장기적인 생존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이라는 체제가 오랜 세월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내는 것을 하나의 국가운영 방식으로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역사는 정권 출발부터 나타난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한 뒤 김일성 정권의 형성과 군사력 건설에는 소련의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련은 북한군에 T-34 전차를 비롯한 야포·항공기와 각종 군사장비를 공급하고 군사고문을 파견해 훈련시켰다. 1950년 6·25전쟁을 앞두고도 소련은 북한군의 전쟁수행 능력을 집중적으로 강화시켰다. 김일성이 남침을 결심했다고 해서 그의 의지만으로 전면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탈린의 승인과 소련의 무기·군사 지원이 없었다면 전쟁 개시는 사실상 어려웠다.
더욱 극적인 것은 전쟁 중이었다. 1950년 10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이 붕괴하고 한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방향으로 진격하자 김일성 정권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이때 중국이 대규모 중국인민지원군을 투입했다. 중공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북한 정권이 그대로 존속할 수 있었을지는 극히 의문이다. 당시 상황을 면밀히 연구한 나로서는 회의적이다.
말하자면 북한은 건국 직후부터 ‘주체’의 힘만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소련의 무기와 중국인의 피에 힘입어 살아남은 셈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은 전후 폐허에서 ‘천리마운동’과 ‘자력갱생’으로 나라를 재건했다고 강조해왔다. 북한 주민들이 엄청난 노동을 투입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후복구의 물적 토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50년대 북한의 전후복구에는 소련·중국·동독·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대규모 원조가 투입됐다. 공장을 지어주고 발전시설을 복구했으며 기계와 차량, 원료와 곡물도 보내주었다.
그런데 북한의 공식 역사에서는 이러한 외부지원은 뒤로 감춰지고 ‘위대한 수령의 영도’와 ‘조선 인민의 자력갱생’만 전면에 등장했다. 남의 벽돌과 시멘트로 집을 지어놓고 자신이 맨손으로 지었다고 자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냉전기에도 북한경제의 배후에는 소련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후견국이 있었다. 북한은 중·소 분쟁이 격화되자 두 나라 사이를 오가면서 경제원조와 차관, 군사원조와 유리한 무역조건을 끌어냈다. 북한은 이를 ‘자주외교’라고 선전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두 강대국의 경쟁을 이용해 가능한 한 많은 지원을 얻어낸 외교이기도 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하고 사회주의권의 우대무역 구조가 무너지자 이 체제의 약점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에너지와 원료의 공급이 급격히 어려워지고 산업생산이 추락했다. 여기에 자연재해, 농업생산성 저하, 배급체계 붕괴와 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된 ‘고난의 행군’으로 이어졌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북한이 선택한 방법 역시 순수한 자력갱생은 아니었다. 1995년 북한은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도 인도적 지원에 나섰고, 김대중 정권 이후에는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식량과 비료 등의 지원이 크게 확대됐다. 바로 여기에서 북한이 입만 열면 외쳐온 ‘주체’, ‘자주’, ‘자력갱생’의 허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주체가 좋고 자립이 중요하며 자존심이 강하다면 남의 돈을 받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특히 자신들이 끊임없이 조롱하고 무시해온 대한민국이 보내는 달러와 쌀과 비료라면 더더욱 받지 않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주체’와 ‘자존’에 맞는 행동 아닌가?
북한은 대한민국을 오랫동안 ‘남조선 괴뢰’라고 불러왔다. 남한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서도 정상적인 국가관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2019년에는 “어당팔(어리숙하게 보여도 당수 팔단)”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평화경제’ 구상을 비난하면서 공식 담화에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저속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그 정도로 상대를 깔보고 조롱한다면 최소한 그 상대가 주는 돈과 쌀 정도는 거절할 자존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글쎄 내 성격을 빗대어서 말하는지 몰라도 내가 “수령” 같으면 그렇게 받을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고 그들은 그게 아니었다. ‘괴뢰’라고 부르는 남한의 쌀은 다 받아 먹었다. 남한 정부를 조롱하면서 남한이 보내는 비료도 받았다. 미국을 ‘제국주의 원흉’이라고 욕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가 제공하는 식량과 의약품도 받아들였다.

북한이 마음대로 조롱하고 무시하는 남한의 달러와 쌀을 받아먹었다면 그들이 그토록 떠들어온 자존심은 결국 허구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이것을 단순한 외교적 모순 정도로만 보고 싶지 않다. 도움을 준 상대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모욕을 퍼붓고, 뒤에서는 그 상대가 제공하는 돈과 물자를 받아가는 행태라면 그것은 북한 지도층의 정치적 위선일 뿐만 아니라 인성마저 정말 더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무슨 신뢰가 생기겠는가?
먹고살기 위해 식량을 구하는 북한 주민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민들은 오히려 잘못된 체제와 정책의 피해자다. 내가 지적하는 대상은 주민을 굶겨놓고도 핵과 미사일에는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으면서, 주민을 먹여 살릴 돈과 식량은 자신들이 욕하는 외부세계에 요구해온 김일성 3대 세습의 북한 “수령”과 그 권력층이다.




