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결론을 ‘신냉전’으로 과장하는 담론의 빈곤: 국내 안보담론의 과잉해석 비판
서상문(서양화가, 시인, 역사학자)
최근 며칠 사이, 국내 보수 안보담론과 일부 전략연구자들 사이에서 그저께 끝난 트럼프–시진핑 회담을 두고 “신냉전 질서의 본격화”라는 규정이 거리낌 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중 관계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번 회담이 실질적 합의 없이 끝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이런 예정된 결론을 두고 과연 ‘질서 전환’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러한 해석은 정밀한 분석의 산물이라기보다 이미 예견된 결과를 위기 서사로 부풀리는 담론적 과잉에 가깝다. 그것이 아니면 자신의 무지로 여론을 선동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전략적 행보, 그리고 지난 수년간 누적된 미·중 관계의 흐름을 고려하면, 이번 회담은 ‘갈등 속 관리’라는 기존 패턴을 반복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새로운 질서의 출현이 아니라 기존 구조의 재확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내 전략연구자와 언론들은 “공동성명조차 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정상회담의 실패라거나 미중간 구조적 대결의 출발로 규정한다. 이는 외교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을 넘어 사실상 과장을 전제로 한 해석이다. 미·중 정상회담은 갈등을 해소하는 자리가 아니라 갈등의 폭주를 억제하는 장치다.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질서 전환을 선언하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위기 담론의 생산이다.
특히 문제는 개념 사용의 무책임함이다. 같은 글 안에서 “G2 시대는 끝났다”고 하면서 동시에 “미·중 양대 블록 충돌이 심화된다”고 주장하는 식의 서술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논리의 붕괴다. G2가 끝났다면 다극화가 설명되어야 하고, 양극 대결이 강화된다면 그것은 G2의 해체가 아니라 재편이다. 이 기본적인 개념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질서 변화’를 말하는 것은 학술이 아니라 선동적 구호에 가깝다.
중국에 대한 평가에서도 일관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를 논할 때는 “붕괴 직전의 국가”로 규정하면서, 안보를 말할 때는 “미국을 위협하는 결정적 경쟁자”로 부각시킨다. 필요에 따라 중국을 약한 국가로도, 강한 국가로도 사용하는 이러한 서술은 분석의 유연성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결론도 정당화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주장들이 미국이나 중국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제대로 된 연구와 자료 축적 위에서 나온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관련 서술에서는 과장이 더욱 노골적이다. 한국이 곧 대만 유사시 후방기지로 기능하게 될 것처럼 단정하는 주장은 정책의 현실을 무시한 채 위기감을 선동하는 서술에 가깝다. 더 나아가 김정은 권력의 기반을 트럼프가 제공했다는 주장에 이르면, 필자의 입이 다물어질 정도다. 이는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무지와 역사 인식의 결핍이다. 북한 체제의 형성과 유지 과정에서 미국은 일관된 적대자였으며, 이를 뒤집는 서술은 사실 왜곡의 수준에 가깝다.
결국 이러한 담론은 하나의 공통된 특징으로 수렴된다. ‘신냉전’이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먼저 설정해 놓고, 그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선택적으로 배열하는 방식이다. 이는 올바른 학술 연구자의 태도가 아니다. 복잡한 국제질서를 설명하기보다 단순하고 선명한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그 결과 분석은 사라지고, 정책적 긴장을 정당화하는 서사만 남는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번 트럼프–시진핑 회담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 아니다. 이미 지속되어 온 경쟁과 관리의 구조가 반복 확인된 사건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를 “신냉전의 시작”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현실을 분석하는 대신 스스로 만든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무지의 소치에 따른 것이든, 아니면 고의적이든 위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담론이 아니라 개념의 엄밀성과 사실에 기반한 절제된 분석이다. 그것이야말로 사안에 대한 이해의 정확도를 높이고 나아가 정책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지적 조건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동에 가까운 자극적인 말이 아니라 차분하고 정확한 판단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글을 쓰거나 주장하는지를 늘 스스로 자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학인은 겸손해야 한다는 걸 또 한 번 절감한다.
2026. 5. 17. 11:55.
마산행 KTX 열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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