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술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해군발전자문위원)
술은 성서에 나와 있듯이 인류와 시원을 같이 한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오랫동안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실이 암시하지만 술이란 잘 마시면 약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독이 된다. 적당한 음주는 중추 말초 신경을 흥분하게 하고 위산과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 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시켜 기분을 좋게 만든다.
반면 음주가 지나치면 판단력에 장애가 생기고, 말초신경이 둔해져 순발력이 떨어지고 행동도 둔해진다. 닭이 물을 먹을 때 한 모금 먹고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한 모금씩 마시는 모습을 상형화한 술 주(酒)자의 유(酉)가 닭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오후 5~7시의 뜻도 있듯이 술은 이 시간에 천천히 마시는 게 좋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과음으로 인한 불상사가 끊이지 않는다. 부처가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음주의 해악을 경계한 이유다.
전쟁에서도 잘 활용하면 승리의 에너지로 분출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패배로 직결되는 게 술이다. 술이 승전 요인이 된 경우는 1936년 국공내전시 국민당군의 추격에 쫓겨 피로에 지친 중공군 병사들이 마오타이주를 마시고 사기를 회복해 장정에 성공한 예가 있다. 패배의 원인이 된 예로는 술에 취한 트로이 병사들이 목마에서 나온 그리스복병들에게 당해 결국 나라가 망한 트로이전쟁이 대표적이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길흉 양면의 기능을 지닌 술을 군 지휘통솔과 병사의 사기진작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활용했다.
첫째, 공은 술 자체를 즐기는 취향이 아니어서 객수를 달래거나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진 않았다. 여느 장수라면 경각지추의 전란 중 촛불 아래 홀로 나랏일을 걱정하고, 병든 팔순 노모 생각으로 밤을 지새울 때 술로 시름을 달래기도 하련만 공은 결코 술에 의지하지 않았다. 또 시인묵객들이 시를 지을 때 대개 술을 마시는 것과 달리 시를 지을 적에도 입에 대지 않았다.
둘째, 전투 중에는 일체 음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금주로 병사는 물론 지휘관의 절제력 저하, 이성과 몸의 마비로 인한 과오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또 술주사도 없었고 이를 용납하지도 않았다. 크게 취한 경우에도 취중실언이나 장수로서의 권위나 위엄과 신의가 손상되는 언행을 삼가하는 등,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셋째, 술을 마실 경우는 상관이나 명나라 장수들을 대접할 때였고, 꼭 관련자들을 불렀다. 병사들에게는 포상과 사기진작을 위한 단체 회식시에만 음주를 허여했다. 출전이나 훈련으로 심신이 피곤한 장병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고, 심리적 안정과 전우애를 높여주기 위해 회식을 자주 베풀어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회식은 반드시 전투휴지기에 이뤄졌다. 회수는 1592년 6회, 93년 13회, 94년 27회, 95년 20회, 96년 47회, 97년 6회, 98년 4회로 전쟁 전 기간 동안 최소 123회 이상이었다. 공에게 술은 평소 엄한 신상필벌로 조성된 부하들의 긴장을 녹여주는 윤활유였다.
임진왜란 발발 420주년인 오늘, 누란지국의 상황에서 용병술로 승화된 공의 술을 한 잔 받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낚아 올린 잉어의 파닥이는 힘으로 왜구를 움켜잡듯이 두 손으로!
위 칼럼은 2012년 4월 12일자『국방일보』에 '충무공 이순신과 술'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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