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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만리장성은 엿가락인가?

雲靜, 仰天 2012. 6. 8. 00:06

중국의 만리장성은 엿가락인가?

 

서상문(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만리장성은 엿가락인가? 10여년 전 내가 찾은 만리장성 입구의 장성박물관에는 분명 현 장성의 모습이 갖춰진 시기는 명대였고, 길이는 동쪽 허베이성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간쑤성의 자위관(嘉峪關)에 이르는 6,352㎞라고 소개돼 있었다. 이것이 중국역사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2009년 4월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단 출발기점을 산하이관에서 랴오닝성 압록강 대안의 단둥(丹東)으로 연장해 8,851㎞라고 왜곡했다. 이번엔 서단을 자위관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하미(哈密)까지, 동단을 단둥에서 헤이룽장성 무단장(牧丹江)까지 더 넓혀 2만1,196㎞로 늘여 ‘사만리장성’으로 둔갑시켰다.
 
 

  
이번에 늘린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일대 허구의 ‘장성’은 중국식 성이 아니라 고구려나 부여의 성으로 판별되는 것들을 지도에서 그어 붙인 것이다. 과거 “關”자가 붙은 곳은 대개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 혹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넘어가는 국경도시였다.
 
이 점이 말해주듯이 산하이관은 중국 관내지역과 만주지역(현 둥베이지역)을 구분했던 경계였고, 자위관은 유목민족인 위구르족과의 경계였다. 17세기 초반 청이 건국하기 직전까지 명나라는 둥베이 지역을 통치한 적이 없었음에도 지린성 퉁화(通化)의 고구려산성을 만리장성의 유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이 만리장성을 억지로 늘린 이유는 자국내 20여개 ‘과계(跨界)민족’들의 민족통합을 노린 정치공작의 일환이다. 동시에 부정부패, 계층간, 지역간,민족간 격차 등 개혁개방 결과 층층이 쌓인 정치, 사회경제, 민족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과계민족이란 조선족, 베트남족, 위구르족, 러시아족처럼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독립된 국가를 가지고 있는 중국내 소수민족을 말한다. 중국이 그간 몽골족에 대한 북방공정, 신장위구르족에 대한 서북공정, 티베트를 대상으로 한 서남공정, 광시장족자치구 베트남족에 대한 남방공정을 펼쳐온 동기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중국내 56개 민족 간에 민족분쟁이 발생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금번 만리장성의 범주를 신장위구르 지역과 둥베이지역으로까지 확장한 것도 과계민족인 위구르족의 이완 및 저항을 잠재우고, 조선족의 탈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조선족은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여타 지역의 독립투쟁이 격해지면 배후의 한국내 일부 간도찾기운동 세력과 연동될 수 있다는 것이 중공 지도부가 가지고 있는 우려다.
 
저우언라이 전 총리가 둥베이지방이 과거 고구려의 영역이었다는 점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사로 비틀어놓은 동북공정이 추진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향후에도 중국정부의 역사왜곡은 지속될 것이다.
  
중공수뇌부는 주변국 역사왜곡 따위의 편법을 쓸 게 아니라 공산당 일당독재라는 빗장을 풀고 복수다당제 허용, 직접선거 확대와 같은 근본적 정치개혁을 단행하길 바란다. 또 당을 국가 위에 놓은 당국가(party-state)체제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각종 모순 극복과 소수민족의 단결을 도모할 정공법이다.
 
또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내전 시기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인정한 사실과 건국후 몽골, 티베트, 고구려의 역사를 인정한 혁명1세대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더 큰 저항에 부딪치기 전에 자진해서 주변국 역사왜곡을 철회하길 촉구한다.
 

위 글은 2012년 6월 8일자『경북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