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50돌 포항항, 새로운 50년은 문화수출항으로
서상문(한민족미래재단 이사)
포항항이 그저께 무역항 개항 50돌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다. 온 시민과 함께 축하할 경사다. 포항항은 양항으로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기록이 말해주듯 고대부터 포항은 일본, 중국과의 문물, 기술교류의 중추 역할을 해온 동해안의 해상관문이었다.
오늘날도 포항항은 환동해경제권의 중심축으로서 국가 경제성장에 숨은 역할을 하고 있다. 포스코의 철강원료 및 제품 수송에 힘입어 현재(2011년 기준) 하역능력 8,665만 톤(전국 5위), 선박 54척이 동시에 접안 가능한 140만 톤 이상의 접안능력이 입증한다.
다가올 반세기는 포항항이 물동량을 중시하는 무역항 차원을 넘어 문화수출항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포항이 문화도시로서 품격이 높아져야 한다. 문화는 삶의 질을 높이고 역사를 바꾸는 힘이다. 또 그 자체로 “돈 되는 산업”으로서 수출 가능한 재화이기도 하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문화와 문명은 바다를 통해 들어오고 나간다. 향신료, 고추, 담배, 차 등의 농산물과 비단, 직물, 도자기 같은 대중 소비품에서 은, 진주, 시계, 망원경, 벨벳 등의 고급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근대의 물산들이 동서양을 넘나든 것은 바다를 통해서였다.
근대 유럽에 ‘아시아풍’이 유행한 것은 인도와 중국에서 수출된 후추, 차, 자기 등의 물품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조총과 기독교가 동아시아에 전파돼 전쟁패턴과 축성술이 달라졌고, 동아시아의 역사를 변화시켰다. 심미적 측면에서도 아마존의 코치닐 벌레로 만든 주홍색 염료와 브라질나무에서 채취한 빨간색 염료가 유럽으로 들어가 모직과 벨벳 같은 고급직물 염색에 쓰여 유럽의 색조를 바꿔놓았다.
여기에는 바다를 품는 항구의 항만설비와 인간이 매개돼 있음은 물론이다. 육상교통과 해상교통의 중개지로서 항구가 없으면 육지는 고립된 섬에 불과하고, 바다는 거친 원시림일 뿐이다. 바다는 미지의 길을 나선 자식이요, 항구는 언제나 조건 없이 그 자식을 품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15세기 대항해시대 개막 후 리스본, 포르투, 희망봉, 아덴, 인도 고아, 말래카, 중국 광동, 일본에 이르는 뱃길을 타고 수많은 서양제국, 아랍, 페르시아, 인도 상인들이 동아시아로 건너와 활발하게 무역활동에 종사했다. 19세기 이전 전세계 총생산의 50%를 차지했던 중국과 인도의 부는 탐험가, 선교사와 상인들이 열어놓은 뱃길을 통해 이뤄진 자유교역이 원천이었다. 풍요와 근대는 바다 위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새로운 50년을 위해 포항은 항만경쟁력을 높임과 동시에 문화를 발굴, 창조, 포장, 수출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항만설비가 물질성장을 가리킨다면 문화는 인간정신을 표상한다. 단지 질료에 치중한 항만인프라 구축만으론 더는 업그레이드되지 않는 게 항만경쟁력이다. 양질의 기업유치에 따른 배후산업단지 조성과 포항특유 문화의 저변확대를 통한 상품화, 국제화가 관건이다. 포항엔 역량 있는 화가, 문인, 인문학자, 과학자, 문화인, 체육인이 많다.
해양환경보존, 항만과 도심과의 조화, 해양친수공간 확보와 함께 그들의 정신과 전문성이 녹아있는 명품 해양문화도시가 될 때만 해외에서 사람과 자본이 몰려온다. 물동량처럼 문화교섭량도 교역통계에 잡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범시민적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위 글은 2012년 6월 15일자『경북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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