監察과 査察
서상문(사단법인 세계 한민족미래재단 이사)
민간인 査察로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총선과 맞물려 민심까지 출렁인다. 監察과 査察은 모두 한자다. 글자 한 자 차이지만 사회적 함의는 천양지차다. 監과 査의 어원과 출전을 살펴보면 監은 “보다”(爾雅), “위에서 아래로 눈을 크게 뜨고 보다”(說文), “거울삼아 비추어 보다”, “전례나 현재의 사정을 감안해 판단하다”(漢書)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監察은 “눈을 부릅뜨고 조사하다”, “감독하다”는 뜻으로서 황제 아래 각지 제후들을 감시하고(楚辭), 지방의 5郡을 감시한다(後漢書)는 의미를 지녔다. 또한 감찰직의 직위, 즉 監察御使처럼 “관(官)”을 가리켰다. 査는 “조사하다”의 뜻이 있어 査察은 “용의자를 자세히 문초”하거나 “신문”하고, “공죄가 있는지, 상벌이 있는지 조사하는 것”(福惠全書)를 의미했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감찰은 국가 감찰기관이 공무원을 감시하는 공무기능이 있는 반면, 사찰은 특정인을 강도 높게 조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감찰과 사찰의 행위가 포개진 것으로 ‘監査’가 있는데, 국정감사를 보면 의미를 금방 알 수 있다. 오늘날 정당한 직무감찰은 적법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공무원이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비리와 탈법을 저지르는 행위를 대상으로 삼는 게 감찰이다. 하지만 정당한 직무감찰이라도 도청, 도촬과 미행은 위법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나 탈법적 수단을 동원해 뒷조사를 하는 비정상적 사찰도 불법이다.
인간은 어느 정도 이중성과 모순 그리고 감추고 싶은 내밀한 부분을 가지고 사는 존재다. 일심동체라고 하는 부부 사이에도 때로 감추고 싶거나 보이지 않고 싶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폐쇄회로(CCTV)에 찍히고, 통화내용이 도청되거나 누군가가 촬영, 미행, 뒷조사 등의 부정한 수단으로 자신의 행동을 조사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불안과 초조와 분노를 느끼지 않겠는가? 또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감시가 전사회적으로 일상화 되면 나중엔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 극도의 불신사회가 된다. 소련과 북한 같은 공산체제가 좋은 예다. 기승을 부린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학자 등 사회 전분야에 걸쳐 무차별 사찰된 결과 언론자유가 크게 위축되고, 시민들이 불안한 삶을 보낸 1950년대 미국도 한 때 그랬다.
따라서 민간인 사찰은 부동산실명법 위반 혹은 선거법 위반보다 훨씬 더 심각한 범죄다. 앞의 두 경우는 경제정의나 정치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지만 후자는 인간과 가정을 파탄내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히스테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청과 미행감시는 국가안보를 위해 부득이 음지에서 ‘더러운 일’(dirty job)을 수행하는 국가정보기관이 할 일이다.
이번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은 조사의 주체나 목적, 대상, 수단 면에서 위법, 탈법, 범법, 직권남용 행위였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무가 있는 국가공무원이 오히려 위법, 탈법, 범법을 주관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주인을 보호하라고 뽑아놓은 머슴이 도리어 주인을 감시하고 뒷조사한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건의 몸통으로 밝혀진 행위자는 물론 여권지도자들까지 이에 대해 반성은커녕 역대 정권도 그랬으니 괜찮다는 주장을 펴거나 “그게 뭐 어때서?”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불법행위를 정당화, 호도, 책임전가를 행하는 도덕불감증과 무신경이다. 이들에게는 과거 백악관이 도청을 지시한 증거로 드러난, 메모지에 적힌 ‘WH’(White House)이라는 단 두 글자 때문에 닉슨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민간인 사찰은 좌우이념을 넘어 국민의 기본권문제다.
위 글은『경남여성신문』, 제267호(2012년 4월 10일~4월 16일)에 실리기 전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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