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공유/아시아사

가해를 지운 원폭의 기억과 일본의 재무장

雲靜, 仰天 2026. 8. 6. 15:03

가해를 지운 원폭의 기억과 일본의 재무장


                       서상문(한국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매년 8월 6일과 9일이 되면 일본 히로시마(広島)와 나가사끼(長崎)에서는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는 평화기념식이 열린다. 원자폭탄이 한순간에 수많은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통을 남겼다는 사실은 어떠한 이유로도 가볍게 다룰 수 없다. 핵무기는 다시는 사용돼서는 안 되며, 피폭자들이 평생 호소해온 반핵과 평화의 목소리는 인류가 계승해야 할 귀중한 유산이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끼 상공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 구름
일본 원폭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히로시마현 지방 재목·일본 재목 히로시마 지사 등의 통제 회사의 사무소의 잔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후방 군수 병참 기지의 역할을 한 히로시마 시가지가 원폭 투하로 전부 폐허가 됐다.

그러나 일본의 원폭 기억에는 중대한 결락이 있다. 일본은 자신들이 원폭을 맞았다는 결과는 강조하면서도, 왜 그러한 파국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좀처럼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참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일본군이 조선과 중국,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일대에서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강제동원과 식민지배는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밀어낸다.

원폭 투하는 미국이 결정하고 실행한 비인도적인 대량살상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폭이 투하되는 역사적 상황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원폭 투하 책임과 일본의 침략전쟁 책임은 어느 하나로 다른 하나를 지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두 책임은 함께 물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일본에서는 이 두 가지 기억 가운데 원폭 피해의 기억만 점점 강하게 남고 있다. 일본인은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원폭을 맞은 피해자로 재현된다. 그렇게 되면 전쟁의 원인은 사라지고 전쟁의 참상만 남는다. 침략의 책임이 지워진 평화교육은 진정한 평화교육이 아니라 불완전한 피해자 교육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전쟁과 원폭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6년 3월 말 현재, 일본의 피폭자 건강수첩 소지자는 9만여 명이며, 평균연령은 이미 86세를 넘어섰다. 평화헌법과 전수방위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해온 전쟁체험 세대의 목소리가 약해지는 자리에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앞세운 군비증강론과 역사수정주의가 들어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과거의 방어전력과는 성격이 다른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2026년 3월 31일에는 켄군주둔지(健軍駐屯地)에 25식 지대함 유도탄을, 후지주둔지(富士駐屯地)에 25식 고속활공탄을 처음으로 부대 배치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반격능력’이라 부르며 전수방위의 범위 안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상대국 영토 깊숙한 곳의 미사일기지와 지휘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는 운용자의 판단에 따라 방어무기도 되고 공격무기도 된다.

방위비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은 2027회계연도까지 방위력 강화와 관련 경비를 2022년도 국내총생산의 2%인 약 11조 엔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장거리 미사일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무인기, 위성정찰, 탄약과 지휘통제 능력이 하나의 체계로 결합되면 일본은 더 이상 전후의 제한된 방어국가에 머물지 않는다.

물론 오늘의 일본을 곧바로 1930년대 군국주의 일본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일본에는 의회와 선거, 언론과 시민사회가 존재하며, 헌법 제9조와 전쟁 포기 원칙을 지키려는 시민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군국주의는 어느 날 군복을 입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위협을 반복해 강조하고, 방위라는 이름으로 공격 능력을 확대하며, 과거의 침략은 축소하고 자국의 피해만을 부각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자라난다.

최근 일본에서는 ‘일본인 퍼스트’를 내세운 극우적 정치세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전후 평화주의를 자학사관으로 몰아붙이고,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공격한다. 원폭의 참상은 강조하면서도 일본이 왜 그 전쟁을 일으켰는지는 묻지 않는다. 이러한 선택적 기억이 군비증강과 결합할 때 피해자 의식은 새로운 군사주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할 수 있다.

원폭을 기억한다는 것은 일본인의 피해만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한 고통과, 그 전쟁의 끝에서 일본 국민이 원폭과 공습으로 겪은 고통을 함께 기억하는 일이어야 한다. 가해의 역사를 지우고 피해만 기억하는 것으로는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일본이 진정한 평화국가로 남으려면 “다시는 원폭을 맞지 않겠다”는 결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시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원폭 피해의 기억과 침략 책임의 기억이 하나로 이어질 때에만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비극은 인류 전체의 평화유산이 될 수 있다.

지금 일본은 다시 칼을 들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가해와 피해를 함께 기억하며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내가 해마다 해 오는 소리다. 올해도 또 다시 하게 된다는 게 유감 천만이다. 원폭의 상처를 군비증강의 명분으로 사용할 것인지, 모든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보편적 교훈으로 승화시킬 것인지에 따라 일본의 미래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2026. 8. 6. 16:26.
종로3가역행 3호선 지하철 안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