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紹珩의 가르침과 雲靜
“지혜로운 자는 운명과 다투지 않고, 법과 다투지 않고, 公理와 다투지 않고, 권세와 다투지 않는다.”
중국 명말청초의 문인 陸紹珩이 한 말이다.(7권이 남아 있는 『醉古堂劍掃』, 1624년 간행)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어떤 맥락에서, 혹은 어떤 연유에서 육소형이 이런 말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의 대표작인 『취고당검소』가 格言과 警句를 모은 文集인 점을 보면,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일이 계기가 돼 위와 같은 말을 한 게 아니라 평생을 살면서 겪고 경험한 데서 우러나온 교훈이 아닐까 싶다. 육소형이 보기에 자신의 이 가르침에 고분고분하지 않게 살아온, 현재도 그렇게 살고 있는 雲靜은 현명하지 못한 鈍士일 터다.
운명, 법, 공리, 권세는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하거나 혹은 세상을 지탱하는 것들이다. 육소형은 이 네 가지와 다투지 말라고 했다. 雲靜은 지금까지 반생 이상을 살면서 이 네 가지 중 앞 세 가지와 많이 다툰 편이다. 지금도 다투고 있는 중이다.
누구에게나 타고날 때 제각각의 운명이 있다고 하는 사주와 팔자는 평소 통계와 확률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하고, 때론 기를 모으겠다는 의지 차원에서 귀를 열기도 한다. 雲靜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네 기둥을 옮겨보겠다고 의식하거나 각오하고 거스른 건 아니다. 다만 세상이 바람직하지 않아서 그런 상황과 작위들을 깨어버리거나 극복하려고 한 약간의 노력을 했을 뿐이다. 과거가 그랬고, 지금도 동일선상에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법과도 적지 않게 다투었다. 어제도 다투었다. 오늘도 다투고 있다. 내일도 다툴 것이다. 왜냐고? 법과 다투지 않게끔 하려고 법과 다툰다. 세상의 법이란 그믐날 밤의 등댓불이기도 하지만 오랏줄 같은 질곡이기도 하다. 기울어지거나, 삐딱하게 선채 굴러가는 세상을 두고만 보기엔 雲靜의 양심이 부끄러움을 타기 때문이다. 영화 '친구'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준석이가 한 말처럼, 불의나 비합리적, 권력공학적 부조리(알베르토 까뮈의 개념 차용)를 보거나 당하고도 가만히 모른 채 눈감고 있으면 “쪽 팔리서!”
나는 공리와도 다투고 있다. 반평생을 다투고, 무덤까지 갈 때까지 다툴 것이다. 공리란 누가 봐도 반박할 수 없는 자명한 이치다. 1+1=2 같은 수학의 정리와 같다. 테오램이라고 한다. 이것과도 다투면 재미지다. 쾌감을 느낀다. 자명한 것으로 인식되는 공리나 상식을 의심하고 재검토하거나 관점을 바꿔 다시 봐서 뭔가 기존의 것과 다른 내용이나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게 되면 마음이 뿌듯하다. 성취감에 배가 부르다.
그래서 공리인 것처럼 받들어지는 것도 무신경하게 그대로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았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역사학의 治學이 기존의 사실과 설, 상식과 정론이란 걸 회의하고 의심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의심과 회의는 폭이 크면 클수록, 결이 미세하면 미세할수록, 理가 精緻하면 정치할수록 세상이 바로 서거나, 혹은 최소한 갈지자걸음을 걷지 않게 되는 기반이 된다는 걸 의심 없이, 회의하는 거 없이 굳게 믿기 때문이다.
다만, 권세는 쫓지 않았다. 명리도 추구하지 않았다. 부도 쫓지 않았다. 의는 추구하느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긍정할 만큼 충분하고 찰지겠는가? 본을 팽겨치고 말을 쫓는 비루함은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자위한다. 天地人의 힘, 즉 천운, 지운, 인운이 계기적으로 조화롭게 모아져야만 되는 권세만은 운명을 거슬리지 않고 산다. 오면 오는 것이고, 가면 가는 것이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내버려둔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육소형의 가르침 중에는 100% 동의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아래처럼 말이다.
“말을 적게 함은 貴에 해당하고, 저술을 많이 함은 富에 해당한다. 맑고 밝음을 지님은 수레에 해당하고, 좋은 글을 곱씹는 것은 고기에 해당한다.”
이 말에 대해선 달리 토를 달 생각이 없다.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실행이 부족하긴 하지만 말이다. 박복하게 태어난 雲靜도 육소형의 편달에 卽해서 이번 생에선 한 번쯤은 貴하게 되고, 富하게 되고, 수레를 타고,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음미하고 싶어서다.
2019. 7. 13. 10:16
臺灣 中央硏究院 近代史硏究所 硏究室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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