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삶/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도주의를 정치적으로 거래하는 민족, 이젠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雲靜, 仰天 2018. 8. 26. 08:20

인도주의를 정치적으로 거래하는 민족, 이젠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눈물의 이산가족 상봉이 또 다시 재현됐다. “정말 살아 있을 줄 몰랐어요!” “살아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속상하다.” 한 이산가족이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면서 밝힌 착잡한 심경이다. 헤어질 때면 “어머니, 건강 하시라요.”라는 말 외에 그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들이다.
 

이런 가슴 아픈 장면을 보는 것도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만 남지 않은 그들이 가고나면 끝이다.

상봉을 최초로 실시한 지난 1985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그때마다 이런 장면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마치 내 자신이 헤어진 부모 형제를 수십 년 만에 만난 감격을 느끼게 한다. 낯익은 데자뷰다.

 

한편으론 참으로 딱하고 부끄러운 모습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 민족만이 있는 비극이자 통탄스런 광경이니 말이다. 지구촌을 뒤덮은 냉전의 먹구름이 걷힌 지 언젠데 아직도 이러한 냉전의 잔재가 재연되고 있단 말인가?
 
이젠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정례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을까? 그게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다. 남북 이산가족 만남이 정치적인 거래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벤트 행사하듯이 말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신성시 되고 존엄이 지켜져야 할 헤어진 부모형제와 가족 간 상봉이라는 인도주의가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었다는 소리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잠시 만나게 해선 서로 부둥켜안고 울다가 또 눈물의 작별을 되풀이 하게 할 것인가? 이들이 만나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2박 3일 총 12시간뿐이다. 꿈만 같은 찰나의 짧은 만남으로 평생의 그리움과 한들이 풀릴까?
 
며칠 보고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 없이 헤어지게 한다는 건 헤어짐 보다 만남이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잔인한 일이다. 또 아직도 혈육을 만나지 못하게 한 가족들에겐 가슴을 멍들게 하는 야만적인 처사다. 제발 가족상봉 만큼은 인도주의적으로 정례화 해줄 수 없는가?

 

중국과 대만도 우리처럼 지난 세기 내전으로 인해 분단된 관계에 있지만 그들은 가족상봉을 이미 1989년부터 개시한 뒤로 지금은 단순히 정해준 장소에서 잠시 며칠 만나는 상봉을 넘어 자유롭게 가족, 친지방문을 하도록 했다. 그들은 이미 거의 모든 이산가족이 상호 방문을 다 마친 듯하다. 중국과 대만의 양 정치권이 서로 적처럼 다툴지라도 민중적 차원에서는 원한이 희석되도록 사무친 그리움의 한을 풀어준 것이다.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이여! 제발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하루라도 빨리 합의를 봐서 상호 방문이 이뤄지게끔 해주길 바란다. 특히 김정은은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 되지 못한 것은 거의 모든 원인이 인도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 북한 정권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8~90세 고령의 그들이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는가?
 

체제유지니, 생존이니, 미국의 위협이니, 그 어떤 말로 변명해도 통하지 않는 부분이 이산가족의 상봉을 정례화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이용하는 몰인권적 처사다. 이를 주도해온 역대 북한 지도자들은 역사의 칼날에 온전치 못할 것이다.

지구촌에 하나 뿐인 비인도적인 웃음거리는 이번으로 끝내야 한다. 그들이 안고 있는 상흔과 한이 풀리도록 여기서 종지부를 찍어줘야 한다. 올올이 맺힌 그리움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야말로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시키고 민족의 원형을 복원시키는 일이다. 이런 인도주의적인 일마저도 결단하지 못하고 종전선언과 통일을 얘기한다는 건 가식이자 한마디로 쇼다.

 

2018. 8. 25. 06:12
북한산 淸勝齋에서
雲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