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살다간 박경리 선생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 오전, 한국 현대문학의 큰 별 박경리 선생의 문학공원을 찾았다. 선생이 살았던 원주시 단구동 집터에 세워진 기념관에서 그의 육성 비디오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문학의 경계를 넘어 가장 순수한 인간의 모습, 즉 자연합일의 삶을 살다 간 한국현대사의 거목의 육성을 직접 듣는다는 게 무척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눈물의 정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생명은 제각기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한 선생의 육성을 듣고선 내가 평소 생각해온 것을 선생도 똑같이 했으며, 작은 규모이지만 나 역시 그것을 실행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애오라지 일말의 영성이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기뻐할 일이 아니다. 선생은 가식 없기로는 최상의 상태인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신의 생각과 일치되는 자연합일의 삶을 살다 갔지만, 나는 거짓과 가식과 술수가 부나방처럼 횡행하는 穢土에서 생각만큼 실천이 따라주지 않는 부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 ‘토지’라는 대작 너머에 참인간의 모습을 봤다. 연민이 자연스레 자연이 된 그에게 사는 것이 자연이었다. 한 인간에 대한 숭고함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모든 생명 있는 존재를 피붙이처럼 보듬고 사랑하다 허공처럼 다 비우고 생명의 근원인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한 선생의 의지와 삶일 것이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선생이 운명하기 몇 달 전에 하신 이 말씀이 다시 한 번 귓전을 울린다. 편히 쉬소서!
2018. 10. 23. 16:42
원주발 청량리행 열차 안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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