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상봉은 더 이상 이벤트가 돼선 안 된다
서상문(본지 및 공정사회신문 주간, 공정사회운동중앙회 부회장)
지난 달, 3년 만에 눈물로 시작돼 눈물로 막을 내린 제21차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끝났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 없이 헤어진 그들에겐 어쩌면 이승에서의 마지막 해후였을지도 모른다. 각기 남북으로 되돌아가는 이산가족들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을 것이다.
이산가족이 없는 필자가 봐도 그들을 태운 버스는 마치 부모 형제, 부부와 처자식을 묻고 돌아서는 영구차 같은 느낌이었고, “어머니, 건강 하시라요”라는 이별의 인사말이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 남북관계가 잘 풀리면 다시 볼 수 있다지만 현재의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기엔 미래가 불투명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언제까지 이처럼 잠시 만나게 해 서로 부둥켜안고 울게 하다가 다시금 헤어져야 하는 눈물의 작별을 되풀이 하게 할 것인가? 이들이 만나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2박 3일 총 12시간뿐이다. 헤어져 살아온 반세기 이상의 세월에 견주면 2박 3일은 찰나다.
꿈만 같은 찰나의 짧은 만남으로 평생 가슴에 안고 온 그리움과 통곡의 한이 풀릴까? 그럼에도 또 다시 기약 없이 헤어지게 만든다는 건 헤어짐 보다 만남이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잔인한 일이다. 아직도 혈육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있거나 생사를 알아도 우선순위에 밀려 만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이산가족들에게도 가슴을 멍들게 만드는 비인도적인 야만행위다.
이번에도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이루지 못했다.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은 또 어찌 할 것인가?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이래 지금까지 총 21차례 이뤄졌다. 이번 행사에서 170가족 833명뿐이 만나지 못했듯이 지금까지 1회에 남북 각각 100가족 정도만 만나게 했으니 상봉자는 1,000만 이산가족 중 극소수다.
남아 있는 이산가족은 모두 최소 8~90세이고, 100세가 넘은 분들도 계신다. 생사확인을 애타게 기다리거나 재회를 오매불망하는 이산가족들의 심정에도 불구하고 30여년 간 찔끔찔끔 제한적으로 만나게 해왔다. 이번에도 그대로 재현돼 인간의 삶에서 가장 우선시 돼야 할 헤어진 부모형제와 처자식과 부부 간 상봉이라는 인도주의가 정치적 거래의 대상임을 재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못난 민족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 민족만이 통탄스런 이러한 광경을 이벤트처럼 반복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남북 분단사를 반성적으로 인식하면 70여년의 기나긴 세월을 갈라놓은 남북의 분단 및 고착화에 대해선 꼭 외세만 탓할 게 아니다.
일제의 침략과 미·소가 한반도를 두 동강 낸 책임이 있지만 분단을 고착화한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든 민족의 공업(共業)임을 자각해야 한다. 전쟁기간 이념의 포로가 돼 소아적 권력욕에서 원수보다 더 잔인하게 동족을 살상케 한 남북의 권력자들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필자는 이처럼 슬픔과 고통과 한을 이벤트화 하고 정치적 거래의 자산으로 악용하는 정권을 북한 외에는 보질 못했다. 20세기 제국주의와 냉전의 시대를 거치면서 지구상에 이산가족이 발생한 곳은 한민족뿐만 아니라 일제와 독일의 침략을 받은 민족들도 있다.
그 가운데 중국민족은 수백만 명의 이산가족이 중국본토와 대만으로 갈라져 살면서 중국과 대만의 양 정부가 서로 대적해오고 있지만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개시한 이래 지금도 자유로운 방문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도 제발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꼭 해결해야 한다. 군사적 대치완화와 군비감축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고령화로 언제 유명을 달리 하게 될지 모를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다.
이번 상봉이 지난 판문점선언의 중점과제 이행차원에서 이뤄졌듯이 만시지탄이 있지만 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에선 이산가족상봉의 정례화와 전면화가 필히 합의돼야 한다. 더 이상 지구촌의 뉴스거리가 되지 않도록 8~90세 고령의 이산가족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밀당’을 해온 거래는 끝내야 한다.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야말로 민족의 원형을 복원시키는 일이자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일이다. 인도주의적인 일마저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서 종전선언과 통일을 논한다는 건 누가 봐도 허구이자 민족적 기만이다.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전면화가 남북대화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전면화가 아니고서는 북한이 당 간부나 행정관료 등의 권력층, 특권층만 만나게 해온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일반인들에게도 남한의 이산가족을 만날 기회를 주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상봉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에게 남쪽 가족을 만나면 사전 북한체제를 선전하라는 등의 사상훈련과 상봉 후 한동안 그들을 감시하는 것도 중단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순수민간 단체에게 실행을 맡기면 좋겠지만, 북에선 여전히 민이 주인이 아니어서 그것은 요원한 일이다.
위 글은 2018년 9월 5일자 『용산시대』 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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