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훔친 놈이 나쁜가? 물건 잃은 사람이 나쁜가?
8월 29일 오늘은 114년 전인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국치일이다. 우리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이 사실에 대해서도 순서를 뒤바꿔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우파 진영 쪽에서 그런 경향이 심하다. 즉 우리가 주권을 잃어버렸다면 관리나 간수를 잘못해서 그렇고, 빼앗겼다면 힘이나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면서 일본이 우리의 주권을 빼았던 것을 성토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왜 빼앗기게 되었는가를 자성하고 돌아봐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일부는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를 잃게 된 역사적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원인의 중요성과 우선 순위에서 틀렸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 역시 내가 평소에 주장하듯이 생각하는 것을 잘못 배웠거나 생각할 줄 몰라서 그렇다. 아니면 알고서도 의뭉스럽게 그런 주장을 펼 수도 있겠다.
물건을 뺏은 자가 나쁘지 잃은 이가 왜 나쁜가? 내가 어릴 때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급우가 물건을 잃어버리면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 모아놓고 하는 말이 훔친 자보다 잃은 자가 더 나쁘다고 하는 걸 많이 들었다. 참 해괴한 논리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것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힘이 없었던 것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은 어릴 때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나서 그렇게 주장할까? 일제가 한국침략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주입식 교육의 잔재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힘이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해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역사사건의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고 1차적 원인 규명 후에 생각할 일이다. 1차의 본질적 원인은 일본이 왜 조용히 지내는 남의 나라를 침략했는가 하는 점에 있다. 한 마디로, 일본이 침략만 하지 않았으면 대한제국이 아무리 힘이 없어도, 또 내적으로 양반들이 서로 찌지고 뽁으며 싸우더라도 하층민들이 핍박을 받아서 그렇지 우리민족끼린 그냥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침략부터 먼저 책임을 묻고나서 그 다음으로 우리의 국력이나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서 반성할 것에 대해 반성하는 게 바른 인식이자 순서다.
세계가, 국가들 사이에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평화롭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힘 있는 국가라고, 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힘없는 나라와 약자의 물건을 맘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뺏고 하는 것을 옳은 것이라고 보고 또 그렇게 하길 원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힘으로 모든 것을 취할 수 있고 쟁취해도 된다는 폭력주의자, 비평화주의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나 살아오면서 윤리와 도덕을 왜 배우고, 왜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가?
만약에 평화를 원하지 않고 힘만 있으면 힘으로 모든 것을 뺏어도 된다고 한다면 일본의 침략에 대해 책임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즉 무도한 비평화주의적 강권주의자라면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 평화가 바람직한 가치이고 세계는 그런 양태로 존재해야 한다면 한번 생각해보라. 자신의 그런 논리는 일제 침략의 잘못이나 책임 보다는 나라를 뺏긴 것에 대한 반성만하고 일본의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된다면 그것은 힘이 있으면 어떤 나라든지 간에, 어떤 사람이든 간에 힘으로 남의 나라나 타인의 권리를 빼앗아도 되고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내가 평소 한국사회에서 일베, 뉴라이트,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의 결합이 승하면 이 나라가 파쇼국가로 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벌써 우리 사회 곳곳에는 그런 현상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종북주의자”들을 척결한다는 미명하에 이런 생각과 그런 류의 정책이 용인되면 안 된다.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다. 불가분의 상관성이나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게 아니다. 생각을 바르게 하면서도 종북주의자들을 충분히 대적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 오히려 뉴라이트처럼 생각을 잘못하기 때문에 종북주의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 바른 생각, 바른 언행의 처신과 국민을 위한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정치를 하는 지도자라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시민사회든 국민이든 누가 그를 뭐라고 비난하겠는가? 그렇게 못하니까 상대에게 공격당할 빌미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지지자들이 생기고 그것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실종되고 정쟁만 남는 것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처럼, 침략을 당하지 않으려면 힘을 기르라면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뺏기는 국민이 바보라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힘없는 나라라고 마음대로 침략해서 국가주권을 뺏는 국민이 나쁜 놈들이라고! 그 다음으로 나쁜 자들은 일제에 매수되거나 내통하면서 공작이나 남작 신분과 엄청난 재물을 제공 받고 나라를 팔아먹은 조선의 매국노들이었다고!
부국강병의 국력을 키우지 못하고 허구한 날 국가안보 차원이 아니라 정권 유지나 기득권 유지 차원에서 통치와 정치를 행했던 권력 가진 못된 선조들에 대한 반성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평화와 자유를 중요시하는 나라, 양심적인 국민이 다수인 나라, 힘의 논리를 우선시하고, 절대시하는 패도가 아닌 약자의 안전과 권익도 보장해주는 정의로운 나라, 세계평화사상을 견지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우선이다.
2024. 8. 29. 15:45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
★ 오래 전에 쓴 졸문을 재탕한다! 생각을 잘못한 사례의 글도 같이 올린다.
https://suhbeing.tistory.com/m/893
https://suhbeing.tistory.com/m/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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