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여행기 혹은 수필

멀대, 동대산 쟁암당에서 가는 봄을 막아 서다!

雲靜, 仰天 2021. 4. 7. 14:37

멀대, 동대산 쟁암당에서 가는 봄을 막아 서다!

 

봄 기운이 막 몰려 올 때다. 겨울이 혼자 가지 않듯이 봄도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 해마다 같이 다니는 아지랑이, 꽃들, 풀과 나무들과 새들이 도반이다. 봄은 늘 그들과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하고 함께 온다.

 

나도 봄의 허리를 부여 잡고 산 그림자와 함께 바람처럼 찾아 왔다. 영덕 동대산 기슭 아래 쟁암리! 마을 명패에 爭岩里라 쓰여져 있으니 바위를 다투는 곳이다. 혹은 다투는 바위들이 있는 마을로도 해석이 된다. 이름의 유래가 없지 않을 듯 싶지만 그걸 톺아보는 건 풍류를 모르는 한미한 서생이나 할 짓이다. 지금은 일상을 잠시 던져두고 온전히 봄기운에 취하려고 왔지 않는가? 금강산 구경이 식후경이라면 동대산 구경은 酒情에 취하고, 인정에 취하고나서다. 찰나일지언정 봄의 갈피에 들어서 시름을 잊으려고 온 곳이 동대산 안골 쟁암리가 아닌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쟁암리! 이 터가 고등학교 친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자고로 땅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 동대산에서 흘러 내리는 산자락들은 가파르지도 않고 평평하지도 않을 뿐더러 내도 변덕스럽게 굴곡지지 않고 나이 든 이의 긴 숨결처럼 느릿하게 흐른다. 들도 찰진 기가 감돈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도 이곳의 지세처럼 사람됨이 각박하지 않고 후덕지다. 친구들이 모일 때는 다 소이연이 있는 법이다.

 

첫날 밤, 먼저 와 있는 서울 친구들과 함께 몇 순배가 돌자 포항해서 어둠을 밝혀 또 다른 친구가 달려 왔다. 반갑기가 허기진 배에 들어오는 곡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어느덧 4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런 길지에서 친구들을 보는 것도 예삿 일이 아니다. 뒤돌아 보면 아득한 그 시절, 기억의 편린들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어슴프레 할 즈음, 지난 얼굴들의 실루엣이 휘감겨 오는 밤이다. 

 

간밤의 숙면 탓인지, 아니면 길손의 오랜 습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방안에서부터 공기가 도회와 사뭇 다름을 느낀다. 아침해가 아직 힘을 받기 전,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나는 찰리 채플린의 시선으로 담너머 자두나무의 꽃망울을 준비하는 봄의 전령사들과 눈을 맞춘다. 꿀모닝! 그런데 기이하고도 신기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눈앞에서 마술처럼 펼쳐진다. 첫 인사 후 단 4~5시간 만에 수줍은 새악시 볼이 터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북쪽 편의 작은 냇가를 따라 나 있는 우사 안 소들은 또 밤새 안녕하신가요? 이태 남짓 돼 보이는 중 소 두 마리와 한 해가 안 돼 보이는 아이 소 한 마리, 모두 다가서는 나를 보고도 뒷걸음질을 치지 않는다. 경계의 눈빛이라곤 전혀 없다. 되려 "자네 오는가"하고 친구를 반기듯이 소들이 혀를 연신 낼름 낼름 거리며 내 손등에, 내 팔에 감겨 온다. 아이가 부모의 하는 걸 닮듯이 소들도 주인이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요즘 소들은 인간들이 잡아 먹을 "명품용"으로만 길러지다 보니 고된 농사일이 면제되서 그럴까? 아무튼 소들이 사람을 반기는 걸 보니 이곳 사람들의 품성도 그런 모양이다.

 

나는 바람 같이 갔다가 이슬 맞은 풀잎처럼 누웠다가 아침해를 맞는 나팔꽃 같이 일어나 람보처럼 돌아왔다. 가까운 미래에 다시 멀대의 고질병인 역마살이 일 것이라는 예감을 남겨 둔 채! 나는 거함이 자유로운지라 언제든지 동하면 다시 찾을 것이다. 

 

촌음 같은 시간이었지만, 먼저 묵고 간 친구들이 하나 같이 봄기운과 함께 동대산 정기를 흠뻑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두 고교 시절의 역부역강한 청년으로 되돌아 갔기를 希願한다.

