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문의 수필 6

고향의 氣와 나

고향의 氣와 나 氣란 보통 자전적 의미로는 “활동하는 힘”, “숨 쉴 때 나오는 기운”을 말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기의 개념은 약간 다르다. 16세기 말부터 전래된 서양의 종교와 과학의 영향으로 큰 변화를 겪었지만, 기는 보이는 물질세계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작용과도 관련돼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보통 원리, 근원, 본질로 인식되는 理에 반해 그것이 드러나는 현상, 작용, 물질 등으로 정의된다. 기라는 건 서양인들에게는 없던 개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기”라는 단어도, 관련된 말도 없었다. 그들에겐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쓰고 있는 “기를 받는다”, “기가 막히다”라거나 “기가 약하다” 따위의 표현들을 서양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번역을 해줘도 바..

아버지의 삶과 아들

아버지의 삶과 아들 행동은 자신의 성격과 생각의 반영이다. 크게는 한 사회, 한 민족의 문화적 습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자기 운명을 결정한다. 나는 우유부단하고 패배적인 생각에 젖어 사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또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도 싫어한다. 어떤 일이든 신중하게 결정하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강단 있게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한때 모험과 도전의식이 충만한 시절,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간 그 좋다는 언론사 기자직도 근무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30대 초반에 미련 없이 던져 버렸다. 그리곤 단돈 50만 원만 달랑 들고 유학길에 나선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의 선친은 내가 싫어하는 성격 여러 개를 한 몸에 모아놓은 분이셨다. 나는 아버..

인연 Ⅳ

인연 Ⅳ 인연이란 마음에 새겨진 마음의 도장인 모양이다. 마음속에 인주로 선명하게 찍혀 있기 때문일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인연이 있다. 당사자들이 원하는 바대로 이뤄지는 것만 인연이라고 할 순 없다. 특히 이성 간의 인연은 만남의 지속이나 결혼의 성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에서 몸은 서로 떨어져도 마음이 끊어지지 않으면 그 또한 인연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인연의 대상이란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강도나 진폭이 다른 주관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나에겐 인연이 있다거나, 인연이 없다거나 할 때 그것은 성사에 초점이 맞춰진 건 아니다. 인과 연 그 자체를 말할 뿐이다. 지금까지 나를 거쳤거나, 아니면 스쳐 지나갔거나 한 수많은 인연들 중에 나는 한 인연을 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

인연 Ⅱ

인연 Ⅱ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만, 만나고 헤어짐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의 인연이다. 애틋하게 만나고 싶어도 한 번 보고는 평생 동안 못 보고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는데도 자주 얼굴을 맞닥뜨리게 되는 이도 있다. 그야말로 애별리고(愛別離苦)요, 원증회고(怨憎會苦)이다. 생각나는 사람이 많은 계절의 이 가을날 오후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오늘은 약 30년 전 30대 초반의 타이완 유학 시절 타이베이 시내 한국 사찰의 법회에서 인연이 된 한 스님이 몹시 생각난다. 그분은 道山이라는 법명을 가진 젊은 한국인 선승이었다.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비구승으로 파르스름한 깎은 승발이 퍽 인상적이셨던 분이었다. 스님은 출가 전 세속에서 대..

인연 Ⅰ

인연 Ⅰ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맑고 푸른 하늘, 곱게 물든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초겨울, 문득 고등학교 때 배운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이 떠오른다. 피천득 선생이 젊은 시절 일본 체류 때 하숙집 주인 딸과의 만남을 얘기한 수필이다. 내용 중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대목을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가즈미(和美)와 두 번 만났다. 그리고 십여 년 넘게 소식이 끊겼다가 세 번째는 만나지 못하고 아니 들었어야 좋았을 소식만 들었다. 가즈미는 나와 결혼 인연이 될 뻔했던 일본 오사카(大阪)의 재일교포 3세였다. 당시 그는 아름다운 자태의 방령 24세였고, 나는 그보다 세 살이 많은 27세의 더벅머리 청년이었..

지금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친구

지금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친구 서상문(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30여 년 전 가랑비 추적추적 내리는 늦가을의 어느 날 오후, 젊은 두 사내가 포항 남빈동 선창가 뒷골목의 한적한 선술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였다. 한 친구가 앞에 앉은 다른 친구에게 그윽한 눈빛으로 말없이 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둘은 서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한 친구는 술을 잘 마셨지만, 다른 한 친구는 술을 즐기지 않았기에 잔만 받아 보조를 맞췄다. 주기가 거하게 돌면 “인생이 어떻고, 저떻고”가 ‘싯가’ 요리 보다 더 맛있는 안주였다. 고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비오는 양산도’ 가락으로 실내는 벌써 사람들 보다 더 취했다. 그 시절,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그냥 만나기만 해도 좋았다. 이것이 스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