자존심이란 입으로 외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능력을 갖추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도움을 준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을 지키는 것이 자존이다. 받을 것은 다 받아놓고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 무슨 자주이고, 무슨 주체인가?
여기에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을 ‘미 제국주의’라고 욕하고 모든 고난의 원흉처럼 비난해왔다. 그런데 정작 북한이 줄곧 원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가? 바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수교다. 체제안전 보장과 제재 해제, 국제적 고립 탈피를 위해 북한은 필요할 때마다 미국과의 정상회담과 관계 개선을 추구해왔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증오하고 타도해야 할 ‘미제국주의’라면 왜 그 미국과 수교하려 하는가?
이러한 모습은 북한에서 처음 나타난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 이후 소련식 공산주의 혁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레닌의 볼셰비키 정권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1917년 10월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레닌과 볼셰비키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막상 국가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이른바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외교관계가 필요했다. 혁명정부라고 해서 국제사회의 승인 없이 홀로 살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 정부는 서방 국가들과 접촉했고 외교적 승인과 경제관계를 확보하려 했다. 실제로 혁명 직후에도 미국 등 서방과 볼셰비키 당국 사이에는 비공식 접촉이 계속됐다. 그러나 서방은 볼셰비키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다.
특히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전쟁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볼셰비키 정부는 1918년 3월 3일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막대한 영토를 포기하는 대가로 전쟁에서 이탈했다.
이 조약은 서방 연합국의 분노와 불신을 크게 키웠다. 영국·프랑스·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가 전선에서 빠져나감으로써 독일은 동부전선의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이 러시아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원인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독일의 영향력 확대 저지, 러시아에 쌓아둔 연합국 군수물자 보호,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문제와 반볼셰비키 세력 지원 등 여러 목적이 뒤얽혀 있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 『혁명러시아와 중국공산당1917~1923』백산서당, 2008년 제2판을 참조할 것)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볼셰비키가 한편으로는 서방을 ‘제국주의’라고 공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서방으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얻고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기를 원했다는 사실이다.
중국공산당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49년 중국 대륙의 승기를 거의 굳힌 마오쩌뚱(毛澤東)과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미국과의 관계 가능성을 처음부터 완전히 닫아놓지 않았다. 쪼우언라이(周恩來) 등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당시 수도 난징(南京)에 남아 있던 미국 외교관들과의 접촉 가능성을 탐색했고, 미국도 중국공산당 정권을 승인할 것인지 검토하고 있었다. 신 중국으로서도 외국과의 외교관계와 무역이 필요했다.
다만 마오쩌뚱은 이미 1949년 6월 30일 「인민민주독재론」에서 이른바 ‘일변도(一邊倒)’, 즉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에 서겠다는 노선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따라서 미국이 마오의 수교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때 비로소 소련 쪽으로 돌아섰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다만 미국과의 관계 가능성이 현실화되지 않는 가운데 중국의 소련 편향이 확정되고 강화된 것은 분명하다.
그 뒤 중국공산당은 미국을 ‘미 제국주의’라고 맹렬히 비난했고, 6·25전쟁에서는 미국과 직접 전쟁까지 치렀다. 그러나 국제정세가 바뀌자 다시 미국과 손을 잡았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뻬이징(北京)을 방문했고, 마오쩌뚱은 얼마 전까지 ‘제국주의 원흉’이라고 비난하던 미국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 그 뒤 미·중 화해가 진행됐고, 마침내 1979년 미국과 중국은 정식 국교를 수립했다. 어제는 ‘미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던 상대가 오늘은 악수해야 할 외교 상대가 된 것이다.
레닌, 마오쩌둥, 북한 세습 3부자의 행로에는 이렇게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레닌의 볼셰비키는 서방 제국주의를 타도하자면서도 그 서방의 승인을 필요로 했다. 마오쩌뚱의 중국공산당도 미국 제국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했지만 미국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탐색했고, 훗날 미국과 화해의 길로 나아갔다. 북한 역시 미국을 수십 년간 ‘미 제국주의’라고 욕하면서 정작 체제안전과 제재 해제, 국제적 출구를 얻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해왔다.
여기에는 북한 지도부가 미국과 남한을 끊임없이 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외부의 적이 강하게 부각될수록 주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외부로 돌리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남한을 계속 비난하고 적대감을 고취하면 주민들에게 “우리가 가난하고 어려운 것은 체제의 잘못이 아니라 미국과 남한의 적대정책 때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외부의 적이 강해질수록 주민들에게는 내부 단결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 요구된다.


말하자면 외부의 적은 북한 수령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자원이기도 했다. 미국과 남한을 욕하면 욕할수록 적대감과 위기의식이 커지고, 그 위기의식이 주민을 체제 주위로 결집시키며, 그만큼 수령체제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도 강화되는 구조다.
그래서 북한 지도부에게 미국과 남한은 기묘한 존재다. 밖으로는 반드시 타도해야 할 원수여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없어져서는 안 될 적이기도 하다. 동시에 필요할 때는 식량과 경제지원, 제재 해제와 외교적 승인을 얻어내야 할 협상 상대이기도 하다.
