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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廣舌’이라는 말의 유래

雲靜, 仰天 2019. 5. 7. 14:23

長廣舌이라는 말의 유래

 

저 양반, 마이크를 한번 잡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주저리주저리 끝낼 줄 모르고 이야기를 늘어놓는 장광설이야!”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바로 장광설이라면 백선엽 장군과 몇 년 전에 사망한 채명신 장군을 빼놓을 수 없겠다 싶다. 백선엽 장군은 말을 한번 시작하면 자신이 어릴 적 평양에서 자란 얘기부터 시작해서 광복 후 자기가 고당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도 있었다는 둥 광복 후 북한의 정치상황에다 3년이 넘게 진행된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거둔 전적 얘기까지 다 늘어놓는 장광설이다.

 

같은 북한 출신인 채명신 장군은 이 보다 한 수 위 같았다. 그는 심지어 학술 세미나에서 간단한 축사인사말을 부탁 받은 자리임에도 축사로 자신이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 얘기에서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베트남 파병에 이르는 얘기까지 40분이 넘도록 해댔으니까 말이다.

 

당시 세미나 현장에서 다른 외국인 학자들과 같이 인내하면서 듣고 있던 나는 속으로 한국전쟁 관련 세미나이긴 했지만 도대체 자신의 월남에서부터 베트남 참전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사가 국내학자들뿐만 아니라 외국학자들까지 초청해놓은 국제학술 세미나에서 꼭 해야 할 말인가, 도대체 자신의 개인경험이 세미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라고 혀를 끌끌 찬 적이 있다.

 

요즘도 어느 자리에서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선 이런 식으로 장광설을 늘어놓는 혓바닥이 긴 위인들을 심심찮게 본다. 한자로 長廣舌이라고 쓰는 장광설은 단순히 말이 길다는 의미는 아니다. 때와 장소와 주제와 분위기에서 동떨어진 얘기를 남들의 기분이 어떨지 아랑곳없이 혼자서 길게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길고 넓은 혀라는 이 長廣舌이란 어디서 비롯된 말일까? 장광설은 언뜻 보기에 불교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도 불교에서 나와 세간에서 변화된 말이다. 그 맥락은 대체로 아래와 같다.

 

어느 종교나 그 종교를 창시한 교주에 대한 신격화가 이뤄지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다. 불교에서도 비슷하다. 부처의 생긴 모습은 일반 범인과 다르다면서 용모상의 특징을 묘사해놓은 것이 그 한 예다. 부처는 깨달은 각자로서 일반인과 크게 32가지가 다르고 구체적이고 자세하게는 80가지가 다른 특징이 있다고 하는 것이 그 예다. 이를 부처의 ‘3280種好라고 칭한다. 여기엔 석가모니의 신체상의 특징을 각 부위 마다 자세하게 설명해놨는데, 심지어 부처의 성기 모양과 특징까지 어떠하다고 묘사돼 있다.

 

장광설은 바로 이 32상들 중의 하나인데 원래는 廣長舌이다. 즉 부처의 혀는 넓고 길다랐다는 것이다. 32상의 설명으로는 부처의 혀는 길게 내밀면 머리카락 끝부분이나 귀에까지 닿을 정도라고 한다. 32상에는 이것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라고 되어 있다. 부처의 혀는 실제로 일반 범인 보다 더 크고 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혀끝이 머리끝에까지 도달한다는 건 아무래도 조금 과장이 섞여 있는 거 같다. 후세 석가모니 사후에 불경을 결집한 제자들이 석가모니의 혀를 이렇게까지 길다고 묘사해놓은 까닭은 아마도 석가모니가 오랜 수행 끝에 득도한 뒤 열반에 들기 직전까지 49년 간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펴면서 말한 것이 내용도 너무나 위대하고 그 분량도 엄청나게 광대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광장설이 세간에 사용되면서부터 앞뒤 두 자가 서로 바뀌면서 장광설로 궂어버린 것이다. 장광설은 광장설이 가지고 있는 비유적 신화성은 걷어지고 길고도 세차게 잘하는 말솜씨”, 또는 그 대척점의 부정적인 의미로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나는 평소 일본인들이 영어에서 번역한 금언들 중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는 말을 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사에서 나 혼자만의 개인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에 직면한 경우처럼 정말 말을 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금이 아님은 물론, 동보다도, 아니 철보다도 못하다고 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급적 말을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간혹 장광설이 필요할 경우도 없지 않아서 말을 해야 문제가 해결되고 변화가 있듯이 정말 말이 필요할 때 장광설은 침묵 보다야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발언으로 전하거나 얻고자 하는 효과 면에선 주제와 분위기 그리고 핵심 요지를 벗어난 긴 발설은 아니 함만 못하다. 이크~ 나도 모르게 긴 설명의 장광설이 된 게 아닐까!

 

2019. 5. 7. 09:38

臺灣 臺北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