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의 북핵 단상
서상문(화가, 시인, 역사학자)
그저께 8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과 연내에 만날 생각이라면서 김정은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57 very powerful nuclear weapons)”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57기라고 특정했지만 정확한 숫자가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공식 정보평가로 공개한 확정된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즉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의 2026년 추정치는 북한이 조립된 핵탄두 약 60기, 추가로 약 30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보고 있어 트럼프가 밝힌 57기와 상당히 비슷하긴 하다. 반면, 한국 국방부 장관이 최근 국회에서 언급한 민간 연구기관의 추정범위는 80~120기다. 한미간에 대북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소린가?

그런데 핵폭탄은 한 기만 갖고 있어도 상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어 복수의 수량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것의 정확한 수량이 얼마인지 안다는 건 그다지 의미가 크지 않다. 북한 핵 탄두의 구체적인 수량보다 내가 더 주목하는 부분은 이 핵탄두들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고, 그에 소요된 비용은 남한의 대북 경협,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김대중부터 개시된 민주당의 지원금이 주요 자금이 아니었을까라는 점이다.
이 문제는 두 층위로 나누어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현금이 핵무기 개발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이지만, 반대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지원금·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자금이 오늘날 북한 핵탄두의 주된 제작비였다”고 단정하는 것도 현재 공개된 증거로는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북한 핵무기는 김대중 정부 때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북한 핵개발의 출발은 훨씬 이전이다. 북한은 1959년 9월 7일 모스크바에서 소련과 핵협력협정('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 또는 '조·소 원자력 평화 이용 협정', Соглашение о сотрудничестве в области использования атомной энергии в мирных целях)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소련이 북한 평안북도 영변에 IRT-2000 연구용 원자로를 설치하고 인력을 교육하는 등 북한의 초기 핵 개발 기반을 제공해줬다. 뒤 이어 1963년 소련이 영변에 IRT-2000 연구용 원자로를 제공했고 1965년 완공된 것은 확실하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은 이후 자체적으로 흑연감속로와 재처리 능력을 발전시킨 결과 1979~80년 경에는 독자적인 5MW급 흑연감속로 건설에 착수할 수 있었고, 1986~87년 경 가동에 들어갔다. 1990년 무렵에는 재처리시설을 운용하기 시작했으며, 1994년 이전에 이미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시작되기 전에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핵심 기술·시설과 초기 핵물질은 이미 존재했다는 건 확실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2002~2003년이다. 이 시기에 제네바 기본합의가 붕괴하면서 북한은 영변 시설을 재가동했고, 1994년부터 보관하고 있던 약 8,000개의 사용후연료봉을 재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약 25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가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6년 첫 핵실험 직전에는 대략 40~50kg의 무기급 플루토늄, 즉 약 6~8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을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 후 북한의 핵실험은 2006년→ 2009년→ 2013년→ 2016년 1월→ 2016년 9월→ 2017년 9월 등 여섯 차례로 이어졌고, 특히 2010년대에는 플루토늄뿐만 아니라 고농축우라늄(HEU) 생산능력이 확대되면서 핵탄두 숫자를 빠르게 늘릴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 따라서 현재의 50~60기 또는 그 이상의 핵탄두는 김일성 시대부터 김정일·김정은 시대까지 50~60년에 걸쳐 축적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런데 과연 이 핵탄두들이 만들어질 때 제조에 소요된 비용은 남한의 대북 경협,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김대중 등 민주당의 지원금이 주요 자금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런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지만 추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사료를 입수할 수 없다는 게 유감이다. 이 문제는 역시 훗날의 역사가들에게 맡겨야 될 것 같다.
과연 한국에서 건너간 돈 뭉치가 핵개발과 전혀 무관했을까? 원래 용도대로 제대로 쓰였을까? 북한 정권이 그럴 만큼 정직한 정권인가? 나의 심정적인 판단과 학술적인 추론으로는 단연코 “No!”, 무관하지 않았다.