물론 국가가 현실적 필요에 따라 적대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 자체는 비난할 일이 아니다. 외교란 원래 적과도 대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에게는 상대방을 절대악이라고 끊임없이 교육하면서, 정권 자신은 필요해지는 순간 언제든 그 절대악과 협상하고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이중성이다.
그리고 이 이중성은 단순한 외교적 유연성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적 이념을 앞세워 국가권력을 장악한 뒤, 정작 그 이념보다 정권의 유지와 지도층의 이해를 우선하면서 인민에게는 희생과 충성을 강요해온 권력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민에게는 제국주의와 싸우라고 가르치고, 굶주림과 궁핍도 혁명을 위해 견디라고 요구하면서 정권 자신은 필요하면 바로 그 ‘제국주의 국가’와 협상하고 원조와 승인, 무역과 외교관계를 얻으려 했다.
그렇다면 인민에게 주입한 그 숭고한 이념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절대적인 진리라기보다 권력을 유지하고 인민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것은 아니었는가?
이런 의미에서 레닌에서 마오쩌뚱, 그리고 북한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나타난 이념과 현실의 괴리는 단순한 정책 변경으로만 보기 어렵다. 숭고한 이상을 앞세워 인민에게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지도층 자신은 필요에 따라 그 원칙을 뒤집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민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기만한 권력의 이중성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어제는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고 오늘은 그 제국주의 국가의 승인을 요구한다. 어제는 미국을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가르치고 오늘은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어제는 남한을 ‘괴뢰’라고 조롱하고 오늘은 그 남한에서 보내온 쌀과 돈과 비료를 받는다. 말보다 목적이 앞서고, 원칙보다 정권의 생존이 앞섰던 것이다.
핵개발에서도 외부의 도움은 존재했다. 1960년대 소련은 북한 영변에 IRT-2000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하고 원자력 인력을 교육했다. 이것이 곧바로 북한 핵무기 개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 핵과학의 초기 기반 형성에 소련의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은 이후 독자적으로 흑연감속로와 재처리 기술을 발전시켰고, 1990년대에는 파키스탄의 A. Q. 칸 네트워크 등을 통해 우라늄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관련 기술과 부품을 확보하는 길도 이용했다.
이처럼 북한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커다란 모순이 있다. 북한식 자력갱생은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자력갱생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받아낼 것은 최대한 받아내면서 내부에서는 그 사실을 축소하고, 모든 성과를 수령과 체제의 공적으로 돌리는 기묘한 자력갱생이었다. 이 위선과 가식에 쩐 자들을 뭐라고 해야 좋을까? 이를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면 북한 정권은 오랫동안 ‘왼손에는 깡통을 들고 오른손에는 도끼를 든 국가’처럼 행동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왼손으로는 식량을 달라, 비료를 달라, 경제제재를 풀어달라며 손을 내민다. 국제사회가 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해 지원하면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오른손으로는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군사적 위협을 계속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면 외부의 제재와 적대정책을 탓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는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다. 자신에게 쌀과 비료를 보내주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서조차 조롱과 모욕을 서슴치 않는다.
이것이 과연 북한이 말해온 ‘주체’인가? 진정한 자주는 남의 도움을 무조건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오늘날 어느 나라도 완전한 경제적 자급자족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국가 간 무역이나 어려움에 빠진 국가에 대한 인도적 지원 자체를 비난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간다고 끊임없이 선전하면서 실제로는 외부지원에 의존하고, 도움을 제공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모욕하면서도 그 상대가 제공하는 지원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이중성이다.
진정한 자주는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다. 주민이 굶으면 정책을 바꾸고, 경제가 무너지면 제도를 개혁하며, 국제사회와 교역하려면 국제사회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오랫동안 실패의 책임은 외부로 돌리고 성공의 공로는 수령과 체제에 돌렸다. 그래서 북한을 단순히 ‘거지 국가’라고 부르는 것보다 ‘원조에 의존하면서 자립을 선전하는 국가’, 더 압축해서 말하면 ‘의존을 주체로 포장한 체제’라고 부르는 것이 북한 현대사의 실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주체를 가장 크게 외쳐온 국가가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필요로 했고, 위기에 빠졌을 때에는 자신이 그토록 멸시해온 남한과 국제사회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미국을 ‘미제국주의’라고 욕하면서도 미국과의 수교와 관계 정상화를 원한다. 남한을 ‘괴뢰’라고 조롱하면서도 남한이 보내는 쌀과 비료와 돈은 받는다.
도움을 받을 때에는 손을 내밀고, 받고 난 뒤에는 다시 상대방을 욕한다. 그러면서도 ‘주체’와 ‘자력갱생’을 외친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주체란 무엇이고, 자존심이란 무엇인가?
북한의 역사를 조금만 뒤집어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왼손에는 깡통을 들고 오른손에는 도끼를 든 채 ‘주체’를 외쳐온 것, 그것이 북한 권력의 가장 큰 자기모순 가운데 하나다.
2026. 8. 23. 11:29.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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