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修羅場'이라는 말의 유래
아수라장이 어떤 곳인지 가장 쉽게 연상시키는 것은 화재 현장이나 전장터일 것이다. 50대 중반 이상의 나이 든 사람들은 대부분 1970년대(1971년 12월 25일)초의 대형 화재 사건이었던 서울의 대연각(大然閣)호텔 화재 참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1974년 발생한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사고와 함께 호텔화재로는 세계 최대로 꼽히는 대형 화재사고였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불은 1층의 호텔 커피숍에 있던 프로판 가스통이 폭발해 지은 지 얼마 안 된 가소성 재료를 많았던 호텔 내부로 옮겨붙어 호텔 전체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당시 초등 6학년이던 나는 동네 선주 집의 흑백 TV에서 보도되고 있던 생중계를 봤는데, 수많은 투숙객이 유독가스와 열기를 이기지 못해 호텔 창밖에 매달려 구조를 소리치거나 다급하게 그냥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이런 곳이 아닌가 싶다.
수많은 소방차들과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됐고, 주한미군의 소방차와 헬리콥터까지 투입돼 인명구조를 했지만 고가 사다리차가 8층 높이밖에 도달할 수 없어 그 이상의 고층에 투숙한 손님들의 구조는 불가능했다. 당시 TV에 방영됐는지는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박정희 대통령까지 현장에 나와 화재진압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래도 대형 참사는 피할 수 없었다. 호텔 옥상에는 헬리포트가 없어 헬기 구조가 어려웠고 옥상으로 통하는 문마저 잠겨있어 많은 투숙객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화재에서 163명의 많은 사망자가 속출했고, 부상자도 63명이나 됐다.
통상 이런 대형 화재로 인한 참사현장은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한다. 아수라는 고대 인도에서는 여러 사투리 중 하나인 산스크리트어로 asur로 불렸는데, 중국인들이 이를 한자로 번역하면서 阿修羅로 음사한 것이다. 또 한자어로는 ‘아소라’, ‘아소락’, ‘아수륜’ 등으로 표기하며 약해서 ‘수라’(修羅)라고 하는데, ‘추악하다’라는 뜻이다.
아수라는 고대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착한 신(善神)이었는데 후에 하늘과 싸우면서 못된 신(惡神)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아수라는 벌써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 개인 흉칙하고 거대한 모습에서부터 친근감과는 거리가 먼 존재다. 실제로도 아수라는 화를 잘 내고 성질이 포악해서 좋은 일이 있으면 훼방 놓기를 좋아하는 동물인데, 욕심 많고 화 잘 내는 사람이 죽어서 환생한 축생(畜生)이라고 한다.
이처럼 축생으로 환생을 하는 아수라는 그 환생의 틀인 윤회의 여섯 세계를 가리키는 六道 팔부중(八部衆)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수라는 증오심이 가득하여 싸우기를 좋아하므로 전신(戰神)이라고도 불린다. 인도신화에는 그가 하늘과 싸워서 하늘이 이기면 풍요와 평화가 오고, 아수라가 이기면 빈곤과 재앙이 온다고 한다. 인간이 선행을 행하면 하늘의 힘이 강해져 이기게 되고, 악행을 행하면 불의가 만연하여 아수라의 힘이 강해진다고 한 것을 보면 인과응보의 업(Karma)설이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수라는 나중에 불교에 받아들여져 불교에서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됐다. 불법을 여타 악신이나 마굴들로부터 지키려면 부처는 흉폭하고 싸움에 능한 자를 기용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질투심이나 시기심이 강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이미지화 돼 있다. 귀신인 아수라는 줄여서 흔히 수라라고 하며, 아수라장도 수라장이라고 약칭한다. 늘 싸우기를 좋아해서 제석천과 싸움을 벌였다는 아수라가 제석천과 싸운 마당을 가리키는 아수라장은 싸움 따위로 혼잡하고 극도로 어지러운 상태에 빠진 곳이다.
흔히 우리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나 니전투구의 싸움 혹은 그 밖의 다른 사건 사고로 큰 혼란에 빠진 곳을 아수라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비슈누신의 원반에 맞아 피를 흘린 아수라들이 다시 공격을 당하여 시체가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으로 나오는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격으로부터 ‘아수라’라는 말은 비단 불교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이성을 잃은 성냄(노도), 情念, 아귀다툼의 싸움, 화재 현장처럼 아비규환 등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하게 흐트러진 현장이나 극도의 혼란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아수라들은 모여서 싸움뿐만 아니라 놀고 있는 모습도 엉망진창이고 시끄럽고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요사이 언론에서 자주 “동물국회”라고 보도되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가 바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탐욕과 비양심 때문에 극한 비방과 욕설에다 몸싸움까지 벌이는 '많은' 국회의원들은 정말 인면수심의 아수라처럼 보인다.
2019. 5. 8. 07:57
臺北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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