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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는 이 시대가 만든 영웅

雲靜, 仰天 2012. 10. 5. 06:38

싸이는 이 시대가 만든 영웅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코믹한 ‘말춤’과 맛깔나게 버무려진 ‘강남스타일’. 요즘 대선 주자들의 선거 관련 행보만큼 국민의 주목을 받는 싸이의 트렌드에 온 지구촌이 열광하고 있다. 유튜브, 아이튠스, 118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 권위의 미국 빌보드차트 2위에 이어 영국 UK차트의 석권으로 이어지는 위업을 달성한 싸이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대중음악의 세계챔피언이 된 원동력은 단연 싸이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 순발력과 무대에서의 카리스마다. 어떤 공연이든 그는 보통 3시간이 넘는 공연 중 탈수증상이 일어나도 산소 흡입 후 공연을 계속한다. 다리에 쥐가 나도 침을 맞고 공연을 갈 데까지 끌고 간다.

 

 

  

코믹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강남스타일의 내용과 표현형식은 이러한 열정의 산물이다. 기성사회에 대한 불만과 공격적 성향을 지닌 랩과 달리 그의 음악엔 민족성이나 계급성이 내포돼 있지 않다. 노랫말에서도 체제저항과 사회비판은 보이지 않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말춤을 따라 배우며 하이힐을 벗으려 하자 싸이가 “이 춤은 멋지게 차려입고, 싼티 나게 춰야 한다”고 했듯이 강남스타일은 한국의 대표적 부촌 강남을 살짝 비틀 뿐이다.

 

어떠한 정치, 경제적 이념보다도 더 보편적인, 대중문화의 보편성을 지향한다. 형식도 “영미 팝 시장의 트렌드인 일렉트로닉 팝”이며 “베이스 라인이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사운드가 특징”이다. 특히 집단댄스가 가능한 말춤은 역동성을 더해준다. 슬럼프에 빠진 싸이에게 제색깔을 발휘케 하고 밤새워 뮤직비디오를 직접 편집한 소속사의 조직적 팀플레이도 큰 몫을 했다.

    

노력, 열정, 음악 내용과 표현 형식이 독특해도 소비자의 호응이 따르지 않으면 사장되는 법. 싸이에게 대박의 행운을 선사한 것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노동시간 덕에 여가를 즐기려는 삶의 형식 변화, 삶의 질에 관심이 높아진 시대적 배경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변되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문화의 결합이 결정적이었다. 정보의 자유로운 처리와 소통을 가능케 하는 멀티미디어에 의해 전개되는 특수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는 근대적 시공간 개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개념을 가져다 줬다.

 

삶의 시공간 개념의 변화를 가져다 준 디지털 시대의 과학기술에 의한 대량 복제가 한정된 공연장소를 뛰어넘어 지구촌 대중에게 널리 소개, 소비시킨 견인차역할을 했다. 복제를 통해 공연의 일회성과 현존성을 극복하려는 대중적 욕구가 강남스타일로 하여금 인터넷망을 타고 퍼지게 하고,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가 2억9100만 회를 기록하면서 도처에서 패러디물들이 올라오게 하는 배경이다.

 

원본과 복제물의 구분이 무의미한 시뮬라크르(simulacre)시대의 정보화사회가 구미의 주류 대중음악시장 공략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가 유튜브에서 NBC ‘SNL’, ‘투데이쇼’같은 미국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해준 스쿠터 브라운을 만난 행운이 따른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을 방문한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이 싸이를 “한국의 위상을 높인 영웅”이라고 말했듯이 이 시대의 영웅은 대중문화속에서 나타난다. 구태 정치에 식상한 국민을 일시나마 신명나게 한데 그치지 않고 문화산업의 주역으로서 국가브랜드를 높이고 한류의 신기원을 연 싸이 같은 영웅들이 더 많이 출현하도록 정부의 문화정책적 지원과 음악 유통환경이 더 나아지면 좋겠다.

 

위 글은 2012년 10월 5일자 경북일보 아침시론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