북한 같이 유례 없는 3대 세습의 악성 독재 국가에서는 민주주의 국가처럼 외화가 일반적인 시장경제 국가처럼 “이 돈은 관광사업비, 이 돈은 식량비, 이 돈은 핵개발비”라고 엄격하게 칸막이가 쳐져 있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 정권에 들어가 김정은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외화는 대체가능성(fungibility)이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 1억 달러가 북한으로 들어가서 석유·식량·기계류 등의 수입을 충당해주면, 북한이 원래 거기에 써야 했던 다른 1억 달러를 군사·핵·미사일 부문으로 돌릴 수 있다. 따라서 남한에서 유입된 현금이 직접 핵무기 제작비로 사용됐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 김정일과 김정은 정권의 외화 가용성을 높여 결과적으로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를 제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2000년의 대북송금은 별도로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대북“지원금”이라고 뭉뚱그릴 문제가 아니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수사 결과에 따르면, 2000년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한으로 전달된 것은 현금 4억 5000만 달러와 현물 5000만 달러로 합계 5억 달러였다. 특검 수사에서는 당초 남측 정부 부담분으로 약정된 1억 달러와 현대의 경협사업 관련 자금 3억 5000만 달러, 현물 5000만 달러라는 구조가 확인됐다. 현금 4억 5000만 달러는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북측으로 송금된 것이다. 물론 이걸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핵개발비 5억 달러를 줬다”고 단정할 순 없다. 특검이 밝혀낸 것은 대북송금의 규모와 정상회담·경협사업과의 연계성이지, 그 돈이 북한에 들어간 뒤 핵무기 개발부서에 배정됐다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정적으로야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지지만 사료를 중시하는 역사학자인 나로서는 단언할 수가 없어 심히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료에 근거해서 내가 확실하게 사실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상당한 외화가 들어간 점이다. 물론 이 두 가지가 성격이 다르긴 하다. 금강산관광은 관광대가로 북한 당국에 지급되는 현금이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의 외화수입이라는 성격이 비교적 분명하다.
개성공단은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임금이 근로자 개인에게 직접 달러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당국을 거치는 구조였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2016년 개성공단을 폐쇄하면서 이 자금이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됐다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아쉽지만 이 역시 “개성공단에서 들어간 몇 달러가 어느 핵탄두 제조에 사용됐다”는 회계자료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직접 전용의 입증과 외화 공급을 통한 간접적인 재정기여 가능성을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양자의 비용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문제가 생긴다. 통일부가 한국국방연구원(KIDA) 자료를 인용해 공개한 수치에 따르면 북한이 1970년대 이후 핵개발에 사용한 비용을 약 11억~16억 달러로 추정한 자료가 있다. 물론 극도로 폐쇄된 비밀국가인 북한의 핵개발 비용을 실제 회계장부로 계산한 것이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추산치다.
이 대목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하다. 김대중 정부 시기였던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단 한 차례로 북한에 대북 송금해준 게 5억 달러 규모였다. 따라서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정부 차원의 지원, 민간교류 등을 모두 합치면 북한으로 유입된 경제적 자원의 규모가 작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이를 합산해서 “남한 돈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만들었다”라고 결론짓는 것은 인과관계의 비약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그 밖에도 중국과의 무역, 광물·석탄 수출, 무기판매, 시베리아, 중동 등지 해외 북한 노무자들의 송금, 마약 판매 등등 각종 불법무역과 제재회피, 일본 조총련을 통해 들어가는 자금, 최근에는 사이버·가상자산 탈취, 그리고 현재는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등 다양한 외화획득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초기 핵개발 자체는 남한의 대규모 대북 경제협력이 시작되기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됐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라는 이름 하에 남한에서 북으로 들어간 돈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핵·미사일 개발을 뒷받침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본다. 과거 남한의 대북지원정책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 개선과 개혁·개방을 촉진했다는 긍정적 측면보다,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의 고갈된 외화의 숨통을 틔워 핵무장을 지속할 여력을 제공했다는 부정적 측면이 더 컸다.
이 부분도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통일이 되고 나면, 그 통일이 한국의 흡수통일이 아니라 북한이 말하는 대로 1국 2체제식의 연방제 통일이거나, 혹은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남북한의 정치세력이 대등하게 통일하는 체제라면 엄청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사인이다.
통일되기 전에도 이렇게 여야가 대북 문제를 갖고 시끄럽게 죽자 살자 싸우고, 남북한 간에도 살기가 돋는 설전이 벌어지는데 남북의 두 정치 세력이 같이 손잡는 식으로 통일이 되면 한국전쟁의 남침에 대한 책임 소재 문제를 비롯해서 북한의 대남 무장 남파 간첩사건들이나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사건 등등을 두고 박 터지는 정쟁이 벌어지지 않는 날이 없을 것이다. 나의 이 우려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도 그렇지만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조선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중단된 적 없는 당파 간의 정쟁을 미리 예견해보게 되니 후손들이 안스럽게 느껴지고 입맛도 개운하지가 않다.
2026. 8. 21. 01:38.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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