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타워의 까마귀와 국힘당의 계륵들
영국 런던타워에는 여섯 마리의 까마귀가 영국왕실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많은 관광수입을 올려주는 명물이다. 이 까마귀들이 런던타워 안에 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영국인들에겐 이 까마귀들이 이 성을 떠나면 왕국이 무너진다는 오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전설은 이미 수 세기가 된다. 17세기 중후반 찰스 2세가 왕명으로 까마귀들을 보호하라고 한 이래 지금까지도 그것이 지켜지고 있으니 이 전통은 근 400년이 넘는다.
그래서 영국 왕실에선 런던타워의 이 까마귀들이 날아 가버리거나 병들어 죽지 않도록 잘 보살피되 까마귀가 멀리 날지 못하도록 깃을 자른다. 깃이 잘린 까마귀들은 날아 봤자 닭이 지붕으로 날아오를 정도로 밖에 날지 못한다. 잔인한 동물학대라고 좋지 않게 볼 수도 있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인들이 새 몇 마리 보다는 나라의 안위를 더 우선시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최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측엔 두 계륵이 있다. 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의 당직자와 최고위원들이 일괄 사퇴했지만 사퇴하지 않고 뻣대는 이준석 대표가 첫째 계륵이다. 윤석열 후보가 선대위를 직접 재조직하기로 결심하고 결별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두번째 계륵이다.
이준석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심리나 심보를 들여다 보고 있는 이상 이미 충분히 예견된 바다. 이준석은 윤석열 후보를 험담하는 등 해당행위를 지속할뿐만 아니라 성상납 의혹의 추문에 휩싸여 있음에도 대표 자리는 물러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벌써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래의 정치지도자로선 자질 미달임을 말해준다. 항간에는 생활비 때문에 대표직에 연연한다는 소리들이 들리지만, 여기에다 젊은 나이에 과한 권력의 꿀맛을 본데다 물러나면 성상납 의혹이 공표되고 고소를 당한 이상 이번엔 어쩌면 정치생명이 끝나는 사태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선뜻 내려오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대표직에 그냥 놔두면 이준석은 대선 날까지 자기 하고 싶은 얘길 언론에다 마음껏 내뱉는 비방질, 분탕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당대표라면 어떤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 후보에게 직접 의사를 밝히는 게 당무처리의 바른 방법이다. 내부에 할 말이 따로 있고 바깥에 할 말이 따로 있다. 하지만 그는 겸손, 사려, 자제, 인내 따위의 미덕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간형으로 보인다. 정치인이 아니라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마저도 갖춰져 있지 않아 보인다. 마치 이번 대선에서 젊은 지도자로 각인시키고, 차기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공천권을 행사해서 과거 김영삼 처럼 40대 기수론을 들고 차기 대선에 나갈 복안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떻게 이런 자가 당 대표에까지 선출됐는지, 세간에는 역선택에 의한, 한국정치의 비극이자 코메디로 회자된다. 지금까지 이준석은 당 대표가 되고 난 뒤로 문재인 정권의 실정이나 이재명 후보의 잘못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모른 체 침묵하면서도 아군에 대해선 상대 보다 더 가혹하고 끈질기게 온갖 비난을 퍼부어댔다. 이쯤 되면 당대표로서 그의 역할은 물론, 의도와 정체마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대선 선거운동에서 자신이 주도하고 싶은데 윤핵관들 때문에 봉쇄당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큰 듯해 보인다. 윤핵관이 문제가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김종인은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앉은 이래 지금까지 이렇다 할 가시적인 변화나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본인은 선대위 내부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고 함) 더군다나 자신이 총괄선대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고 해놓고선 언론에다 식언하는 등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임에 따라 결국 유권자들에게 구태의 캠프라는 점을 또 한 번 만천하에 각인시킨 셈이다. 이런 경우라면 윤 후보가 온전히 믿고 맡기기엔 신의의 한계가 노정된 셈이다.
그렇다면 당에서 계륵과 같은 두 사람의 거취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처리하는 게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일이다. 과연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두 사람을 런던 타워 까마귀처럼 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이준석을 내보낸다는 건 정치판에서 온갖 술수만 보고 배운 탓에 뒷끝이 좋지 않아 보이는 그의 해당행위나 작당을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또 김종인의 경우 당장 이재명이 불러들일 우려도 없지 않다. 둘을 당에서 쫓아내버리면 향후 김종인은 인재라고 보고 있는 이준석을 코치하고 이준석은 그를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면서 두 사람이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두 계륵의 처리는 감정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들은 그냥 바깥으로 날려보내면, 런던타워의 까마귀들이 떠나버리면 영국이 망할 것이라는 믿음 처럼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이 패할 수 있다는 정치적 직관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준석이 2030세대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보여준 프락치 같은 언행, 젊은 나이에 벌써 기성 정치인 뺨치는 술수와 노회함이 드러난 이상 그가 2030세대의 표를 끌어오는데는 이미 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판단된다. 더군다나 20대 세대와 30대 세대를 한 범주로 엮어서 하나의 세대로 보는 것도 정확한 인식도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또 그들이 모두 이준석을 지지하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아서 마뜩치도 않다.
따라서 비유가 적절하진 않지만, 런던타워의 까마귀처럼 상징적으로 당내에서 두 사람을 '사육'하되 날개를 꺽어 더 이상 기존의 당직과 선거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둘은 각기 대표직과 총괄선대위원장에선 물러나게 하되 당을 완전히 떠나게 하는 건 良策이 아니다. 김종인은 대선 후 응분의 대가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해줘서 발을 묶어놓을 필요가 있다. 이준석은 무장해제 시켜서 더 이상 정치평론가 역할, 언론에다 나발 부는 등의 후보 흠짓내기와 해당행위를 못하게끔 족쇄를 채울 필요가 있다.
한 계륵은 깔끔한 마스크완 달리 속엔 능구렁이 몇 마리가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래서 정말 곁에 있으면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은 애늙은이고, 다른 한 계륵은 연로한 나이 탓인지 의욕, 의지, 활동, 전략적 능력 발휘 면에서 이전과 다른 부쩍 무기력하고 노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선대위에 대한 전권을 요구하는 김종인 총괄위원장은 권력의지만 강할 뿐 전권을 호락호락 넘겨줄 수 없다는 윤 후보와 지난 한 달 내내 부딪히기만 했다.
계륵 같은 이들의 非道를 보면 당장이라도 인연을 끊고 싶을 것이다. 멀리서 보는 유권자들도 화가 치미는데 직접 당하는 당사자는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大局을 보고 참아내는 것도 필요하다. 나라의 국운이 걸린 비상시국이기 때문이다.
2022. 1. 4. 16:27
여의도의 한 모퉁이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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