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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 이야기 : 불교용어에서 비롯된 한자어 나락, 분별, 아귀

雲靜, 仰天 2019. 5. 4. 15:53

한자어 이야기 : 불교용어에서 비롯된 한자어 나락, 분별, 아귀

 

화창한 봄날의 한국과 달리 이곳은 찌뿌둥하고 우중충한 날씨인데, 아침 두뇌운동 삼아, 치매예방조로 한자어 이야기서너 개 읊었다.

 

奈落

가끔씩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표현을 보고 들을 것이다. 그런데 나락은 무슨 뜻일까? 어디에 떨어졌다는 소릴까? 한자로 奈落那落으로도 쓴다. 중국어에서는 두 단어가 발음도 같은데, 중국어음을 한글로 표시하면 나루어’가 된. 고대 중국인들이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번역을 할 때 산스크리트어인 naraka를 소리와 비슷하게 음사했기 때문이다.

 

나락은 지옥을 뜻하는 불교용어다. 즉 지옥의 다른 말이라고 알면 된다. 물론 지옥이라는 한자어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죄업을 짓고 극심한 괴로움의 세계에 태어난 중생이나 그런 중생의 세계를 가리킨다.

 

 

지옥의 상상도

 

이 말이 불교의 범위를 벗어나 일반인들 사이에도 사용되기 시작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여타 어려운 일과 다른 차원의 고통이다. 지옥 같은 상황이 연속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번 나락에 떨어지면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 정말 나락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매사에 진중하게 잘 살면 좋겠다.

 

分別

불교도에게 분별 혹은 분별심이란 단어는 익숙한 말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분별보다 분간, 구별, 변별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통상 분별은 한자의 뜻 그대로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하여 가른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예문을 하나 들어보자.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쌩 거짓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귀천의 분별이 없어졌기는커녕 더 가리고 따진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 분별은 지각과 유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 친구가 내게 하는 말이지만, “雲靜은 어디서든 분별 있게 행동하는 지구인이다와 같이 세상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을 뜻하기도 한다.

 

분별의 이러한 뜻풀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의 원래 의미가 많이 살아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분별은 본래 '지식에 의지해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퍼뜩 이해가 되진 않겠지만 불교에서는 지식에 의지한 이해는 번뇌를 일으킨다고 가르쳐지고 있다. 그래서 선사들은 옛날부터 분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즉 직관하라고 가르쳐왔다. 언어를 통한 사물인식은 본질적으로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별은 번뇌에 끄달린 인간의 잘못된 인식을 말하기도 한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생각하여 헤아린다는 뜻의 思量과 유사한 의미로 쓰인다.

 

餓鬼

요즘 한국 정치판의 여야 정치인들이 각자의 셈법과 이해득실의 저울질에 따라 허구한 날 서로 박 터지게 싸우는 것을 보면 정말 '아귀다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귀란 한자 뜻 그대로 배가 고파 허덕이는 귀신인데, 보통 염치없이 먹을 것을 탐하는 사람이나 성질이 사납고 지독히 탐욕스러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영화 타짜에 나오는 아귀를 떠오르면 이해가 빠를 거다.

 

그런데 이러한 아귀는 불교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존재다. 모든 존재는 해탈하지 않는 한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여섯 세계를 돌고 돈다는 윤회설을 설정해놓은 불교에서 아귀는 사후 餓鬼道에 떨어진 망자를 가리킨다. 아귀도는 늘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고통을 받는 세계인데, 생전에 지은 죄의 과보를 받아 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불교의 계율을 어기거나 탐욕을 부려 아귀도에 떨어져 사는 아귀의 모습은 어떨까? 한 마디로 못 먹어서 괴로워하는 귀신을 상상하면 된다. 굶어서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배는 엄청나게 큰데 목구멍은 바늘구멍 같아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늘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걸신 들린 듯이 게걸스럽게 먹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배만 큰 아귀 모습의 상상도

 

돈에 환장하듯이, 걸신 들린듯이 돈을 쫓는 현대인이 바로 그런 아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허우대야 멀쩡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귀와 다를 바 없다는 소리다.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 일이지 아귀처럼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9. 5. 4. 08:14

臺北 寓居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