 

내게 동대산은 필히 봄이 가기 전에 올라봐야 할 무슨 거창한 프로젝트처럼 느낀다. 동대산에 올라 "태산에 오르고 난 뒤에야 천하가 작다는 걸 았았다"(登泰山而小天下)라고 한 공자의 호연지기를 체현해보고 싶다. 머잖아 동대산에 오르고서야 동해가 작다는 걸 알리라! 쟁암당이야 길손에게 마음의 플래폼으로 자리하지만, 자기자신도 믿기 힘든 이토록 복잡한 세상사에 이 봄이 지나면 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겠는가? 수가 영 없는 건 아니다. 봄을 잡아 붙들어 매어놓으면 된다. 길손들이 다 떠나고 없으니 나라도 가는 봄을 막아 선다! 봄아 가지 마소고마!

 

2021. 3. 24

동대산 안골 쟁암리에서 초고

4. 7. 14:35 완고

雲靜

 

 

해거름에 도착해서 동대산 안골의 친구 집으로 가는 길에 집 뒷쪽의 산정이 시작되는 아래 부분까지 가봤다. 폭포가 있는 터에 흡사 별장 같은 집이 있는 곳이었다. 집주인도 집 입구에 "쟁암산장"이라고 써놨다. 운전해서 나를 그곳까지 데려가서 보여준 친구가 언젠가 집 주인과 인사를 틀 것이라고 했다. 가는 길에 산 그림자가 드리운 서낭당 같은 孤家 한 채가 저녁을 맞고 있다.
내가 "쟁암당'이라고 이름 붙인 이 곳의 지번이다.
쟁암당의 주인장이 친구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또 봄을 맞는 의미로 활짝 핀 참꽃과 개나리꽃을 꼿고 있다. 쟁암당의 봄은 친구들과 같이 오는 셈이다.
친구들을 환영하는 뜻에서 매단 풍선들
먼저 다녀간 친구들(포고 제27회 3학년 4반 반창회 친구들)
요즘도 제 역할을 하는가 보자! 제대로 붙어 있기는 하나? 친구야 가지는 밭에서 따셔야죠? ㅋㅋ
반창회 회장님의 금일봉 희사가 있었던 갑네요. 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보기 좋심더!
山紫水明의 강과 魚玆豊漁의 바다가 만나는 고장 영덕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별미인 듯!
3월 24일 아침 7~8시경 쟁암당에서 본 앞집의 자두나무. 이제 막 꽃망울이 보일락말락한 상태다.
아침에 꽃망울이 이제 나오나 싶더니만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단 4~5시간 만에 거의 呱呱聲을 터트렸다. 봄이 너무 바쁘다! 경이로움의 극치요, 物極의 포착 순간이다. 해서, 멀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즉흥시를 한 수 날렸다. 동대산 자락에도 찾아든 봄/꽃을 피우려고 저토록 바쁘구나/봄아 그렇게 허겁지겁 가지 말게/꽃들도 지지 않고 싶고/그러지 않아도 세월이 流水라네// 나 혼자라도 느릿느릿 뒤로 걷는다/눈이 초롱초롱하던 시절/되돌아 갈 수 없는 그 시절/어느덧 한 갑자도 더 돌았구나/뒤로 걸어도 닿지 않는 곳/너무 많이 왔다네// 꽃이여 지려거든 피지 마소/ 피거려든 느린 걸음으로 피소/세월아 가려거든 오지 마소/오려거든 소걸음으로 오소/ (출처 : https://m.blog.daum.net/suhbeing/1098)
쟁암당 앞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냇가. 이 물은 동해 바다로 들어간다. 냇가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두 길 다 쟁암당 맞은 편의 밭과 산으로 통한다. 냇가에 널브려져 있는 돌들의 색깔을 보니 이 근처 산에 시멘트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냇가를 따라가다 보면 우사가 나온다. 소의 굵은 두 눈을 보면 언제나 소는 가만 있는데 내 두 눈만 촉촉해진다. 세상의 슬픔이란 슬픔을 다 머금고 있는 듯 해서다.
코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맻힌 걸 보니 건강하다는 증거다.
내가 소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듯이 소도 나를 보고 생각을 할 것이다. "멀대야 여긴 왜 왔냐?"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 없이 혀를 내미는 소들이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다는 걸 말해준다.
영덕역에서 기차를 타고 포항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에 갔더니 낯익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신라 향가 헌화가의 실제 상황이 일어난 곳임을 알리는 내용이다. 예전에 수 년 전에 와서 꽃을 따주기 위해 절벽 같은 곳을 내려 갔다고 하는 실제 현장을 찍은 사진이 있는데, 지금 찾아 보니 찾을 수가 없네요. 그 산은 영덕으로 넘어가는 군계의 다리 건너 왼쪽에 있는 조금 가파른 산이다.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서 버스를 타려고 큰 길 국도로 나가다가 보게 된 골목에 있는 남정초등학교. 쟁암당 주인장이 어렸을 적에 다녔을 학교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를 생각하면서 한 컷 찰칵!
봄이 떠나는 듯이 자신도 막 절정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백목련. 길손도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